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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왕 - 정조의 능행길을 따라서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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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어떤 것이 있을까?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과 수원화성, 지금은 터만 남아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시흥행궁, 정조가 아버지 묘소인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고갯길에서 못내 발길이 더뎌진다하여 이름 지어진 지지대고개 등 정조의 능행길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만나게 되는 문화유산들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 이곳에도 우리의 이산, 정조의 흔적이 있었구나?’ 놀랍기도 하고, ‘혹 능행길에 이곳을 지나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능행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도로 보는 능행길 문화유산

▶ 창덕궁(ⓛ-*지도상 표기숫자)
1405년(태종 5년)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비원으로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그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이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노량행궁 (용양봉저정, ③)
용양봉저정은 정조15년(1791)에 지어진 행궁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 참배 길에 한강을 건넌 후 점심을 들면서 잠시 휴식하던 곳이다. 건조연대는 1789년(정조 13) 이후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정문과 누정 등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인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툇간을 붙였으며, 사방에는 띠살 분합(分閤)을 단 기와집 한 채만이 있다. 이곳은 잠시 휴식하며 점심식사를 하던 곳이라 하여 일명 주정소(晝停所)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 시흥행궁 터(④)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 5동에 남아 있는 행궁 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 5동 831번지 6호 부근으로 추정된다. 1794년(정조 19)에 경기감사 서용보가 왕의 능행을 위하여 시흥에 행궁을 설치하였다. 행궁의 규모는 114간이나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금천현은 시흥현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이곳에 행궁은 없어지고 그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수령 830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만안교(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교. 왕이 행차하는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끝난 뒤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정조의 명으로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길이 15장(약 30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이고 7개의 홍예문(무지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축조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 안양행궁 터(⑥)
만안교를 가설하기 1년 전인 1794년, 안양리(安養里)에는 안양주필소(安養駐 所)가 당시의 경기감사 서 용보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원래 주필소란 임금이 쉬어가기 위한 용도로 마련된 건물로 왕의 숙박을 위해서 만들어진 행궁(行宮)과는 구별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행궁이라고 혼용해서 부르고 있다.
원행정례에 따르면, 안양행궁은 대청과 방의 비품 7종, 종이와 기름을 합쳐서 7종, 방석 4종을 합쳐 도합 3개 항목 16종의 비품을 항시 비치할 것을 예시하고 있다. 이곳은 수리산 끝자락으로 예로부터 밤나무 숲이 무성했던 곳으로 평촌들과 관악산이 잘 보이는 풍광이 좋은 곳이다. 정조대왕이 쉬어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주접동(住接洞)이 되었다

▶ 사근참행궁 터(⑦)
의왕시 고천동 272-2번지 고천동사무소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사근행궁터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일시 쉬어가던 곳 이다.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 온천에 행차할 때 이 곳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는데 효심이 지극한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서 부왕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성으로 이장하던 1789년 10월 6일 상여가 이곳에 이르자 마중한 이 곳 노인들에게 경기감사로 하여금 쌀을 나누어 주게 하고 행궁을 지으니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이라 하였다.

▶ 화령전(⑨)
1801년(순조 1년) 순조가 선왕인 정조의 지극한 효성과 유덕을 길이 받들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진 익공(翼工)집이다. 정전 안에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해마다 제향을 드렸으며 ‘운한각(雲漢閣)’이라는 편액의 글씨는 순조의 친필이다. 경내에 풍화당(風華堂)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순조가 풍악을 즐기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오히려 순조가 선왕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 자리로 여겨진다.

▶ 화성행궁(⑩)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長安區) 신풍동에 있는 행궁(行宮). 한국의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수원 화성의 부속물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년)에 수원 성곽을 축성한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의 능침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 건물인 봉수당에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훼손되고 낙남헌(洛南軒)만 남게 되었던 것을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나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 수원 화성(⑪)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벽. 둘레 5,743m, 길이 5,520m, 높이 4.9m ~ 6.2m이며, 면적은 18만 8048㎡이다. 수원성은 단순히 토축(土築)된 읍성(邑城)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 성곽을 새로이 축조함으로써 이후로는 화성(華城)이라 하였다.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중심이 되어 당시 신기술을 총동원해 구축한 뛰어난 과학적 구조물이다. 돌과 벽돌을 혼용한 과감한 방법, 거중기(擧重機)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用材)를 규격화한 점, 화포를 주 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수원향교(⑬)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향교.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수원향교는 원래 고려 원종 22년에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세워졌던 것을 조선 정조 때 수원성곽을 축성하면서 현재 이곳으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文廟) 공간에는 대성전 좌우에 서무와 동무를 배치하여 공자, 맹자 등 중국의 현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인의 위패도 봉안하고 있다. 석전은 해마다 음력 2월, 8월의 첫째 정일날 11시에 행하고 있으며 분향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 월 2회 10시에 한다.

▶ 용주사(⑭)
일제강점기 때는 31본산(本山)의 하나였는데, 이곳에는 원래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세운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952년(고려 광종 3)에 병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가 부친 장헌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친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보경(寶鏡)으로 하여금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사(創寺)와 동시에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으며, 보경에게는 도총섭(都總攝)의 칭호를 주어 이 절을 주재하게 하였다.

▶ 융릉(옛 현륭원, ⑮)
조선 정조(正祖)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후에 장조로 다시 추존]와 그의 비 경의왕후(敬懿王后, 혜경궁홍씨)의 능.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1-1에 있다. 근처에 있는 정조의 건릉(健陵)과 함께 동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능은 원래 경기 양주군의 배봉산(拜峰山)에 조성되어 영우원(永佑園)이라 하였으며 이를 지금의 화산(花山) 기슭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자료 및 사진=수원문화원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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