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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교사들 ‘작은 기적’ 만들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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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01면

서울대에 수시 합격한 전연호(왼쪽에서 다섯째)군이 강원도 정선의 함백종고 앞에서 아버지 전종택(여섯째)·총동문회장 조성은(일곱째)씨, 선배·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함백종고 동문회 제공]

큰 눈이 내린 15일 아침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용한 탄광촌이 기쁜 기별로 들썩였다. 뉴스의 진원지는 읍 가운데에 있는 함백종합고교. 교직원들은 마을 곳곳에 큼지막한 현수막을 내걸었고 전국의 동문 2500여 명에게 문자메시지도 날렸다.

강원도 산골 함백종고 전연호군 서울대 수시 합격

“우리 학교 전연호, 서울대 최종 합격.”

전연호(18)군은 전날 발표된 서울대 수시 합격 명단(1745명)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균형 선발 전형으로 사회과학계열에 들어간 것이다. 1966년 개교 후 첫 서울대생이다.

전군은 수능에서 언어 1등급, 수리 2등급, 경제지리와 사회문화 1등급, 외국어 3등급을 받아 ‘수능 네 개 영역 중 2등급 두 개 이상’인 서울대의 최저학력기준을 가뿐히 통과했다.

서울 강남에서는 ‘서울대 합격’이 흔한 소식이겠지만 이곳에선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침체된 마을에 희망의 불꽃”(박옥순 신동읍장)인 것이다. 3만 명이던 신동읍 인구는 93년 함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급속히 줄어들어 현재 4000여 명에 불과하다. 함백종고 지원자도 급감했다. 해마다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소규모 학교가 됐다. 전교생이 51명에 불과하고 3학년 진학반 학생이 10명뿐이어서 최고 내신 2등급(전교생이 14명은 돼야 1등급 한 명이 나옴)밖에 받을 수 없다.

서울대 김경범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는 “지역균형 선발자 중 군 단위 출신 합격자는 매년 7%대에 불과하다"며 "폐광촌의 소규모 학교에서 합격자를 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전군의 합격은 폐광촌과 시골학교가 똘똘 뭉쳐 만든 조그만 기적이다. 전군은 함백중 3학년 때 원주·춘천으로 떠날 작정이었다. 함백종고로 가면 대학 진학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군의 손을 잡았다.

“너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우리 함께 해보자.”

교장·교감을 포함한 16명의 교사들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식 입학도 하기
전에 전군을 포함한 예비 합격생들을 모아 가르쳤다. 학기 중 보충수업·자율학습도 꼬박꼬박 시켰다. ‘사교육 제로지대’인 폐광촌에서 과외교사이자 학원강사가 돼준 것이다. 서승만 교장도 수학 보충수업에 참여했다. 주민들은 돈을 모아 “보충수업 비용에 써달라”며 연간 500만원을 지원했다.

학교·지역사회의 노력 덕분에 전군은 진학 목표를 ‘지방 사범대-서울 중위권대-서울대’로 매년 한 단계씩 높여 나갔다. 전군은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문제집 풀기를 위주로 공부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국사는 교육방송으로 독학했다.

담임교사인 전찬수씨는 “연호의 합격은 공교육과 시골학교의 자생력이 만든 모범사례”라며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등 교육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학생 본인과 교사가 힘을 모아 성과를 이루었다”고 기뻐했다. 박옥순 신동읍장은 “지역학교 보내기 운동을 꾸준히 벌였지만 학생 수가 계속 줄었다”며 “연호의 합격으로 마을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쳐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군은 “사회학이나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많지만 행정공무원의 길도 고려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근 한성철광에 근무하는 전군의 아버지 전종택(55)씨는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거둔 만큼 자신의 미래도 잘 개척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갑작스러운 주위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전군은 합격 소감을 짤막하게 밝혔다.

“이곳에는 작은 희망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선=이찬호·이원진 기자 kab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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