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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스톱’ 암은 정복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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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20면

‘암과의 전쟁’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라운드의 주역은 정부였다. 정부는 1996년 ‘제1기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암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조기 암 검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2001년 국립암센터가 문을 여는 등 성과가 있었다. 2006년 시작된 제2기 10개년 계획은 암을 예방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신 치료 동향과 예방법 #

2라운드는 대형 병원들이 나섰다. 삼성서울병원이 앞장선다. 지난달 2일 민간병원으로선 처음으로 독립된 공간의 암센터를 연 것이다. 국립암센터(500병상)나 일본국립암센터(600병상)를 능가하는, 단일 암센터로는 아시아권에서 최대 규모인 652병상이다. 내년엔 서울아산병원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등이 차례로 암센터를 개원한다. 1969년 우리나라 첫 암센터를 열었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새 암센터를 짓기 위해 올해 첫 삽을 뜬다.

올해 문을 연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는 수술용 로봇 다빈치 등 고가의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2005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처음 도입한 로봇수술은 비싼 수술비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삼성암센터 제공]

대형병원들이 앞 다퉈 암센터 설립 경쟁에 나선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고령화와 함께 암 발병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3차 의료기관인 이들 병원에선 입원환자 가운데 40~60%가 암환자일 만큼 수요가 많다. 게다가 암은 다른 질환보다 진료 기간이 길고, 각종 검사 및 치료·약제비가 비싸 병원을 경영하는 측면에서 볼 때 매력 있는 시장이다. 암 진료 분야에서 권위를 확보하면 병원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속내야 어쨌든 최첨단으로 무장한 암센터의 등장은 환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병원들이 새로운 암센터 설립의 당위성으로 내세우는 것도 ‘환자 중심’의 진료 시스템 구축이다.

진료과목 없앤 통합시스템

부산에 사는 조용호(42)씨는 지난해 오른쪽 가슴의 통증과 기침·가래가 심해 개인병원에서 기관지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고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폐암 의심 소견을 받은 조씨는 지난달 8일 삼성암센터 폐암센터를 찾았다. 내과 교수는 조씨에게 정밀검사를 받도록 권했다. 11일 입원한 조씨는 며칠에 걸쳐 기관지내시경, CT검사 등을 받았다. 이번에도 암 조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폐의 염증 상태는 그대로였다. 15일 정밀검사 결과를 가지고 호흡기내과·혈액종양내과·흉부외과·병리과·영상의학과 등의 의료진이 폐암센터 협진실에 모였다. 이들은 수술이 최선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암에 대한 조직학적 확진은 없지만 CT 결과 등이 암을 의심할 만하고, 폐의 염증이 약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씨는 17일 흉강경을 이용해 폐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다음 날 조직검사 결과 폐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임파선으로도 일부 전이된 상태였다. 조씨는 앞으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함께 받기로 했다.

조씨가 삼성암센터에서 초진부터 수술까지 걸린 시간은 10여일. 게다가 예전 같으면 3~4차례 내·외과를 옮겨가며 진료를 받아야 했을 터이지만, 이번에는 내과에서 한 차례 외래 진료를 받았을 뿐이었다.

심영목 삼성암센터장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검사장비를 확충해 대부분의 진료와 검사가 6대 암센터별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원스톱 진료가 가능해짐으로써 환자가 외래 진료에서부터 수술을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주일 정도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각 암센터 소속 교수들은 매일 한 번씩 협진실에 모여 그날 진료한 환자들에 대한 회의를 열고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사실 이렇게 암별로 통합된 진료센터를 운영하는 시스템은 국립암센터에서 먼저 시작됐다. 서울아산병원도 팀별 진료 체계를 갖추고 있다. 환자에 대해 내·외과는 물론, 방사선종양학과·영상의학과·핵의학과·병리과 등이 팀워크를 이룰 수 있도록 체계화한 협진 시스템은 국내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삼성암센터의 또 다른 특징은 대규모 통원치료센터다. 현재 대부분의 큰 병원들이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통원치료센터를 운영하지만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번 항암주사를 맞으려면 2~9시간이 걸리는데 공간이 부족해 대기하는 환자가 부지기수다. 삼성암센터는 새 통원치료센터를 기존의 두 배가량인 67개 병상 규모로 만들었다.

서울대병원 등 다른 병원들도 암센터의 외래환자들을 배려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대부분의 큰 병원들이 병실난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환자들이 항암주사 한 번 맞기 위해 입원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불합리한 경우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고가의 첨단장비들 ‘장삿속’ 논란도

암센터들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첨단 장비다. 삼성암센터는 2012년쯤 양성자치료기를 들여놓겠다는 계획을 밝혀 경쟁 병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양성자치료기는 양성자를 신체의 정확한 위치에 쏘아 암세포 파괴율을 높이는 반면 방사선 치료로 인한 부작용은 줄일 수 있는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린다. 현재 국내에선 유일하게 국립암센터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양성자치료기는 아직 적용할 수 있는 증상이 적은 데다, 장비 가격이 360억원이나 돼 다른 병원들은 도입 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의 경우 지난해 양성자치료센터를 여는 데 478억원이 들었다. 이 기기를 이용해 환자들이 20회 치료를 받을 때 2000만원 정도의 비싼 치료비를 내야 하지만 하루 30명 안팎이 이용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새로 짓는 암센터에 토모테라피와 다빈치로봇, 신형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IMRI) 등 모두 100억원이 넘는 장비를 배치할 예정이다. 세브란스병원이 2005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수술용 로봇 다빈치의 경우 대당 25억원으로 비싼 데다 운영비가 많이 들어 현재 수술비가 건당 700만~15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올 1월까지 770건의 수술 건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른 병원도 앞 다퉈 도입할 만큼 환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동안 세브란스병원은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전립선암· 위암·대장암·갑상선암·자궁암 수술 등에 적용했다. 가장 많이 적용된 전립선암의 경우 신경세포를 손상시키지 않는 섬세한 커팅 덕분에 요실금과 발기부전 등의 부작용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는 것이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자체 평가다.

대형 병원들의 암센터 경쟁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고가의 첨단장비 도입이 신뢰할 만한 치료 결과를 근거로 했다기보다는, 큰돈이 들더라도 치료받고 싶어하는 암환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우수한 의료진을 확보할 계획도 없이 건물과 장비만 최첨단으로 무장하는 것은 암 치료의 질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병원의 허대석 암센터 소장은 “암 치료는 유명한 의사 한두 명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새 암센터들이 추구하는 통합진료시스템은 그런 점에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암환자에게 뛰어난 인력과 기술을 가진 대형 암센터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말기 환자와 같이 돌봄이 필요한 단계는 1, 2차 의료기관과 연계해 역할을 나눠 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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