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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절반 신화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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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은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아픔과 열정을 가진 이 당선자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 공약을 꼭 실천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학부모의 등골을 빼는 사교육비는 정말 ‘망국비(亡國費)’이다. 이 당선자가 밝혔듯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올해 30조원이 넘을 걸로 추정된다. 전체 교육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어처구니없다. 그런데 이 당선자는 2012년까지 사교육비를 현재의 절반인 15조원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대입 자율화와 학교 다양성 확대를 통한 공교육 강화가 그 실천 방안의 핵심이다. 모든 사교육의 종착역인 대입제도는 학생부·수능 반영 자율화→수능 과목 축소→완전 자율화 3단계로 수술하겠다고 했다. 혼란을 빚은 첫 수능 등급제도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2100여 개의 고교 중 100개는 자율형 사립고, 150개는 낙후지역 기숙형 공립고, 50개는 마이스터고로 만드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도 내놨다. 전체 사교육비의 절반을 먹는 영어의 공교육 강화를 위해 영어수업과 원어민 보조교사도 확대하겠단다. 세부 계획이 없어 아리송한 게 많지만, 뭔가 달라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이 당선자가 사교육을 잡을 수 있을까? 연말에 많은 교육계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역대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너무 쉽게 약속했다”며 반신반의했다. 청계천 복원과는 달리 교육은 밀어붙인다고 금방 성과가 나는 게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사교육 관계자들은 웃었다. 사교육은 이미 보편화돼 있는 상품인 데다, 입시 정책이 바뀌면 불안해진 학생들이 또다시 학원으로 몰려올 테니 “생큐”라는 것이다. 교육 정책이 바뀌더라도 3~4년 후 정권 말기에나 실행될 것이고, 다음 정권은 또 손을 대고, 그러면 사교육은 계속 행복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가 그랬다. 김대중 정부 때 연평균 10조2018억원이던 사교육비는 노무현 정부 때 21조972억원으로 두 배로 불어났다. 일반 입시학원 수는 2001년 1만7833개에서 지난해에는 3만2829개로 늘었다(통계청).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내신 강화와 수능 등급제 도입, 대학 규제, 특목고 억제에 올인한 현 정부가 엉뚱하게도 사교육 배만 불린 것이다. 2000년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한 온라인 사교육업체 메가스터디가 그 상징이다. 올 매출액은 1500억원, 코스닥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이 넘는다.

교육 혁신을 하려면 학부모의 마음으로, 학생을 섬기는 자세로 정말 신중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인기 영합을 위해 단기 처방을 해서도 안 된다. 다음 정권도 고개를 끄덕이도록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개혁이 필요하다. 이 당선자가 ‘사교육비 절반 신화’ 도전에 성공한다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거창한 약속이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역사의 평가는 혹독할 것이다. 따라서 각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세밀하고 단단하고 믿을 만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무자년(戊子年) 쥐띠 새해 ,학생·학부모의 소망이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