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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뇌성마비 … 북·꽹과리로 훌쩍 넘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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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애인 사물놀이팀 ‘땀띠’의 다섯 멤버. 왼쪽부터 조형곤(징), 신경환(장구), 이석현(꽹과리), 박준호(장구), 고태욱(북). [사진=최승식 기자]

21일 오후 서울 순화동 ‘세계문화오픈(WCO)’ 연습실. 다운증후군 조형곤(16)군과 뇌성마비 이석현(14)군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덩-’.

조군이 징을 울리면 이내 이군이 꽹과리를 두드린다. 북을 치는 고태욱(15·정서장애)군은 어깨를 들썩이고 장구를 잡은 신경환(17·정신지체)군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웃음을 거둘 줄 모른다. 자폐 증세를 가진 박준호(17·장구)군까지 모두 5명의 아이들로 이뤄진 사물놀이팀 ‘땀띠’의 연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이날 연습한 곡은 ‘삼도 농악가락’. 조 군의 징소리는 간혹 박자를 놓쳤다. 징소리가 조금씩 늦게 울리자 이들을 지도하는 현승훈(27·김덕수 사물놀이패 단원)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다른 사람들 소리도 들어야지!”

이들은 2003년 처음 모였다. 음악치료를 겸해 국악기를 잡았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지시를 잘 따르지 못했다. 악기를 내던지고 갑자기 옷을 벗는가 하면 리듬을 외우지 못해 애를 먹었다. 조형곤 군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게 되는 데는 4년이 넘게 걸렸다.

“비장애인과 함께 박수를 치면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반박자씩 늦어요. 다른 4명과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죠.” 현씨는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연주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다”고 전했다.

2004년 한 장애인 복지관이 주최한 장애인 풍물경연대회에 출전한 이들은 첫 무대에서 1위를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대에서도 악기를 집어던지고 내려올까봐 노심초사했어요.” 이석현 군의 어머니 최두희(40)씨는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당시 감격해서 울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이제 눈물이 말라서 나오지도 않아요.” 자폐증을 가진 아이 박준호 군을 기르는 조상구(41)씨가 거들었다.

수상 이후 신이 난 아이들을 위해 팀 이름도 만들었다. 밤낮으로 연습하던 아이들 피부에 생긴 여름철 땀띠를 떠올리면서 ‘땀띠’라고 붙였다.

이후 대회에 나가면 간혹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순위 밖의 억지 상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동정이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겨루는 대회만 일부러 찾아다녔다. 2005년 14회 부여세계사물놀이 겨루기한마당(장려상), 2006년 명창 박록주기념 제6회 전국국악대전(장려상)에 이어 지난 11월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세계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 학생부에서는 2위인 버금상을 수상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온 팀까지 합쳐 100여 팀의 경쟁자를 물리친 것이다.

이제 “너 말안들으면 국악 못하게 한다”는 말은 아이들에게 큰 벌이다. 자폐증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기만 하던 신경환 군은 북을 잡고 마음껏 두드린 지 3년여 만에 조금씩 긴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항상 환하게 웃고 있어서 친구들에게 “바보같다”는 놀림을 받던 고태욱 군은 ‘스마일 북맨’으로 변신했다. 사물의 리듬은 그렇게 아이들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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