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자신이 고혈압 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예상 외로 많다. ‘침묵의 살인자’인 고혈압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이들은 정기적인 혈압 측정마저 귀찮아 한다. 둘째, 고혈압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의사·약사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 이들은 약 복용을 꺼리거나 약 복용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임의로 약을 끊기도 한다. 의사와 상의 없이 약을 중단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건 도박이다. 셋째, 고혈압 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는 환자가 수두룩하다.
혈압이 높은 사람들이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겨울이다. 세계적인 고혈압 전문가 독일 본대학의 라이너 뒤싱 교수와 신촌세브란스 심장내과 정남식 교수가 올바른 혈압 관리를 위한 최신 약물요법을 소개했다.
고혈압 약은 크게 이뇨제·베타 차단제·앤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ACE 차단제·칼슘 채널 차단제(CCB) 등 다섯 종류가 있다.
이 중 한 종류로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는 두 종류 이상의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올해 유럽심장학회(ECS)와 유럽순환기학회(EHS)도 같은 내용의 처방지침을 권장했다. 보통 1단계 고혈압인 경우 한 가지 약으로 시작하고, 목표 혈압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두 번째 약을 추가한다. 여기엔 나이, 심장병 유무, 울혈성 심부전, 신장 질환 등이 참고된다.
ECS와 EHS는 또 함께 복용하면 혈압강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고혈압 약 조합 6가지를 발표했다. 이뇨제와 베타 차단제, 이뇨제와 ARB, 이뇨제와 ACE 차단제, CCB와 베타 차단제, CCB와 ARB, CCB와 ACE 차단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임의로 고혈압 약 짝짓기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기존 질환, 약에 대한 부작용, 약들 간의 상호 작용 등을 고려해 처방해준 약을 함께 먹어야 안전하다. 또 당뇨병·심근경색·협심증이 있으면 그 사실을 반드시 의사에게 사전에 알려야 한다.
◆임으로 약 복용 끊으면 위험=환자가 의사의 처방대로(복용 시간·용량 등)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 즉 환자의 순응도가 떨어지는 것은 한국과 독일이 비슷하다. 환자의 순응도가 낮은 것이 고혈압 환자가 혈압 조절에 실패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순응도를 높이려면 반복적인 환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순응도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사와 상의 없이 환자가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10만9000명의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중 20%가 6개월 내에 임의로 약을 끊었다. 3년 후엔 이 비율이 50%로 늘었다. 실제 고혈압 약 복용을 임의로 끊은 뒤 심장병·뇌졸중으로 숨진 사람이 적지 않다. 한동안 증상이 없으면 자신의 고혈압이 완치됐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