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표율 3.3% 때 "이명박 당선 확실" 자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인 19일 서울 경기상업고등학교에 마련된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개표소에서 개표원들이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역대 대통령 선거 개표 중에서 가장 싱거운 승부였다.

19일 오후 6시 KBS.MBC.SBS 같은 방송국의 출구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배 가까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이 후보 지지자 측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함성을 질렀지만, 다른 후보 지지자들은 침묵에 빠졌다.

오후 6시10분 부재자 투표와 전남 장성.무안군의 개표가 처음 시작되면서 정동영 후보가 초반 1시간20분 정도 이명박 후보를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권과 영남권의 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개표가 0.7% 진행된 오후 7시30분쯤 이 후보가 정 후보를 따라잡고 1위에 올랐다. 개표율이 3.3%에 이른 오후 7시55분쯤 표 차가 커지자 일부 방송사는 득표율 추이를 감안해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 당선 확실'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방송사는 개표가 76% 정도 진행된 오후 10시47분쯤 '이 후보 당선 확정' 소식을 전했다.

개표는 대체로 순조로웠지만 일부 개표소에선 자동 분류기에 투표지가 걸리는 오작동으로 개표원들이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6시 시작된 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주민들은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기름띠 제거작업에 나섰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도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를 했다.

◆분류기 오작동으로 일부 개표 지연=서울 여의도고 실내체육관에서 시작된 개표에서는 투표지 자동 분류기의 오작동으로 개표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이곳에는 모두 7개의 투표지 분류기가 설치됐지만 3~4개에서 투표용지가 수시로 걸리는 바람에 개표 작업이 늦어졌다.

분류기가 멈출 때마다 담당 직원들이 기계 뚜껑을 열고 먼지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 임시 처방을 했다. 담당 직원은 "2002년 대선에 비해 투표용지가 길고, 날씨가 건조해 정전기가 생기면서 투표지가 두 장씩 엉겨 붙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화산체육관에 마련된 완산구 개표소에서도 개표 시작 10분이 지나지 않아 투표지 분류기 8대 중 3대에서 투표용지가 걸렸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투표 용지를 통과하는 홈이 투표 용지의 두께보다 좁아 용지가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도, 이민자도 소중한 한 표=광주시 동구 학동에 있는 행복재활원의 지체장애인 40여 명은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500m 떨어진 학운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재활원 관계자는 "투표소까지 가는 게 힘들어 투표를 포기하려는 장애인이 많았지만 학생들이 부축하거나 휠체어를 밀어줘 투표를 마쳤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유권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최광우(101.중구 남외동)옹은 오전 10시30분쯤 학성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대통령 후보와 울산시 교육감 후보를 골라 투표했다. 자식들과 함께 나온 최옹은 "앞으로 살 날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국민의 의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투표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부자콘 화이차야품(31)은 오전 9시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초등학교 투표소에 나왔다. 곧 둘째 아이를 출산할 부자콘은 "7월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처음 투표를 한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일부 유권자는 숭고한 한 표를 행사한 뒤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오전 8시10분쯤 인천시 서구 검단2동 제3투표소에선 최모(72)씨가 투표를 마친 뒤 갑자기 쓰러져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최씨가 2005년 4월 뇌경색 진단을 받고 계속 치료를 받아왔다는 주변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투표 사진 찍다 적발=오전 6시40분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서평초등학교 투표소에서 이모(36)씨가 기표소 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찍다 적발됐다. 투표 관계자는 즉시 이씨의 휴대전화를 확인한 뒤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씨가 카메라로 얼굴 사진만 찍었고, 투표용지를 찍지는 않았기 때문에 투표는 유효"라고 말했다. 오전 10시20분쯤 경기도 안양시 관양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도 박모(44.여)씨가 비슷한 행동을 하려다 투표 사무원의 제지를 받았다. 선관위는 공개 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 장면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글=내셔널부·사건사회부,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