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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4김회담>1.레베데프 비망록-자료적 가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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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레베데프 비망록』은 자료의 희귀성과 가치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다.
비망록의 작성자인 레베데프는 1945년 8월말부터 소련점령군사령부의 정치사령관을 역임했고,47년 중반부터는 민정사령관을 겸임하면서 북한정권 탄생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 비망록은 48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연석회의가 소련측의 각본에 따라 개최된 것임을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남북연석회의의 주도자와 조정자가 소련측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것으로 후기 해방정국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남북협상의 성격과 그 역사적진실을 밝혀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비망록은 일기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어 남북연석회의의 전모를 진행과정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비망록에 의하면 남북연석회의에 대한 명령계통은 당시 소련군 극동사령부 정치위원이었던 스티코프-레베데프-김일성으로 이어지고,주요 결정은 스티코프와 레베데프간의 협의를 거쳐 김일성에게 지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 극동사령관 비르소프와 스티코프 사이에 북한에 대한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갈등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소련측과 김일성등은 일련의 소비예트화과정을 통해 북한정권 수립을 위한 제반 준비를 끝낸 후 자신들이 수립할 정권에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을 회유하려고 했음이 밝혀졌다. 이를테면 그들에게 일정한 직위를 부여하는 대가로 그들의참여하에 헌법을 통과시킨 후 정부를 수립할 계획을 세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비망록에서 드러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김구가『(남한에서)나를 5월10일까지 암살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다.김구의 암살배후자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구가 이 무렵에 벌써 자신에 대한 암살을 예견했다는 점은 폭력과테러로 얼룩진 당시의 격동의 정치상황을 실감케 한다.
또한가지 주목을 끄는 대목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초대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의장및 김일성대학교의 총장등을 역임하다가 58년 연안파에 대한 숙청때 실각된 김두봉을 소련측이 48년4월부터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특 별감시를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레베데프 비망록』을 통해 모두 처음 공개된 것들로 이 비망록의 자료적 가치를 단적으로 입증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해방정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이 시기의 실질적인 주도세력인미국과 소련의 자료를 함께 분석할 때만이 가능하다.
미국측 자료는『25년이 경과한 자료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해치지 않는한 모두 공개한다』는「자료공개법」에 따라 대부분 입수가가능하다.
그러나 소련측 자료는 극히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레베데프 비망록』은 한국현대사의 새로운 역사적진실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사 자료의 커다란 공백의 한 부분을 메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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