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선 D-3] 이것만은 꼭 알고 투표합시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사흘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통령 선거는 후보 간의 정책 경쟁이 거의 실종된 선거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더구나 각 후보 진영이 발표해온 수백 개 이상의 공약을
일일이 기억해 따져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SUNDAY의 각 분야 에디터들이 이명박·정동영·이회창 등 유력 후보 3인이 내놓은 핵심적인 공약을 간추려 그 허와 실을 진단했다.
일자리·부동산·교육·복지 등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4개 분야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남북 관계가 분석 대상으로 선정됐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후보 때 경제공약은 연평균 50만 개의 일자리(5년간 250만 개) 만들기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30만 개 안팎에 그쳤다. 정동영·이회창 후보는그때와 똑같이 연평균 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60만 개를 약속했다. 정동영·이회창 후보는 노 대통령보다 1.6배, 이명박 후보는 2배의 일자리 만들기 능력이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정동영 후보는 ‘연평균 일자리 50만 개와 6%의 성장’을 내세웠다. 공약의 골자는 민간기업에 의한 일자리 만들기보다는 ‘정부 주도 의지’가 더 강하다. 당연히 규제가 많다. 집단소송제 확대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찬성한다.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는 안 된다’며 산업자본의 금융업 소유 금지(금산분리)를 주장하고, 대기업 법인세 인하도 반대한다. 기업이 반대하는 정년연장 등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 세액공제 확대 공약이 눈길을 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다는 통념과 다른 부분이 많은 셈이다.

이명박 후보는 ‘연평균 일자리 60만 개와 7%의 성장’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환경을 위해 각종 규제 완화(출자총액제 폐지·순환출자 허용)와 세금 감면(법인세 25%→20%) 정책 등을 쓰겠다고 한다. 금산분리 원칙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좋은 일자리는 성장을 해야 만들어진다는 이른바 ‘오쿤의 법칙’을 추구한다. 문제는 의욕이 너무 넘친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보고서를 보면 “경제가 획기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일자리는 연간 30만 개 이상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보다 2배나 되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회창 후보는 ‘연평균 50만 개 일자리와 6% 성장’이다. 한나라당 출신인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와 정책적 뿌리가 비슷하다. 다만 금산분리 정책은 당분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 조직을 슬림화해 예산을 10%까지 줄인 뒤 국민에게 10조원의 세금을 되돌려주겠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진전략이 빈약하고 국제경제 질서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규제 완화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차별화된 공약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이명박 후보는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 구도심에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규제 완화에 따라 기존 소유자들이 얻게 될 추가 수익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부 환수해 저소득층 주거 지원에 쓴다는 복안이다.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축소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제를 뒀다. ‘실제 거주하는 1주택자 중 보유 기간이 긴 경우’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부자들을 위한 공약이라는 중산·저소득층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실제 종부세 경감 혜택을 누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는 이 밖에 서민 중심의 맞춤형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연간 50만 호, 신혼부부 주택 12만 호’를 공급한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정동영 후보는 기본적으로 종부세와 재건축 규제 같은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근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실수요자의 주택거래세 부담은 줄인다는 생각이다.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 특별공제를 매년 4%씩 올려 20년 이상 보유 시 8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등록세를 폐지하고, 취득세로 통합해 주택거래세 부담을 현재의 2% 수준에서 1% 수준으로 낮춘다는 공약도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수도권에서 99㎡(30평형대) 규모의 아파트를 3.3㎡당 건축비 300만원, 택지비 200만원 이하의 수준에서 신규 주택 수요가 충족될 때까지 계속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땅값과 재료 값이 껑충 뛰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 얘기인지 의문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회창 후보는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노령층에는 종합부동산세 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공급 측면에선 앞으로 매년 50만 호 수준의 주택을 지어 2012년까지 주택보급률을 매년 1%씩 높이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이 후보의 공약은 가장 전향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성은 떨어져 급조된 느낌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은 대통령 당선자가 바로 맞닥뜨릴 분야다.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연말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면 북핵 문제는 새 전기를 맞는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이 풀리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도 중지될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이 미적거리거나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의 대북정책 공약은 정세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후보의 핵심 공약은 ‘비핵·개방·3000 구상’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현재 500달러 수준인 북한 주민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후 3000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300만 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400억 달러의 국제협력자금 조성계획 등이 포함된다.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한반도판 마셜 플랜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보수적 접근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북핵 폐기와 개방에 관한 전략, 재원 조달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약점이다. 유연한 대북 기조를 내세우고 있어 북한의 태도에 따라 정책의 진폭이 클 것 같다.

정동영 후보의 공약은 한반도 평화경제 공동체다.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결정판 같다. 그 한 축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고, 다른 축은 남북 동반 성장이다. 6자회담이나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고스란히 공약에 담아 정책변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정 후보만의 독창적 구상이 보이지 않고, 북·미 간 갈등 등의 돌발변수가 생겼을 경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회창 후보는 보수적 색채가 가장 강하다. 엄격한 상호주의와 국제 공조를 기조로 내걸었다. 북한이 협조하면 이익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납북자·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대북 지원과 연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대북정책이 180도 바뀌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기조는 현재의 북·미 간 기류나 6자회담의 진전 상황을 반영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교육은 사회정책 분야에서 최대의 격전지로 꼽힌다. 각 후보와 정당의 가치관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곳이다. 후보들은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내용인데도 ‘과감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고교와 대학에 큰 폭의 자율성을 줌으로써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대표 공약은 자율형 사립고 100개와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전문계 특성화) 고교 50개를 신설하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경우 ‘생기 있는 학생, 활기찬 학교’를 제시하고 있다. 교육기회의 평등과 복지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 이명박 후보의 ‘고교 다양화’에 무상교육 확대와 우수 공립고 300개 설립으로 대응한다. 더 나아가 “교육대협약 타결을 위한 국가미래전략 교육회의를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공교육 바로 세우기’라는 관점 아래 교사에 대한 지원 확대와 경쟁체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교원 10만 명을 추가로 확보해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수준으로 줄이자고 제안하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확대해 교사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서로 경쟁하게 하면 학원 못지않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입제도와 관련, 정동영 후보는 2011년 대학 수능시험 폐지, 이명박·이회창 후보는 대학입시 자율화로 맞붙고 있다. 정 후보는 “대학 입시를 폐지하고 내신과 면접을 통해 학생의 잠재적인 능력을 평가해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후보는 현재 7개인 수능 과목을 4개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3단계 자율화를, 이회창 후보는 대입 본고사·고교등급제의 단계적 도입을 말한다. 전반적으로 정 후보는 3불(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정책의 유지에 몸을 싣는 데 반해 두 이 후보는 유연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후보는 “교육의 형평성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을, 정동영 후보는 “일선 학교의 자율성 강화 방향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교원 10만 명’ 공약을 뒷받침할 재정 확보 방안이 구체화돼 있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대선에도 복지 혜택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어느 나라, 시대든지 복지 확대는 유권자를 유혹하는 가장 달콤한 미끼다. 하지만 ‘하향 경직성’이 커 일단 확대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빈곤층 지원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내놓았다. 이 후보는 극빈층 생활을 하지만 국가 보조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자 빈곤층과 기초수급자 바로 위에 있는 저소득층(차상위 계층)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확대는 하되 지금처럼 의료비·생계비·주거비 등을 몽땅 주는 방식을 바꿔 개인별 맞춤식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복지제도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다소 줄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부분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사안으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 후보 역시 부양 의무자나 재산 기준 조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렇게 하면 기초수급자가 늘어나게 된다. 근로 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내용도 제시했다.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공약이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기준에 맞으면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현행 방식을 고치자고 한다. 수요자 필요에 맞게 지원해 낭비를 줄이는 복지의 효율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 후보 모두 노인 표를 의식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정 후보는 8만3640원씩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로 올리고 대상자를 노인의 80%(지금은 6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후보는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기초노령연금보다 돈이 훨씬 더 드는 기초연금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회창 후보 역시 기초연금제 도입을 약속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3~4년 논란 끝에 도입하지 않기로 한 제도인데도 표를 의식해서인지 되살려 놨다.

이와 별도로 정 후보는 노인 틀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처럼 뭉칫돈이 들어가는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명확하지 않다. 이명박 후보는 예산의 10%를 줄여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했다.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영환 hwasan@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