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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 “평화의 연주 멈추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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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5년 8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라말라 공연 당시 바렌보임(가운데).

 2002년 9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레스토랑.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66)이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반역자”라는 외침이 들렸다. 몇몇 사람이 그에게 욕설을 퍼붓자 바렌보임의 아내 엘레나는 그들에게 샐러드를 던지며 응수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다른 중동국가에서 반반씩 단원을 뽑아 구성한 ‘서동시집(西東詩集·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 때문이었다. 유대인인 바렌보임은 1999년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이름 높은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와 손잡고 이를 창단했다.

바렌보임은 평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강경책을 비판해왔다. 그 때문인지 같은 해 3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위치한 라말라에서의 연주는 이스라엘의 반대로 무산됐다.

 라말라 공연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유산을 거듭하다 2005년 8월에서야 이뤄졌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 연주가 끝나자 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14~26세의 청소년 단원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총부리를 겨누던 이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바렌보임이 올해 “평화를 위한 연주를 멈추지 않겠다”며 라말라에 다시 갔다. 3년 만이다. 독일 dpa 통신에 따르면 그는 12일 라말라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있다. 공연 뒤 600여 명의 청중이 낸 기부금은 가자 지구 어린이를 위한 의료비로 쓰기로 했다.

 공연장에는 사이드의 부인 마리암이 참석했다. 이날 연주 뒤 팔레스타인 정부는 바렌보임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확신을 줬다”고 치하했다.

 바렌보임은 두 번의 라말라 연주에서 모두 베토벤의 곡을 선택했다. 그는 “베토벤을 연주할 권리가 독일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듯, 음악이 인종과 분쟁을 모두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나치가 찬양했다는 이유로 유대인에게 금기시 되던 바그너의 음악을 2001년 예루살렘에서 연주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때도 그는 청중의 비난을 음악에 대한 찬사로 바꿔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양쪽 모두의 비판을 받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호정 기자

◆서동시집=동방문화에 애착이 많던 괴테의 작품에서 이름을 따왔다. 99년 이후 매년 여름 휴가철에 스페인 세비야의 본부에 모여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2005년 라말라 공연 DVD를 비롯한 이들의 연주실황은 워너 클래식에서 출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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