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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 상고 ‘전천후 리더십’ 연쇄 폭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대구상고 엘리트 583명 배출… 평균연령 62세는 盧 전 대통령 나이
■ 강릉상고 출신 유명 공직자 많아… 현역 국회의원 최다는 3명의 동지상고
■ 파워 엘리트 70% 졸업 후 바로 大學 가… 순수 고졸자는 11%도 안 돼
■ 대기업 임원은 삼성·현대차·롯데 順… 시중은행 중 ‘신한’이 상고 초강세
■ 참여정부 부산상고 출신 11명 발탁… 국민의정부 때는 목포상고 출신 全無
■ “이념 빼면 노무현 & 이명박은 비슷한 사람”… MB가 마지막 주자 될 듯

월간중앙 지난 10년간 대한민국號를 이끌었던 선장 2명의 학력은? 상업고 졸업. 이어지는 새 선장 역시 상고 출신이다. 3연속 상고 출신 대통령이다. 가난하지만 똑똑했던 수재들이 대거 입학했던 지난날의 전국 명문 상고 15개교 출신 3,777명의 신상명세를 밝힌다.


2월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번 대통령 역시 상업고등학교 출신. 연속 3번, 햇수로 치면 앞으로 5년을 더 보태 무려 15년 동안 상고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는 셈이다.

우리 국민이 상고 출신이어서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상고 출신 대통령이 세 번이나 연속으로 나온 데는 상고 출신만이 갖는 어떤 힘이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는 상고 출신이 갖는 의미가 예전과 무척 다르다. 하지만 1970년 이전에 입학한 상고 졸업생이 갖는 의미는 특별했다. 특히 전국의 명문 상고로 꼽히는 학교에는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수재들이 많이 입학했다. 심지어 타 도(道)에서 유학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들 상고 졸업 엘리트들이 현재 우리 사회 곳곳의 중요한 자리에 올라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상고를 나온 대통령들이다.

그렇다면 상고 출신 엘리트들의 지형도는 어떨까? <월간중앙>은 대한민국에서 상고를 나온 것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과거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유명 상고 14개교에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현 동지고)를 더해 총 15개 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인물정보를 통해서다.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결과가 도출됐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대한민국 상고 출신 엘리트의 현주소와 그 역학관계를 분석 정리했다.

1 15개 명문 商高 출신 3,777명 大해부
“상위 4개교 졸업자 약 2,000명…94세 송인상 전 장관이 최고령자”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부산상고(현 개성고)·동지상고(현 동지고), 이 세 상고는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다. 뿐만 아니다. 전·현직 대통령이 학교에 다닐 당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상고였다. 이런 지역 명문 상고 반열에 드는 학교는 이 외에도 많다.

<월간중앙>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학교들을 선정했다. 대통령 배출 상고 3개 학교에 강경상고(현 강경상업정보고)·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광주상고(현 동성고)·경기상고·경남상고(현 부경고)·군산상고·대구상고(현 상원고)·대전상고(현 우송고)·덕수상고(현 덕수고)·마산상고(현 용마고)·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제주상고(현 제주중앙고) 등 12개 학교를 합친 총 15개교다.

이들 15개교를 졸업한 인물 중 국내 최대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DB)인 ‘조인스 인물정보’에 등재된 사람은 4,074명. 이들 중 사망자와 1971년 이후 출생자를 제외하자 총 3,777명의 인물이 나왔다. 이들이 바로 이번 조사의 분석 대상이었다.

학교별 인원을 산출해 보니 대구상고 출신자가 가장 많은 583명, 이어 부산상고 출신자(532명) 순이었다. 이 외에 400명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비중을 보인 학교는 서울의 덕수상고(451명)·선린상고(414명) 등이었다.

이들 상고 출신 엘리트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출생연도 미확인 인원 27명을 제외한 3,750명의 평균연령은 61.9세, 출생연도로 따지면 1946년생에 해당했다. 우리 나이로는 올해 63세인 셈이다. 우연찮게 부산상고를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46년생으로 이 연령에 딱 들어맞았다.

연령대에 따른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38~49세(1970~59년생)에 해당하는 인물이 6.5%인 245명, 50대 34.2%(1,282명), 60대 41.7%(1,563명), 70대 14.7%(551명), 80대 이상이 2.9%(109명)였다. 50~60대 인원을 합하면 무려 75.9%에 달할 정도로 그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가장 고령은 선린상고(당시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송인상(94) 효성 고문. 일제 강점기 식산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은행 부총재,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낸 관록의 경제인이다.

송 고문처럼 해방 이전에 입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1929년 이전 출생자)을 따로 뽑으니 132명이었다. 이 중에는 목포상고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1926년생)과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대구상고·1923년생), 민경천 전 홍익대 총장(경기상고·1924년생) 등의 원로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2 학교별 특성 & 직업군별 ‘스타 상고인’
“재계·금융계 61.1%로 타 분야 압도…동지상고는 정계 출신 많아”

15개 명문 상고별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직업군 결과를 분석했다. 대표 경력 등을 참고해 나눈 12개 직업군으로 세분화해 살펴보니 상업학교의 특성 때문인지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재계나 금융계 쪽 인사가 주를 이뤘다.

데이터 상으로도 재계 1,612명(42.7%), 금융계 695명(18.4%)으로 타 분야를 압도했다. 이어 언론출판계(331명·8.7%)·공직자(241명·6.4%)·정계(237명·6.3%)·학계(237명·6.3%)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학교별 특성에서는 조금 차이를 보였다. 그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재계·금융계에 속한 인물을 제외한 상황에서 그 구성비를 상대비교했다. 우선 15개 학교 중 정계 인물이 많은 학교는 동지상고(37.1%)·목포상고(35.1%)·대전상고(26.0%)·강릉상고(25.3%)·마산상고(24.1%) 등이었다.

이 중 동지상고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73) 국회부의장과 이병석(56) 의원, 민주노동당의 단병호(59) 의원 등이 대표적인 정계 인사다. 목포상고의 경우 이른바 ‘동교동계’로 불리는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권노갑(78)·이경재(76)·이훈평(65) 전 의원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문이다.

정계 인물의 비중이 높은 강릉상고는 오히려 공직자(23.2%) 출신 중에서 유명인이 많았다. 김성배(81) 전 건설부 장관, 최각규(75) 전 경제기획원 장관, 염돈재(65)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등이 강릉상고를 졸업했다.

강릉상고처럼 상대적으로 유명 공직자의 비중이 높은 학교는 강경상고(25.8%)와 덕수상고(21.3%) 등이다. 현직 공직자 중 강경상고를 대표하는 사람은 김우식(68)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덕수상고의 경우 반장식(52) 기획예산처 차관이다.

기타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세를 보인 직업군은 언론출판계였다. 데이터 상으로도 언론출판계는 재계·금융계 인물을 제외한 상황에서는 22.5%의 높은 비중을 보이는 직업군이었다.

이 분야의 대표적 인물로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김언호(63) 전 한길사 대표와 변상근(64)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경기상고를 나온 정경수(69) 전 MBC 아나운서실장 등이 있다.

김수행·신영복·이장희 등 학계 스타

대구상고 출신 중에서는 학계 유명인이 많았다. 언론출판계에 이어 1명이 부족한 차순위의 비중을 보인 대구상고 출신 학계(22.1%) 인사 중에는 최근 정년퇴임한 김수행(66)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단연 돋보였다. 김 교수는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가다.

부산상고 학맥 역시 대구상고 못지않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의 저자인 신영복(67)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국제법학자인 이장희(58) 한국외국어대 교수였다.

이색적인 분포를 보인 학교도 있었다.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야구 명문 군산상고의 경우 야구인의 비율이 무려 32.4%로 가장 높았다.

직업군별 ‘스타 상고인’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양형일(57·광주상고)·최용규(52·경기상고) 의원, 한나라당의 정희수(55·대구상고) 의원 등이 있었다.

공직자 중에는 김우식 장관, 반장식 차관 외에 차의환(61·부산상고)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 등이 눈에 띄었다.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상고 출신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최종영(69·강릉상고)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조계 인사, 복거일(62·대전상고)·이순원(50·강릉상고)·심상대(48·강릉상고)·황학주(54·광주상고)·박노해(50·선린상고) 등 일군의 문인도 상고 졸업자다.

상고 중에는 유독 야구 명문이 많아 김응룡(67·부산상고) 삼성라이온즈 사장 등 원로 야구인이 많은 편이었다. 전 한국노총 위원장인 이남순(56·선린상고)·이용득(55·덕수상고) 등도 상고 출신이다.

3 상고 출신 ‘파워 엘리트’ 396명은 누구?
“89%가 상고 졸업 후 대학 나와…부산상고 출신 77명으로 최다”

이번 조사의 해당 인물들은 모두 일정한 지위에 오른 사람들. 하지만 이들 모두를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파워 엘리트’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에 <월간중앙>은 3,777명의 인물 각자에게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1~3등급을 부여했다. 그리고 1등급을 ‘파워 엘리트’로, 2등급은 ‘준 파워 엘리트’로 간주했다.

실례를 들자면 재계의 경우 국내 100대 기업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사장급 이상) 및 주요 대기업 계열사 전·현직 CEO, 그리고 중소기업(상장사 기준) CEO 등이 1등급에 해당한다. 2등급은 국내 100대 기업 및 주요 대기업의 현직 임원급 이상, 중소기업(상장사 기준)의 전직 CEO 등이다.

그렇다면 과연 1등급으로 분류된 상고 출신 파워 엘리트의 현황은 어떠할까? 분석 결과 파워 엘리트에 해당하는 인물은 396명. 전체 대상 중 10.5%에 해당했다.

서울대 진학자 59명으로 가장 많아…

1등급의 평균연령은 출생연도 미확인자 1명을 제외하고 산출한 결과 66세였다. 출생연도로는 1942년생. 이상윤 농심 사장(대구상고),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대구상고), 권명광 홍익대 총장(선린상고) 등이 이 해에 태어난 대표주자였다.

공교롭게 동지상고를 나온 이명박 대통령이 1941년생으로 이 연배였다. 때문에 연령대 분석 결과만 놓고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고 출신 전체 엘리트의 평균연령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상고 출신 슈퍼 엘리트의 평균연령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파워 엘리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고는 113년 전통의 부산상고였다. 부산상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77명(19.5%)이 1등급으로 분류돼 엘리트 전수조사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한 대구상고(66명·16.7%)를 앞질렀다. 선린(37명)·덕수(34명)·경기(33명) 등 서울 지역 상고들도 강세를 보였다.

1등급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 항목은 각 인물의 대학 진학 여부. 이들이 ‘상고 졸업장’만으로 사회에 진출한 것인지, 대학에 진학해 해당 대학의 졸업장을 발판으로 파워 엘리트에 오른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 진학 여부도 세분화했다. 첫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우리 사회의 통념상 ‘졸업 후 진학’으로 볼 수 있는 3수까지를 ‘진학’으로 분류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학업을 연장한 경우는 ‘만학’으로 보았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지 22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학사모를 쓴 김효준(51) BMW코리아 사장(독일 BMW그룹 임원)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분석하자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43명을 제외한 전원(89.1%)이 대학을 졸업했고, 이 중 ‘진학’으로 보이는 인물이 1등급의 70%인 277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진학률을 보였다. 만학도는 38명뿐으로 순수 고졸자보다 적었다. 인물정보 데이터 상 ‘진학’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진학 시기 불명확자가 38명 있었으나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치였다.

결국 1등급 분석에서의 대학 진학 조사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상고 출신 중 상고 졸업장만으로 우리 사회 파워 엘리트 집단에까지 오른 인물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일까? 마산상고를 졸업한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72) 교수가 쓴 <운명과 형식>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책의 도입부에는 김 교수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연보’가 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1952~54년 마산상업고등학교. 당시 이 학교는 실업계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인문계와 다름 없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상고를 졸업한 많은 인사의 지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한 상고 출신 1등급 인사는 “가난한 수재들이 많다 보니 학구열이 대단했다”면서 “대학 진학반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물론 모든 상고가 ‘진학반’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명문 상고에 진학한 사람 중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사람이 많았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전체 대학 졸업자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나온 학교는 서울대(59명)였다. 이 외에 10명 이상의 졸업자가 있는 학교로는 고려대(46명)·성균관대(31명)·부산대(23명)·연세대(19명) 등 9개교가 더 있었다. 상대적으로 명문대 출신 비중이 높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상고 출신 파워 엘리트의 학력 수준은 어디까지 연장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박사 과정을 수료했거나 학위를 받은 인물을 따로 추출해 봤다. 그 결과 박사급 인물은 모두 31명(7.8%)이었다.

이 중 11명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지에서 수학한 해외파였다. 해외파 박사 중 5명은 학자 또는 연구자로, 국민의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68·대구상고) 대구대 석좌교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4 국내 주요 대기업 등의 임원진 현황은?
“삼성그룹 32명으로 최다…신한금융지주 & 딜로이트안진은 회장도 상고 출신”

언급한 대로 상고의 특성상 이번 조사에서는 재계·금융계 경력을 가진 인사가 다수를 이뤘다. 이에 이 분야 경력자 중 현직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 현황을 알아봤다.

분석 대상은 국내 30대 그룹사(2007년 4월 현재 자산총액순), 13개 대형 금융기관, 4개 대형 회계법인 및 외국계 기업 임원 등이었다. 먼저 30대 그룹사별로 임원진을 분석한 결과 삼성그룹에 가장 많은 32명이 재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학수(62·부산상고) 삼성전략기획실장, 정연주(58·대구상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지성하(55·대구상고) 삼성물산 사장(상사부문장), 김응룡 삼성라이온즈 사장 등 CEO급 이상 간부가 4명이었고, 김상항(53·마산상고) 삼성전략기획실 부사장 등 임원급 이상 간부가 28명이었다.

삼성그룹에 이어 많은 상고 출신 임원을 가진 그룹사는 현대기아차그룹(12명)과 롯데그룹(12명)이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정대(53·대전상고) 부회장 등이, 롯데의 경우 장경작(65·덕수상고) 호텔롯데 사장 등이 상고 출신 주요 임원이었다.

이 외의 그룹사 중 임원이 4명 이상인 곳은 현대(9명)·GS(8명)·한진(7명)·금호아시아나(6명)·두산(5명)·SK(4명)·LG(4명)·하이닉스(4) 등이었다. 이 중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전·현직 CEO가 모두 상고 출신이었다.

우의제(64) 전 사장(현 고문)은 경기상고를, 김종갑(57) 사장은 대구상고를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됐으나 동대문상고를 졸업한 STX그룹 강덕수 회장도 상고 출신 유명 인사다.

웅진그룹 강경상고 출신이 강세

30대 그룹사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규모 그룹사 중에서도 그룹 총수가 상고 출신인 경우가 있었다. 웅진그룹의 윤석금(63·강경상고) 회장이 그 주인공. 웅진그룹의 주요 인사 중에는 윤 회장이 나온 강경상고 출신 동문이 2명 더 있었다. 조중형(73) 부회장, 이기승(61) 웅진홀딩스 고문 등이다.

이처럼 그룹의 최고 수장이 상고 출신인 경우는 금융기관과 대형 회계법인 등에도 있었다. 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70·선린상고) 회장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안시환(68·부산상고) 회장 등이 그들로, 회사 내 임원 분석 결과 역시 동종업계에 비해 상고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이점을 보였다.

신한의 경우 라 회장을 비롯해 무려 13명의 임원이 상고 졸업자였다. 하지만 우리(7명)·국민(5명)·하나(4명) 등 경쟁 시중은행의 경우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딜로이트안진 역시 8명으로 삼정(3명)·한영(2명)·삼일(1명) 등에 비해 상고 출신 임원이 많았다.

상고 출신 중 외국계 기업의 전·현직 임원은 24명이었다. 이 중 국내 법인의 현직 CEO는 다음과 같다. 김효준(51·덕수상고) BMW코리아 사장, 배광우(71·부산상고) DHL코리아 회장, 김수룡(57·부산상고) 도이치뱅크코리아 회장, 하종환(55·대구상고) 한국쉘석유 사장, 조성일(53·경기상고) 한국NSK 사장, 이장우(52·동지상고) 이메이션코리아 사장(이메이션 아시아태평양 총괄부회장), 이성욱(49·부산상고)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 사장 등이다.

5 역대 정권이 발탁한 상고 출신 요직자
“참여정부 21명으로 가장 많이 발탁…부산상고 11명, 대구상고 4명 순”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상고. 그렇다면 상고 출신 인물 중 역대 정권에서 국가 요직에 발탁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월간중앙>은 이를 분석하기 위해 공직자·정계와 공기업 인사를 중심으로 다시 데이터를 뽑았다.

정부 요직의 기준은 행정부 장·차관 및 청장, 대법원장 및 헌법재판관, 국회사무처 사무총장, 외교부서 주요국 대사 및 본부대사, 금융감독원장(옛 은행감독원장), 청와대 비서관, 광역 시·도의 장 등으로 삼았다.

여기에 주요 공기업 CEO, 주요 위원회 위원장 등 인사상 해당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의 인물도 추가했다. 상고 출신 사망자 중에도 정권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 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했다.

노태우 정부 10명 발탁으로 두 번째로 많아

그 결과 이승만 정부~참여정부에 이르는 동안 총 49명이 발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개 정권 이상에서 중복 발탁된 인물이 14명이나 있었다. 먼저 이승만 정부의 경우 생존한 사람으로는 최고령자인 송인상(94·선린상고) 전 재경부 장관 1명뿐이었다.

송 전 장관은 1952년부터 5년간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후 제3대 부흥부 장관 겸 경제조정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1959년 3월부터 1960년 4월(‘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까지 제9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유신 개헌을 통한 직접선거 폐지 기간을 반영해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으로 나눠 분석했다. 3공 시절 발탁된 상고 출신 인사는 5명이고, 4공의 경우에는 8명이었다.

3공이 발탁한 인사로는 문상철(93·선린상고) 전 은행감독원장, 홍승희(88·경기상고) 전 재무부 장관, 군(軍) 출신의 박경원(85·목포상고) 전 내무부 장관, ‘한·일 회담’ 대표 등을 지낸 김정렴(84·강경상고) 전 상공부 장관 등이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제37대 상공부 장관을 지낸 한봉수(81·경기상고) 전 장관의 경우 3공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흔히 ‘유신정부’라고 부르는 4공 때 입각한 인물로는 최각규(75·강릉상고) 전 상공부 장관 등이 있다.

최 전 장관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이던 1956년 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후 재무부 등에서 활동한 경제통으로, 1973년 재무부 차관에 올랐다. 이후 유신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차관과 농수산부 장관 등을 거쳐 1977년 상공부 장관에 발탁됐다.

이후 오랫동안 관계를 떠났던 그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공화당)에 당선되면서 주목받았고, 노태우 정부 후기인 1991년 2월 제25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다시 입각했다.

최 전 장관의 강릉상고 동문인 김성배 전 건설부 장관은 4공 시절 강원도지사를 거쳐 전두환 정부 시절 서울시장과 제19대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이 외에 장관을 지낸 인물들은 송인상 전 장관을 제외하면 모두 3공 시절 이미 발탁된 경험이 있었다. 김정렴 전 장관은 대통령비서실장과 주일대사 등을 지냈다. 차관급 인사로는 남욱(76·경남상고) 전 농수산부 차관과 김주남(77·경기상고) 전 건설부 차관이 있다. 김 전 차관은 최규하 정부 때 경기도지사를, 전두환 정부 때 건설부 장관을, 문민정부 시절에는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인물도 있다. 23대 법무부 차관을 지낸 정태균(84·목포상고) 전 차관이 그 주인공. 이후 그는 전두환 정부 시절 대법관과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국민의정부 때 목포상고 출신 없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발탁된 상고 출신 인물은 모두 4명. 이 중 김주남 전 장관을 제외하면 새로 발탁된 장관은 없었다. 대신 법무부 차관에 오른 인물로 정태균 전 차관의 후임인 이영욱(76·마산상고) 전 차관이 있다. 박판제(69·덕수상고) 전 환경청장과 이재식(72·부산상고) 전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도 5공 때 발탁된 인사다.

박 전 청장은 국보위를 거쳐 청와대 사정비서관, 조달청 차장, 제4대 환경청장 등을 지냈다. 이 전 비서관은 군 출신으로 1984년부터 총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때는 공기업인 성업공사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직선제로 바뀐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발탁된 상고 출신은 모두 10명으로 역대 정권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이 중 눈에 띄는 분야는 법조계로, 부산상고 출신의 황도연(74)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덕수상고 출신의 이종남(72) 전 법무부 장관이 있다. 이 외에 주요 인물로는 황창기(73·경남상고) 전 은행감독원장 등이 있다.

문민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상고 출신 인사는 3명에 불과하다. 김우석(72·마산상고) 전 내무부 장관, 이영래(68·강릉상고) 전 산림청장이 그들이다. 김주남 전 건설부 장관은 이 시기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그렇다면 상고 출신 대통령이 3연속 집권한 국민의정부 이후의 사정은 어떠할까? 국민의정부 시절 발탁된 상고 출신 인사는 9명으로 비교적 많다. 하지만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 출신은 아무도 없었다. 호남지역의 유명 상고인 광주상고·군산상고 출신자도 전무하다. 최종영(69) 대법원장과 안명환(63) 기상청장을 배출한 강릉상고가 2명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 7명의 출신 학교는 모두 다르다.

이들 중 눈길을 끄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 주임재판관을 맡았던 주선회(62·마산상고)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최근 그는 이명박특검법 헌법소원사건단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장관으로 상고 출신 인물은 2명이다. 남궁석(70·선린상고)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김영호(68·대구상고)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그들이다. 이 중 남 전 장관은 삼성SDS 사장 등을 지낸 경력으로 발탁돼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새천년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정책위의장,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보통신특보 등을 거쳐 2003년 9월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가 됐다. 2004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을 지낸 남 전 장관은 오는 18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용인갑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이종남 전 장관은 국민의정부에서도 요직인 감사원장에 발탁됐다.
역대 정권별 상고 출신 요직자 분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정부는 단연 참여정부였다. 참여정부에서 발탁한 인물은 총 21명. 이는 전체 인원의 42.9%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이전 정부에서 발탁했던 사람은 남궁석 전 장관 단 한 명이다.

때문에 거의 모든 인원이 참여정부 임기 내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학교별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온 부산상고 출신이 무려 11명(52.4%)으로 최다였다. 이어 대구상고 출신이 4명, 광주상고 출신이 2명이었다.

이 시기 강경상고 등 나머지 4개 학교는 단수의 요직자를 배출했다. 먼저 부산상고 출신으로 참여정부에 발탁된 주요 인사로는 윤광웅(66) 전 국방부 장관이 있다. 해군 장성 출신의 윤 전 장관은 2004년 1월 청와대 국방보좌관(차관급)으로 발탁된 뒤 그 해 7월 장관으로 입각했다.

장관 재직 때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 등으로 경질설이 나돌았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해임하지 않았다. 2006년 11월 사퇴했다.

부산상고 출신 청와대 비서관은 3명

행정부 장관은 아니지만 장관급에 해당하는 직을 맡은 사람도 있다. 국민의정부 말기 차관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오른 뒤 참여정부에서 재발탁된 김병호(61) 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관급)과 남궁석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장관급)이다.

차관급 인사로는 조영동(59) 전 국정홍보처장도 있다. <부산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조 전 처장은 2004년의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섰다 낙선했다.

부산상고 출신 중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거나 재직 중인 사람은 3명이다. 차의환(61) 혁신관리수석비서관, 최도술(61) 전 총무비서관, 권찬호(51) 전 의전비서관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최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사무장을 맡았을 정도로 오랜 인연을 자랑한다. 그는 2003년 11월 SK그룹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연말 특별사면됐다.

부산상고 졸업자 중에는 전·현직 공기업 CEO도 4명이나 있다. 현직인 황두열(65)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김종운(62) 울산항만공사 사장, 그리고 김지엽(69)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 한행수(63)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 등이 그들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부산상고 출신 인물은 신상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KBO의 경우 독립 기구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가 총재에 오를 당시 언론은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점에 주목했다.

참여정부에서 부산상고 다음으로 많이 요직자를 배출한 대구상고의 경우 김병준((54)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가 눈에 띈다. 김 전 장관이 참여정부에 참여한 것은 2002년 1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 간사를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장관급)과 청와대 정책실장(장관급)을 거친 뒤 입각했다. 하지만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논문 표절 문제 등으로 인해 13일 만에 낙마했다.

대구상고 출신 차관급 인사로는 김주수(56) 전 농림부 차관과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인 김종갑(57) 전 산업자원부 제1차관이 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 의성군수선거에 나갔다 무소속 후보에게 진 김주수 전 차관은 현재 서울특별시 농수산물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변호사 출신의 김준곤(53)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사회조정1비서관도 대구상고 출신이다.

이들 외에 상고 출신 인사로는 김우식 과기부 장관과 반장식 기획예산처 차관, 조용휴(45·광주상고) 청와대 여론조사비서관 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인 박기환(60)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지방자치비서관도 참여정부 발탁 인사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박 전 비서관은 초대 민선 포항시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이번 정권별 요직자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 이명박 차기 정부의 경우 현재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남주홍(56) 경기대 교수가 덕수상고 출신이다.

6 각 분야 학자가 본 상고 출신 엘리트의 파워
“두 차례 대선에서 ‘경기고’ 이겨…회계 능력은 지도자의 필수 조건”

이번 명문 15개 상고 출신 엘리트 분석은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현황의 계량화로 볼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포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월간중앙>은 3개 분야의 저명 학자·전문가에게 상고 출신 엘리트의 성공 요인을 물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48) 교수가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이를 분석했고, 정신과 전문의인 김정일(50) 박사가 상고 출신 엘리트의 심리학적 성공 요인을 진단했다. 또 상고 출신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는 회계 능력과 관련해 경북대 경영학부 권선국(50) 교수가 자문했다.

이들이 바라본 상고 출신 엘리트의 입신양명(立身揚名) 비결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세 번이나 나온 것은 상고 출신의 성공에 대한 갈망이 다른 사람보다 강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MB가 상고 ‘영웅시대’의 마지막 주자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상고 출신 엘리트의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강한 성취동기’를 꼽았다. 이어 그는 “학계에서도 의지가 강한 분 중 상고 출신이 꽤 많다”고 부연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와 김수행·신영복 교수 등이다.

김호기 교수는 상고 전성시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읽었다.

“상고 출신은 산업화시대에 어울리는 유형의 인간상입니다. 시대별로 그런 특성을 가진 학교들이 있었죠. 가령 일제 강점기의 사범학교가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선생이 되는 것이 사회적 성공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1950~60년대에는 은행에 취직하는 것이 안정적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김호기 교수는 상고 출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으로 ‘경험의 폭’을 들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자에 비해 경험의 폭이 넓어 계급 상승 와중에 상대적으로 친화력을 잘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 김호기 교수는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받는 경기고 출신과 비교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15대 대선에서 경기고 출신의 이회창 후보가 목포상고 출신의 김대중 후보에게 졌습니다. 또 16대 대선에서도 당내 경선에서 부산상고 출신 노무현 후보가 경기고 출신 김근태 후보에게 이겼지요.

이는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근태 의원이나 노 전 대통령 모두 운동권 출신입니다. 하지만 김 의원의 경우 학생운동으로 시작해 계속 운동권이었던 데에 반해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 인권운동가였죠. 경선에서 국민의 선택은 후자였습니다. 2002년에는 분명 노 전 대통령이 훨씬 더 큰 대중친화력을 발휘했던 셈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김 교수는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CEO적 이미지에 더해 상고 출신이 갖는 서민적이고 진취적 풍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덧붙여 “이념을 떠나 생각해 보면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스토리가 있는 사람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그 마지막 주자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유형의 전형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신화죠. 마치 드라마 제목처럼 ‘영웅시대’가 계속됐는데, 이제 그 막을 내릴 것 같습니다. 어떤 나라든 영웅시대가 막을 내리면 평범한 시민의 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서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그 영웅시대의 코드 중 하나가 ‘상고 출신’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은 어떨까? 김정일 박사는 “상고를 졸업했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고자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대학을 나온 사람은 어떤 악착같은 심리적 요소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상고 출신 인사들은 그것이 강하게 작용하죠.”

김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재직 시절 태국의 건설 현장에서 금고를 지킨 일화 등의 사례에서 그런 ‘악착’을 읽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박사는 상고 출신들을 “현실적으로 판단할 때 기회라고 생각하면 악착같이 달라붙는 근성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좋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이 닥쳤을 때 포기하는 경향을 띱니다. 하지만 상고 출신들은 그런 난관을 잘 극복하죠. 이 역시 기회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경북대 권선국 교수에게 상고 출신이 갖는 회계학적 소양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상고를 나온 사람은 기본적으로 부기, 즉 회계학의 기초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회계 수칙을 알고 그 응용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죠. 때문에 사회에 진출했을 때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조직이든 회계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공대생용 회계학 기초강좌 개설해…

권 교수는 “이런 상고 출신의 회계 능력이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무기’이자 ‘성공으로 가는 밑거름’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최근의 사례를 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에는 공과대 학생들도 회계는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도 기술적 능력만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죠. 회계적 지식의 유무는 회사를 관리하는 경영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권 교수가 재직하는 경북대에서는 ‘회계와 사회생활’이라는 공대 학생용 기초 회계학 강좌를 개설했다고 한다. 다음은 권 교수의 마무리 말.

“어느 조직이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봅니다.”

전·현직 대통령이 다니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분명 다르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처럼 우리 사회도 격변했고 또 격변하고 있다. 때문에 상고 출신 엘리트들의 성공 신화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명문 상고 출신 집단의 속성, 아니 능력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그 특장은 여전히 유효한 부분도 있어 보인다. 시대가 바뀌어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친화력’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 ‘조직을 꿰뚫는 회계 능력’ 등은 엘리트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인 것임은 분명하다.

끊임없는 자기 단련의 시대, 상고 출신 엘리트 분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 아닐까?

대한민국 상고 엘리트 어떻게 조사했나?

조사기간은 지난 1월 초부터 약 40일간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활용한 기초자료는 국내 최대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DB)인 ‘조인스 인물정보’에서 추출했다. ‘조인스 인물정보’를 활용한 이유는 한 인물이 이 DB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경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령 일반적으로 상고 출신이 많다고 여겨지는 금융업계의 경우 적어도 전·현직 은행 부장급 이상은 돼야 하는 정도다. <월간중앙>은 이들을 통상적인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간주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전국 15개 상고 출신 인물은 모두 4,074명. 이들 중 사망자와 1971년 이후 출생자 등은 이번 조사에서 제외했다.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사망자의 경우 해당 인물이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상고 출신자 현황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었다.

1971년 이후 출생자를 제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우리 사회의 통념상 ‘386’ 이전 세대를 기성세대로 보는 경향을 반영했다. 또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고교평준화(1974년 서울·부산 등을 시작으로 대상 지역 확대)’ 등으로 인해 상고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성향이 달라진 점도 고려했다.

실제로 DB를 검토한 결과 1971년 이후 출생자의 경우 대부분 야구·축구·농구 등 스포츠계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조인스 인물정보’ 등재 인물에 최근 단행된 9개 주요 대기업 임원 인사 등을 참고해 15개 상고 출신 인물정보 DB를 따로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물정보의 속성상 변화가 잦아 오류가 나는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연초를 맞아 가장 인사가 왕성한 재계·금융계의 경우 각 기업 홍보실을 통해 확인작업을 거쳤다.

가공한 DB를 바탕으로 또다시 세분화를 시도했다. 우선 정계·재계·학계 등 각 인물의 대표 경력을 바탕으로 12개 직업군으로 나눴다. 그리고 해당 경력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분야별로 1~3등급을 해당 인물에게 부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파워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1등급 해당자를 따로 산출해낼 수 있었다.

이 등급은 각 직업군 특성에 맞게 사회적 영향력 등을 감안한 것으로 <대한민국 파워엘리트>(중앙일보 탐사기획부문 이규연 외 공저, 2006)의 인물 등급 기준을 참고했다.

하지만 참고한 분류는 샘플의 기준이 다르고, 이번 조사에 해당하는 상고 졸업자의 특성을 드러내기 힘든 점이 있어 더욱 구체화했다. 가령 참고 분류에는 없는 3등급의 경우가 그렇다. 상고를 졸업한 일반 엘리트를 모두 샘플에 넣어야 지형도를 제대로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명진건(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학년)이 DB화 작업을 도왔다.

글■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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