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조직폭력-출소한 범죄꾼들 再결속 암중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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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직폭력배가 다시 발호하고 있다.국민생활을 침해하는 조직폭력배 소탕을 위해 89년 6월부터 전개된 「범죄와의 전쟁」이후 수감됐던 범죄꾼들이 대부분 형(刑)을 마치고 줄줄이 출소하면서새로운 조직을 형성해 가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광주에근거지를 두고 30여년의 전통을 가진 「서방파」「OB파」「양은이파」등 3대 패밀리 소속 수감자 50여명이 잇따라 출소하면서그동안 무주공산(?)이 된 강남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조직원이 한둘씩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2~3년간 힘의 공백상태에서 자생한 20대 초반 신흥폭력조직과 3대 패밀리 출신의 조직원들이 만든 재건조직들이최근 30여조직을 형성,「춘추전국」시대를 열며 「전쟁」은 과거보다 더욱 잔인한 양상을 띠고 있다.이들은 최근 주도권 쟁취가아니면 굴복일 수밖에 없는 주먹세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김두한(金斗漢)시절의 맨주먹 시대와는 달리 세력과시를 위해 서울 한복판 백주대로에서 회칼로 상대방을 난자해 살해하는등 흉포화하는 추세다.
4일 서울강남구삼성동 뉴월드호텔앞 대낮 큰길에서 회칼로 난자해 2명을 죽인 살인극 역시 범인들과 피살자측 모두 90년초부터 강남일대 유흥가에서 주도권 쟁탈을 위해 피를 뿌려온 조직폭력배들로 경찰조사결과 밝혀졌다.
경찰은 범인들이 이날 결혼식에 91년 서울팔레스호텔 앞에서 대흥파(일명 나주영산파)조직원 최창호(崔昌浩.당시27세)씨를 살해한 「목포파」 朴모(30)씨가 하객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보복살해하려다 박신(朴信.33)씨등을 오인,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범인들은 자신들의 흉포성과 잔인성을 상대방에게 강력하게 어필해야만 도전의 싹을 아예 꺾어버리기 때문에 범행장소를 일부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장으로 골라 하객으로 참석한 상대방 조직원을 회칼로 난자한뒤 잠적해버린 것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직후 대흥파 두목 이하영(31)씨등 가담자 10여명의 신원을 상세히 파악해놓고 있지만 범인들이 경찰의 권위를 비웃듯 파출소에서 불과 30여m떨어진 곳에서 살인극을 벌일만큼 대담해져 잠적이후 검거가 불투명한 상태다.강 남경찰서 도상길(都常吉)형사과장은 『보복살인과 세력충돌은 연쇄적인 보복범행을 일으키고 주먹을 씻고 조직에서 이탈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전직 조직원들까지 희생시켜 끝없는 폭력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올9월 서울강남신사동 대로에서 강남일대 신흥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살해된 「불출이파」행동대장 오일(吳一.23)씨의 경우 같은해 3월 조계사 폭력사태에 개입된뒤 조직에서 탈출하려했지만 주먹세계의 올가미를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조직에서 손을 뗐던 吳씨는 불출이파 두목 潘모(32)씨로부터『세력을 과시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70여명을 조계사에 동원,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6월30일 집행유예로 풀려난뒤2개월만에 오래전 어울리던 주먹들과의 사소한 시비로 칼에 찔려요절한 것이다.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이후 구속된 3대 조직폭력집단의 두목급 조직원들에 대해 벌인 선도.교화작업도 이들이 91년부터 출소를 시작해 최근 2~3년동안 잇따라 출소,조직재건을기도하면서 효험이 떨어지고 있 는 실정이다.
최근 안기부로 자리를 옮긴 홍준표(洪準杓)검사는 서울지검 근무당시 서방파 김태촌.이택현과 동아파 문병현씨등을,서울지검 김홍일(金洪一)검사는 양은이파 조양은씨등을 맡아 조직해체의 선도작업을 벌여왔다.
검.경찰은 특히 95년3월 가장 먼저 출소하는 양은이파(예정일 95년3월15일)가 전국 폭력조직의 세력규합과 재건을 위해이미 상당한 준비를 해놓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비에 비상이 걸렸다. 두목급 조직폭력배가 수감중인 시점에서 조직폭력배를 완전히 소탕하지 못할경우 미국의 마피아와 일본의 야쿠자같은 조직폭력배의 「패밀리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제2의 범죄와의 전쟁에 접어들 시점인 것이다.
특히 이들 재건조직이나 신흥조직들은 유흥업소에만 기생(寄生)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룸살롱.부동산업.인력용역등의 합법적 형태로 자금을 생산해 밀수입한 무기를 소지하는 마피아식 폭력집단으로 발전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엽기적살인방법으 로 국민을 경악시켰던 「지존파」의 경우 살인.소각시설을 갖춘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범행대상에게 빼앗은 금품으로 주유소를 차려 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계획으로 범행에 쓰일 총기와 차량을 구입하는 범죄기업화의 초기단계를 보여주기도했다 .올들어 발생한 조직폭력배사건은 지난2월 서울반포동 팔레스호텔과 미아동 빅토리아호텔에서의 난자 사건에 이어 3월 서울서교동 서교호텔앞 피살사건과 4월 대구달성동 뉴그랜드여관앞 회칼 집단난투극등 이미 40여건을 넘어서고 있다.
경찰 관리대상 조직 2백여개중 서울이 51개 5백여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 37개 7백90여명▲대전.충남 28개 4백30여명▲부산 17개 2백7명▲광주.전남 15개 6백90여명▲대구13개 1백99명 등이다.
이들은 룸살롱.나이트클럽등 유흥업소 이권외에 재개발지역 입찰이나 신축아파트단지 내부공사,무허가 운전교습소 운영에까지 개입해 금품을 뜯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金東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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