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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85억원 과르니에리 한국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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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가격은 말할 수 없어요.” 다음달 11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안 라클린(34·사진)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악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카로두스(Carrodus)’라는 별명이 붙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전설적인 악기 제작자 주세페 과르니에리 델 제수가 1741년 만든 것이다. “악기 주인은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이고 제게 빌려줬죠. 하지만 악기 가격은 제가 직접 말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그가 속한 매니지먼트 회사 아스코나스 홀트 측은 감정기관에 확인한 결과 악기의 가격이 9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약 85억원이다. 세계 최고가 수준이다. 과르니에리는 당시 스코틀랜드의 기사 맥켄지의 주문을 받고 카로두스를 만들었다. “‘카로두스’는 맥킨지 이후의 주인이었던 영국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 이름이에요. 100년 이상 주인을 바꾸다가 제 손에 들어온 건 1991년이었죠.”

라클린은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왔다. 15세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닉과 빈 데뷔 무대에 설 때 처음 이 악기를 사용했다. 처음엔 시험적으로 악기를 대여해줬던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은 2년 후 그에게 다시 무기한으로 빌려줬다. 라클린은 이 악기로 매년 전세계 30여 개국에서 120여 회의 연주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리를 잘 감당하지 못했어요. 너무 파워풀하고 까다로웠죠. 적응하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꾸밈없고 거칠다(earthy)”고 표현한 그의 악기는 제값을 톡톡히 해낸다. “워낙 유명한 악기라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오는 청중이 많다”는 것이다. 라클린의 카로두스는 과르니에리 특유의 용맹한 소리에 유연성이 더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1683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f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목수로 일하며 가구를 만들다 22세에 바이올린 제작에 뛰어들었다. 좋은 나무를 보는 눈과 손재주를 동시에 갖출 수 있었던 이유다.[사진=스트라드 제공]

◇전설적인 닉네임=카로두스 같은 별명이 붙은 악기는 그렇지 않은 악기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다. 명품 제작자인 스트라디바리 가문의 ‘메시아’ ‘넬슨’ ‘비오티’ 등은 전설적인 애칭이다. 전문가들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말한다. 경매에서 낙찰된 후에야 기록적인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해머’라는 닉네임이 붙은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54만 달러(약 33억원)에 팔렸다. 1729년산 ‘솔로몬’ 역시 이 경매에서 273만 달러(약 26억원)에 낙찰됐다. 이처럼 18세기 이탈리아의 명품 바이올린의 값은 수십억원을 훌쩍 넘는다.

◇명품의 비결=전문가들은 “모든 ‘박자’가 잘 맞아떨어졌을 때 명품이 나온다”고 말한다. 북부 알프스의 중턱에서 가져온 단풍나무와 전나무, 울림을 방해하지 않는 최고급 도료(varnish)가 기본 조건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의 악기를 관리하는 이승주씨는 “나무의 두께나 현을 올려놓는 브리지의 높이가 0.1만 달라져도 소리가 완전히 바뀐다”고 설명했다. “아주 민감한 악기이기 때문에 명품이 나올 여지도 크다”는 것이다.

유명한 제작자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는 f자 모양으로 난 구멍이 45(폭)×69(길이) 크기인 것이 많다. 반면 그의 제자인 스트라디바리는 47×72로 약간 큰 것이 대부분이다. 과르니에리는 약간 더 넓고 길다. 이승주씨는 “이 약간의 차이 때문에 과르니에리의 소리가 가장 어둡고 파워풀한 편”이라고 풀이했다.

 ◇투자 대상으로 인기=13일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바이올린 최고 낙찰가가 경신됐다. 과르니에리가 1740년대에 제작한 바이올린이 개별 협상 방식을 통해 팔린 것이다. 소더비 측은 낙찰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기록(354만 달러)을 훨씬 초과했다”고 밝혔다. 악기를 낙찰받은 사람은 러시아의 변호사 막심 빅토로프(35). 그는 명품 악기 수집가로 소더비에서 105만 달러를 주고 1720년대산 베르곤지 바이올린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만 해도 명품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낙찰가는 20만 달러 선이었지만 이 기록은 해마다 경신되고 있다. 희소성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 가문의 1세대인 안토니오가 제작한 악기는 모두 1000대 정도. 그중 500여 대 만이 시장에 나와있다. 과르니에리는 더 적어 150여 대다. 자연 투자 대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현악기 제작·수리 업체인 스트라드의 이원필 대표는 “1억원 넘는 악기를 구입하면 연 10~20%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음악가라는 실수요층이 항상 존재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명품 바이올린은 투자자에겐 재산이지만 연주자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한 동반자다. 신동 소리를 들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가렛(26)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171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사고로 산산조각났을 때 “망가진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잃었다”며 슬퍼했을 정도다. 악기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리에만 6만 파운드(약 1억원)가 든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악기 제작을 하고 있는 김민성씨는 이 소식을 듣고 “숭례문이 불탄 것과 비슷하다. 수리하더라도 다시는 예전 같은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애석해 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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