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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 또 하나의 가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호 21면

내 가방 안에는 늘 가방이 또 들어 있다. 두 개나 들어 있다. 가방 안의 가방들은 흔히 말하는 ‘장바구니’다. 집에서 혼자 일하니 매일 외출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일 약속이나 친구와의 약속이 있으면 나간 김에 대형 서점들을 순례하고 집 앞에서 장도 본다. 요즘 대형 서점에서는 책 말고도 살 게 많다. 음악 CD, 영화 DVD, 갖가지 문구류도 있다. 계산대 앞에 서면 지갑에서는 적립카드를 찾고, 가방 속에서는 접혀 있는 장바구니를 꺼내 편다. 내가 열심히 가방을 펴도 계산대의 점원은 으레 묻는다. “봉투 50원인데, 필요하십니까?”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서점이든 백화점이든 동네의 조금 큰 수퍼마켓이든 일회용 봉투는 돈을 내야 받을 수 있다. 50원 혹은 100원의 이 ‘봉투 값’은 실은 봉투 값이 아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봉투 혹은 종이봉투의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환경 보증금’이다. 소비자에게는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고, 상인에게는 선심 쓰듯 일회용 봉투를 남발하지 못하게 해야 환경 보증금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아직도, 동네 수퍼마켓에서조차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환경 보증금은 그저 봉투를 사는 값, 냈다가 나중에 돌려받는 돈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흔히 비닐 봉투라고 부르는 얇은 플라스틱 봉투는 보증금이 매겨져 있어도 그렇게 대개 한 번 쓰고 버려진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봉투가 소비될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쓰일지 따져 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버려진 다음이 더 문제다. 묻으면 썩지도 않을 것이며, 태우면 발암물질을 내뿜을 것이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늘 장바구니로 쓸 가방 하나를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다. 접으면 부피가 아주 적어지는 나일론 가방도 많다. 이런 것을 서류 가방에 하나쯤 넣어 다녀야 한다. 퇴근길에 빵집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아이들에게 줄 케이크를 살 수도 있고 아침에 신문에서 읽은 신간을 한 권 살 수도 있으니 그때 일회용 봉투는 사양하고 가방 속에서 나일론 가방을 짜잔 펼치자.

요즘은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도 사은품으로 장바구니를 나눠 주는 일이 많지만, 늘 가지고 다닐 것이라면 조금 멋스럽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사는 것도 좋겠다. 처음에 나는 합성섬유를 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두꺼운 면포 소재의 가방을 샀는데, 이것은 접어도 부피가 커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불편하다.

면포 가방은 장을 볼 목적만으로 집을 나설 때 쓰고, 나일론 가방을 따로 장만했다. 사은품으로 받게 되는 장바구니도 꼬박꼬박 챙겼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다. 주부인 친구도 나한테 받기 전에는 변변한 장바구니 하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랍기까지 했다.

내가 장바구니로 쓸 가방을 산 곳은 ‘무인양품’이다. 두꺼운 면포와 나일론, 두 가지 소재로 정장한 남자가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쇼핑용 가방을 살 수 있다. 여자가 핸드백에 넣고 다니기에 좋을, 접으면 CD 케이스만 한 손지갑처럼 변하는 쇼핑용 가방은 ‘유니클로’에서 여러 색상으로 판다.

얇은 면포나 마 소재의 제품들도 디자인 상품을 전문으로 파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영국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I’m Not a Plastic Bag’이나 마크 제이콥스가 내놓는 쇼핑용 캔버스 가방으로 남다른 멋을 낼 수도 있다.


글쓴이 조동섭은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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