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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녘동포>1.外貨는 뭐든구하는 도깨비방망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앙일보는 본명과 사진의 보도를 바라지 않는 귀순자 5명의 의사를 존중해 사진을 싣지않고 이름을 이철규(39).홍남균(27).김형만(21).김동만(43).조명순(34.여)씨로 가명을사용했습니다.

<편집자 주> 평양 보통강 구역의 경흥상점 거리-.
일단의 젊은이들이「외화와 바꾼 돈표」(이하 바꾼 돈표)로 거리낌없이 외국 물건을 산다.경흥상점등 외화상점에는 일본.중국.
미국제 상품들이 가득 차 있다.상점 앞에는 꽃을 든 아가씨와 여대생이『꽃을 사라』고 살짝 접근한다.외화.바꾼 돈표를 손에 넣기 위해 몸을 파는 현장이다.
평양에서「잘 나간다」는 젊은이들은 짓다 만 1백5층 류경호텔근처의 경흥상점 거리로 모여든다.외화상점만 찾는 젊은이들은 고위간부.북송동포의 자제들이거나 무역일꾼 혹은 외화벌이에 빠져든「거간꾼」들이다.이들은 고려.청년.서산호텔등을 전전하며 당구와빠징꼬를 즐기며 코냑을 마시고 댄스파티도 연다.
물론 경흥상점 거리에는 안전원(경찰)들이 있다.그러나 이들도경흥상점 거리를 무시로 드나드는 젊은이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외제담배를 얻어 피우고 일용품을 받아쓰는 재미에 단속은 뒷전이다. 김명철(金明哲).김동만(가명).윤웅(尹雄).진광호씨등평양사정에 밝은 귀순자들의 증언이다.
판문점 경비소대장을 한 김남준(金南俊.33)씨는 『86년초 연형묵(延亨默)당시 제1부총리의 아들 연희준이 김일성종합대학 2학년 재학중 입대해 나의 경비소대에서 근무했다』며『그는 팬티.양말에서부터 옷가지.생필품 등을 모두 외화상점에 서 구한 외제를 쓰고 있어 충격과 함께 북한체제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체」의 나라 북한이 「외화(外貨)의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단적인 풍속도다.
생필품의 만성적 부족현상이 계속되면서 외화상점에서만 어떤 상품이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게 오늘의 북한이다.때문에 외화의 암거래가 성행,달러당 암시세가 공정환율의 40~50배로 형성되고 있다.1달러가 노동자 한달 월급(80~1백원) 의 가치를 지닌다. 당초 외국인.외교관.무역일꾼등 해외근무자.북송동포 및당간부들의 전용물이었던 외화상점은 바꾼 돈표(1달러가 바꾼 돈표 2.15원선) 소지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청진광산금속대학.평양철도전문학교를 다닌 윤웅(29)씨는『고위층 자제들은 거의 외화상점을 이용하며 한끼 식사비가 바꾼 돈표로 10원 이상인 외화식당만 찾는다』고 밝혔다.
정무원의 무역회사 대외사업지도원 김동만(43)씨는『외화상점 이용자의 90%가 내국인』이라고 전했다.
군수생산업체인 만경대 보석가공공장의 무역지도원 김명철(35)씨의 증언.
『평양에는 19개구역(우리의 구에 해당)마다 외화상점이 하나씩 있어 바꾼 돈표를 소지한 주민들만이 이용하므로 누구나 바꾼돈표를 가지려 애쓴다.중앙당 간부들이 로스만.말보로.마일드세븐등 외제담배만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된 김정일(金 正日)이 92년말 중앙당 간부들의 호주머니 검사를 지시해 노동당 본청사가 호주머니 검사로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북한돈의 가치폭락은 상품의 품귀현상과 농민시장(도시에선 장마당)에서의 가격폭등 때문이다. 일부 장사꾼들이 바꾼 돈표를 마련해 외화상점에서 공정가격으로 물건을 다량 구입,「재생수매상점」등에 이익을 붙여 되파는 등의 암상(暗商)현상도 나타나고 있다.암거래가 조직화되고국가의 유통망통제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강도(慈江道) 혁명사적지보존사업소의 물자공급원 고청송(高靑松.34)씨의 증언.
『외화상점의 물건들이 농민시장에 나오면 대략 40배쯤 가격이뛴다.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물건은 없어서 못판다.국영상점엔전시용 진열품만 덩그러니 있고 여자 판매원은 할 일이 없어 하품이나 하며 뜨개질하고 있다.』 생필품의 절대부족과 함께 식량배급의 중단.지연이 북한 주민들을「연명(延命)을 위한 장사」로내몰고 있다.
일가족이 귀순해 화제를 뿌렸던 여만철(呂萬鐵.51)씨는『90년대 들어 궁핍한 생활 때문에 주부들이 두부.떡.생선장사등을 하며 살아간다』고 전한다.
그는『함흥의 국영상점에서 4원50전하는 비닐구두가 일단 농민시장에 나오면 1백60~2백원정도,2원80전짜리 내의는 30~40원,1원50전짜리 가스라이터는 20원등 10배에서 최고 40배까지 가격이 뛴다』고 밝혔다.
농장원은 쌀 빼돌리기,공장노동자는 생산품.자재빼돌리기로 시장에 내다파는게 광범위해져 너나없이 서로 빼돌리다 보니 단속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북송동포 출신으로 양강도 운흥(雲興)군 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기계분야 기술자 정기해(鄭基海.52)씨의 증언.
『보따리장사.밀주.밀도축등을 하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다.나자신은 대의원이어서 차마 장사에 나설 수 없어 가난을 면치 못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중대한 변화는 금지품목이던 식량 매매가 허용된 일이다.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92년 초 남포에서 시작된 장마당의 식량매매는 94년에 이르러전국적 현상이 돼버렸다.3~6개월,즉 6~12회분의 식량배급이밀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당국이 식량매매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윤웅씨는『함북에서 92년부터 농민시장의 식량매매를 부분 허용했는데 평양에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성시와 개천.성천군에 각각 1개씩 있는 장마당과 농민시장을이용해본 김광욱(金光旭.27)씨는『당국이 「농민시장은 자본주의의 온상」이라며 92년에 6개월동안 폐쇄한 적이 있다』며『94년 3월 탈북하기 직전 농민시장은 훨씬 더 큰 규모로 확장되고쌀까지 거래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청송씨는 『강계 농민시장에서는 쌀을 비롯한 식량.부식물.남새(채소).신발.철제용품.옷가지.천류.시계.자전거등 여러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가전제품은 시장에 나오지 않고 주로주민들간의 알음알이로 사고 판다.
***中國産 시장 범람 평남 속도전 돌격대원 김형만(21.가명)씨에 따르면 안주시에는 일명 「홍콩시장」이라 불리는 청남시장에 중국제품이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안주의 장마당에는 제대군인들의 「무리배치」(제대병의 의사에 관계없이 탄광.중노동 공장등에 집 단배치) 영향으로 공산품(장마당에선 유통금지품임)이 많이 유통된다.제대군인들이 생필품으로 이용할만한 군수품들을몰래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출장원들과 보따리장사들로 인해 안주가 북한에서 상품거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라는 사실도 안주토박이 백영길(白榮吉.25)씨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의주의 버스운전사 허철(許哲.24)씨는 『신의주 채하리시장(나중에 남송시장으로 이 전)에는 고양이뿔 빼놓고는 다 있다는말이 있을 정도로 없는게 없다』며 『이 시장에는 전지.양말.옷.약품등 중국산 제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덧붙였다.평일에도 시장에 물건을 사려는 주민들이 기웃거리지만 열흘에 한번 열리는 「1 0일장」때면 발디딜 틈이 없다.
90년대 들어 직장인들이 밤교대 근무를 마치고 낮에 장사하거나 작업반장에게 담배등을 선물하고 작업시간에 빠져나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병원에서 가짜진단서를 떼어 병가(病暇)를 내고 아예 전문적으로 장사에 나서는 현상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병원 간호사에게 사탕등을 선물하고 3일간의 진단서를 떼는 일은 흔하며 보름 이상의 장기 병가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하고 이 것은 뇌물로해결한다.
북한에서는 60일간 무직상태로 있으면 형사책임을 묻게 돼 있어 꾀병환자들이 많고 꾀병으로 직장을 이탈한 사람들이 장사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김광욱씨는 『장사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연락망을 갖고 있어서로 합의해 물주와 전주(錢 主)를 연결시키는등 드러나지 않게 활발히 움직인다』고 말했다.
***安州엔 「홍콩시장」 장마당이 흥성거리다 보니 「비사회주의행동」을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6.4그루빠가 시장에서설쳐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사회안전부의 현장 기동타격대 성격이 강한 6.4그루빠는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이후 90년대 들어 농민시장이나 암거래.폭력현장에선 어디서나 눈에 띈다.시카고판 中央日報 이찬삼 편집국장이 북한잠행에서 안전원이 장마당에서 부녀자들을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본 것도 이 6.4구루빠의 행패다.
그러나 3~4명 1개조의 6.4그루빠도 해를 거듭 할수록 타락의 길을 걸어 농민시장에서 갈취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장마당의 장사꾼들은 한편으론 조직폭력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6.4그루빠에게도 뇌물을 줘야 한다.
북한의 장사 바람은 지방대학도 휩쓸고 있다.청진의학대학생 박수현(朴秀現.28)씨등 대학생들의 체험담.
『참관.견학등의 기회가 많은 대학생들이 여행의 틈을 타 장사에 나선다.도시에서 물건을 사 고향 농촌에 팔고,농촌 물건을 도시에 가지고 와 판다.청진에서 물고기. 주을도자기(2백원 상당)를 사서 평북도 향산(香山)군에 가 쌀 35㎏과 바꾸고 이것을 다시 청진에 가져와 팔면 1천원 정도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배고픈 기숙사생활 때문에 외식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조그만 장사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회령 궁심탄광의 노동자 황광철(黃光鐵.21)씨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진의 큰어머니를 통해 소금 60㎏을 2백10원에 구입해 회령의 한 협동농장에 가서 강냉이와 1대1로 바꿔먹었다』고 한다.그의 고등중학생 아우도 물물교환 장사를 도맡아 했다.
장사의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직장에 다니지 않는 가정주부들이다. 백영길씨의 증언.
『안주에선 아주머니들이 집안에 편직기계를 갖춰놓고 옷을 만들어 파는게 유행이다.열집에 두집 정도는 이런 부업을 하며 한달에 30벌쯤 만들고 5백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김명철씨는주변에서 여자교원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가내공업을 하는 예가 많다고 말했다.수예.신발.단추.베개수예등을 만들어 평양시 각 구역에 있는 8.3인민소비품 직매점에 팔아 돈을 모아 필요한 물건을 산다는 것이다.
만포에 살던 조 명순(34.여.가명)씨의 체험기.
『여성들은 잔돈벌이 보따리 장사를 한다.중국에서 건너온 일용품은 눅은 값에 사서 청진등지로 가 두배 정도에 팔고 이 돈으로 명태.낙지등 수산물을 사면 만포에서 다시 두배 가격을 붙일수 있다.
***안전원 상납관행 여성들의 장사에서 흔한 것은 수요가 높은 양복지.샌들.양말.내의와 화장품등이다.나 자신은 고사리.고추등 남새와 잉어등 물고기,산삼,잣등의 물건을 중국으로 보내고중국에서 물건이 건너오면 재생수매상점에 전부 넘겨 파는 약간 큰 장사 를 해보았다.』 90년대 등장한 재생수매상점은 개인이사용치 않는 물건들을 상점이 위탁받아 이윤을 붙여 판매하는 것이었으나 점차 신상품으로 바뀌고 있다.이 상점의 특징은 국가운영이면서도 시장가격으로 위탁 판매한다는 것.
귀순자들의 일치된 증언은 90년대 들어 중국 방물장사들이 가져온 물건이 북한 전역의 생필품 공급선이 되고 있다고 한다.연변동포들은 농민시장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북한 상인에게 물건을 넘기는데 비해 화교들은 집에 들어앉아 방문객들에게 물건을 판다.화교 「백만장자」가 나온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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