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선효선(28) 대위는 강원 국군철정병원 중환자실 간호장교였다. 선 대위는 지난달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세 살 된 첫째 딸(만 2세)이 5개월 된 갓난쟁이 동생을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사진 아래에 짤막한 글을 남겼다. 둘째가 태어난 뒤 큰 아이가 심술을 부린 듯했다.
“못 말리는 언니의 이미지답지 않게, 자상한 언니의 모습으로(사진이 나왔네). 겨라겨라(동생의 애칭)~ 언니가 네 살 되면 안 괴롭히고 예뻐해 줄 거야.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엄마는 큰아이가 네 살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딸들이 커서 글을 읽게 될 때쯤 아빠가 이 사진과 글을 보여 주며 엄마 얘기를 해 줄 것이다.
‘추운 겨울 밤. 7명의 군인이 아픈 병사 한 명을 병원으로 옮기고 돌아오다 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갔단다. 그중에 엄마도 있었어. 아빠 같은 군인에게 엄마는 영웅이란다’라고. 선 대위의 남편 유영재(29) 대위는 육군사관학교 58기다. 철원에서 근무 중이다.
사고 발생 후 10시간가량 흐른 오전 11시50분쯤. 사고 지역인 양평 용문산에서 수습된 시신 7구 모두가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두 대의 구급차가 시신을 나눠 싣고 왔다. 들것에 실린 시신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매직으로 ‘선효선’이라고 적혀 있는 시신을 향해 남편 유 대위가 다가갔다. 머리 부분을 덮은 천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남편은 시신을 붙들고 울었다. “효선아, 효선아”를 외치며 뒤통수를 유리로 된 현관에 서너 차례 부딪쳤다. 이를 악물고 울다가 이내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우리 딸”이라 부르며 통곡했다. 시어머니는 “딸처럼 잘하는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졸라서 2004년 서둘러 아들과 결혼시켰다”고 했다. 선 대위 가족뿐이 아니었다. 숨진 장병 7명의 가족들 모두 오열하며 시신을 맞았다.
사고 헬기에는 선 대위 외에 조종사와 부조종사, 승무원 사병 2명, 의무병, 군의관이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은 뇌출혈 증세를 보인 윤모(22) 상병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응급 이송한 뒤 되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숨진 철정병원 마취과 군의관 정재훈(33) 대위는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부인은 임신 5개월째다. 수도병원을 찾은 정 대위 부인은 친정어머니를 붙잡고 소리치며 울었다.
“엄마, 엄마 어떡해. 우리 애기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이제 우야노. 엄마, 우리 재훈씨 어떡하노. 재훈씨만 살려주면 다 필요없는데. 어우 미치겠어. 나 어떡해···.”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임신한 딸을 부여잡고 울었다.
헬기 부조종사 황갑주(35) 준위는 남동생의 아이(1·남)를 키우고 있었다. 남동생 부인은 지난해 9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조카를 맡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돌잔치까지 해줬다. 황 준위는 초등학교 6학년 딸 하나, 5학년과 3학년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주변에선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종사 신기용(44) 준위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딸 둘이 있다. 손위 처남 안종혁(40)씨는 “가족을 끔찍이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며 “둘째 딸 초등학교 입학식이 다음 달 3일이라 가본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승무원 이세인(21) 일병의 가족은 12시4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거제도에서 급히 올라왔다. 이 일병의 어머니 김경자(47)씨가 “헬기 부대에 배치받았다고 하기에, ‘비행기 타면 무섭지?’라고 물었더니 ‘엄마 괜찮아’라고 하더라”며 “제발 살려 주세요”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큰형 이주현(34)씨는 “지난해 12월 전화를 걸어 어머니 용돈을 드리려 하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아직 계좌번호를 가르쳐 주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승무원 최낙경(22) 상병은 전북 익산대학 자동차학과 1학년에 재학 중 입대했다. 어머니 송영신(48)씨는 “설에 2박3일 휴가를 나왔는데 발가락에 동상 걸린 걸 숨겨 가슴이 아팠다. 내가 나중에 알고 ‘왜 말 안 했느냐’고 하니 ‘곧 정기 휴가니 그때 가면 된다. 걱정 마 엄마’라고 말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의무병 김범진(22) 상병은 10월 전역을 앞두고 있다. 대전보건대 응급구조학과 3학년 재학 중 입대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외박을 나갈 예정이었다. 지난해에는 ‘친절병사’로 선정됐다.
강인식 기자, 성남=강기헌·이현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