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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에 ‘서울로 가는 길’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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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민들이 11일 아침 출근을 위해 눈을 맞으며 서울 광화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기상청은 12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내린다고 예보했다. [사진=변선구 기자]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가 시작된 11일 오전 9시10분. 진행자 강석우씨가 “현장에 나가 있는 양희은 리포터를 연결하겠다”는 엉뚱한 멘트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산에 사는 여성 진행자 양씨는 휴대전화로 “오전 6시30분쯤 (일산 마두역 근처) 자동자를 몰고 집을 나섰지만 너무 막혀 집으로 돌아갔다가 버스를 탔는데 아직도 일산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아마 방송이 끝날 때(오전 11시)까지 방송국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기예보·제설작업 온통 부실=가수 출신의 양씨는 끝내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서울·경기 지역에 이날 새벽부터 내린 눈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10시까지 적설량이 3㎝가량이었는데도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에다 제설작업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도로가 마비됐다. 특히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주요 간선도로는 주차장이 되다시피했다. 일산·분당·중동 지역의 수많은 시민이 양씨처럼 지각 사태를 빚었다.

 수원시 정자동에 사는 박정환(40)씨는 “서울 성수동 회사까지 평소 1시간 반이면 출근하는데, 오늘은 3시간 반이 걸렸다”며 “이렇게 도로가 얼어붙은 걸 보니 염화칼슘도 뿌리지 않은 모양”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도로 정체가 극심해지면서 승용차로 출근하다 중간에 내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경우도 속출했다.

 고양시 백석동 흰돌마을에 사는 정수현(32)씨는 “오늘 아침 서울 삼청동 사무실에 가기 위해 수색 방면 국도로 차를 몰다 도로가 완전히 마비되다시피해 근처 아파트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을 탔다”며 “10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에 도착하는 바람에 중요한 미팅에 지각했다”고 난감해했다.

 교통 대란의 원인은 기상청이 정확한 예보를 내보내지 못한 데다 제설작업을 담당하는 관련 기관의 늑장 대처로 도로가 얼었기 때문이다.

고양시 재난상황실 관계자는 “평소 기상청 사전 예보에서 눈 올 확률이 60% 이상이면 눈 내리기 한 시간 전까지 염화칼슘을 도로에 뿌려놓는데, 기상청이나 소방방재청 등이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제설작업에 나서다 보니 역부족이었다”고 실토했다.

 경기도 상황실은 이날 오전 8시쯤 제설작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시·군·구청에 보냈다. 소방방재청과 기상청은 오전 9시30분에야 대설주의보를 발동했다. 일산에 사는 한 시민은 “최근에는 눈도 안 오는데 염화칼슘을 뿌려 말썽을 빚었던 시가 이번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수험생 지각도 속출=이날 논술고사를 치른 서울대·서강대·건국대에서도 지각하는 수험생들이 속출했다. 이날 서울대는 당초 오전 10시부터 시험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한 시간을 늦췄다. 다른 대학도 20분~1시간가량씩 시험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학부모로부터 지각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전화가 쇄도해 수험생들에게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내 시험 시간 연기를 알렸다”고 말했다.

 지방에서도 도로 통제가 잇따랐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인제군 북면을 잇는 미시령 옛길은 11일 오전부터 차량운행이 전면 통제됐다. 화천읍 풍산리 406번 지방도 해산터널 부근은 이날 낮 12시부터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강원도에는 12일까지 최고 25cm의 눈이 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설악산 국립공원은 11일 오전 9시부터 입산이 전면 금지됐다. 기상 악화로 원주~제주를 오가는 항공기가 결항되기도 했다.

글=강인식·한인화 기자, 내셔널부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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