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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밝힌 ‘희망의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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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대 수시에 합격한 전연호(왼쪽에서 다섯번째)군이 강원도 정선 함백종고 교문 앞에서 아버지 전종택(여섯번째)와 총동문회장 조성은(일곱번째)씨 등 선·후배와 포즈를 취했다. [함백종고 동문회 제공]

16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마을. 폐광촌 작은 마을이 기쁜 소식으로 들썩였다. 소식의 진원지는 마을 입구의 함백종합고등학교. 교직원과 동문회는 교문과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었고, 전국의 동문 2500여 명에게 문자 메시지도 날렸다.

 ‘우리 모교 전연호, 서울대 최종 합격.’ 전(18)군은 14일 발표된 서울대 수시 합격자 명단(1745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역균형 선발 전형으로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1966년 학교 설립 후 첫 서울대 학격생이다. 전군은 수능에서 언어 1등급, 수리 2등급, 경제지리와 사회문화 1등급, 외국어 3등급 등으로 ‘수능 네 개 영역 중 두 개 영역이 2등급 이상’이라는 최저 학력기준을 가뿐히 통과했다.

 이 마을에서 ‘서울대 합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때 3만여 명이던 인구가 1993년 탄광 폐광으로 4200여명으로 줄고, 그나마 젊은이는 대부분 마을을 떠나 60세 이상 노인이 60%에 달하는데다, 이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일 정도로 마을이 침체됐다. 함백종고 지원자도 해마다 줄어 전교생이 51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군은 ‘마을에 희망의 불꽃’ 인 것이다.

 전군의 서울대 합격은 학교와 동문회 등 지역사회·본인이 똘똘 뭉쳐 이뤘다. 친구들이 다른 지역으로 고교로 갔지만 “너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교사들의 권유로 함백종고에 진학했다. 이러자 교장·교감을 포함한 16명의 교사들은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학교측은 예비 입학생을 대상으로 그 해 처음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실시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을 교육자로서 마지막 목표로 삼은 서승만 교장도 직접 수학을 가르치는 등 보충수업에 참여했다. 이후 학기 중 보충수업과 자율학습도 도입했다. ‘사교육 제로지대’ 인 폐광촌에서 과외교사이자 학원강사가 돼 준 것이다. 동문회는 보충수업비로 연간 500만원씩을 지원했다. 전군은 하루 서너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고 문제집 풀기를 위주로 공부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국사는 교육방송으로 독학했다. 전군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배들과 마을 분들께 작은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함백=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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