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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인 1주기 … 제자 등 150명이 추모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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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41~ 2007

2일 오후 4시 고(故) 오규원(1941~2007) 시인의 1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예장동 서울예술대 드라마센터에서 열렸다.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한국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대표하는 시인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시창작 강의를 했다. 그에게 시를 배운 많은 제자가 훗날 시인이 됐고, 소설가가 됐다. 신경숙·황인숙·이진명·함민복·장석남·박형준·조용미·이원·하성란·강영숙·황병승·천운영·편혜영·윤성희 등 이른바 ‘오규원의 제자들’은 오늘 한국 문학에서 제각각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모두가 시인으로부터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들(‘프란츠 카프카’부분)’이란 소릴 들으며 문학을 수업했던 이들이다. 제자 시인 이원(40)씨는 “혹여 유족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제자들이 몇 푼씩 갹출하고 몸으로 뛰어 이날 자리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하나 행사는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참가자 숫자도 150명을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생전의 고인과 너나들이 사이였던 문단 어르신이 여럿 보였다. 최인훈·김병익·정현종·김치수·김주연·김화영·김광규·김형영 등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이런 어르신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요즘엔 흔치 않다.

고 오규원 시인의 1주기 추모제가 2일 오후 서울예대 드라마센터에서 열렸다. 제자들이 스승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고인과 직장 동료였던 『광장』의 최인훈(72) 작가는 옛날 수학여행 같이 갔던 일 등을 회고하며 45분간이나 추모사를 했다. 최씨는 “가난한 우정밖에 얘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시인에게 사과했다.

고인과 동갑내기인 평론가 김주연(67)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시인는 ‘세계는 동사인데 언어는 명사’란 말을 자주 썼다”며 “누구보다도 언어 자체와 치열하게 싸웠던 시인이자 몸과 마음 모두를 시에 바친 순교자”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어 황병승·곽은영·최하연·이은림 등 제자 시인 네 명이 무대에 올라 스승의 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이날 낭송된 시편은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유고시집 『두두』(문학과지성사)에서 고른 작품이다. 시집 제목의 ‘두두’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란 선가(禪家)의 말씀에서 따온 것으로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다’란 뜻이다. 생전의 시인이 추구했던 ‘날 이미지의 시’의 세계를 상징한다.

91년 시인은, 폐기종이란 알려진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허파가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기능을 잃어 인간이 누리는 산소의 20%만으로 살아야 하는 병이다. 귀한 숨 아껴 쉬며 시인은 시를 썼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리고 지난해 1월 21일 시인은 병상에 누워 마지막 시를 남겼다. 이원 시인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눌러 써 남겼다.

‘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그로부터 열흘쯤 뒤인 2월 2일 시인은 마지막 숨을 거뒀고, 사흘 뒤 강화도 정족산 기슭 소나무 아래 가루가 되어 뿌려졌다.

시인의 일생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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