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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형 학원’ 실험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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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김정현(앞줄 가운데)양과 김석현(왼쪽)·양대신(오른쪽)군 등이 옥천인재숙의 후배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곳에서 내리 2년째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니, 이거야말로 시골 학생들의 멋진 반란 아닌가요.”

설 연휴 때 고향인 전북 순창군을 찾은 신형식 전북대 교수는 군청·교육청 등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들을 보며 가슴이 뿌듯했다. 플래카드에는 ‘경축, 서울대 합격’ ‘2년 쾌거를 축하합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순창군에서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제일고 김정현(자연대 생명과학부)양과 순창고 양대신(농생명대)·김석현(체육교육학과)군 등 세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지난해에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김준영(농생명대 조경학과)·양창수(농생명대)씨 등 두명이 서울대 배지를 달았다.

전체 인구가 3만2000여명에 불과한 순창군에서 2년 연속 서울대생이 나온 것은 ‘옥천인재숙’ 덕분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기숙형 공립학원이 농촌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지역 인재를 키워내는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비슷한 형태의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 설립을 약속한 상태다.

순창군이 옥천인재숙을 설립한 것은 2003년 6월. 지자체의 기숙형 학원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20억원을 들여 설립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농촌 인구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였다. 순창군은 1960년대 10만명을 웃돌던 인구가 현재 3만명 대로 감소했다.

강인형 군수는 “학생 한 명이 전학을 갈 경우 가족 4명이 한꺼번에 빠져 나간다”며 “학부모와 학생들이 만족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인구 감소를 막는 최상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옥천인재숙은 중3 ~고3 학생을 각 학년당 50명씩, 총 200여명을 뽑아 집중적으로 공부시킨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 7시부터 이곳에 모여 학원 강사들로부터 강의를 받는다. 강의는 국어·영어·수학·논술 등 네 과목을 기본으로 하며, 고교생들에게는 사회탐구·과학탐구를 가르친다. 순창군은 이를 위해 광주·전주 등의 학원가에서 일류 강사 14명을 초빙했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수업료·기숙사 비용은 없고 식비로 한끼당 2000원씩을 낸다. 순창군이 운영비로 1년에 10억원씩 지원한다. 서울대에 합격한 김정현양은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끼리 모이니 면학 열기가 뜨겁고, 강사 선생님들이 입시 경향이나 심화 문제 등을 자상하게 지도해 줘 도시 학생들이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아이들 교육을 교육청·학교에 맡겨야지 왜 지자체가 나서냐”며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들은 “지자체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며 강 군수를 학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어떤 효과 있나=기숙형 공립학원의 성과는 다른 농촌 지자체와 비교할때 두드러진다. 순창군이 내리 2년째 서울대 합격생을 5명이나 배출했지만 주변 규모가 비슷한 지자체서는 10~20년째 단 한명도 서울대 합격생이 없다.

옥천인재숙의 경우 올해 졸업생 35명 가운데 현재 19명은 서울대·성균관대·경희대 등 수도권 유명대학에, 13명은 지방 국·사립대에 들어갔다. 나머지 3명도 예비 합격자로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매년 고질병처럼 되풀이되던 도시전학생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중 3학생은 2005년에 전체 249명 중 43명(17%), 2006년에 254명 중 46명(18%)이 빠져 나갔지만 2007년에는 260명 중 35명(13%), 2008년에는 278명 중 4명(1.4%)으로 뚝 떨어졌다. 오히려 타지역서 들어 오려는 전입 희망자가 지난해 45명, 올해는 62명으로 늘었다.

강 군수는 “옥천인재숙은 농촌 교육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실험”이라며 “한해에 100여개의 지자체에서 찾아 와 벤치마킹을 해갈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글=장대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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