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돈’으로 미분양 땡처리

중앙일보

입력 2007.12.04 11:19

▶내년 서울지역 공급물량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다. 이에 미분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 아파트 미분양 대란이다. 올해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이슈이자 난관이다. 각 건설사는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는 미분양 아파트를 처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미분양이 되면 건설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그러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부도로 이어진다.

올해 9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9만8235가구. 지난해 12월과 비교했을 때 2만4463가구가 늘었다. 9개월 만에 33.2%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2004년 이후 평균 증가율 13%보다 2.5배 높은 수치다. 업계에서는 올해 말까지 미분양 아파트가 12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미분양 대란이란 표현이 적당할 듯싶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부동산 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건설업체들의 연쇄부도가 뒤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설사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분양시기를 늦추는 등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워낙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된 것이다.

건설사들 숨통 트일지 관심

얼마 전 정부는 타개책으로 미분양 아파트 5000가구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투기과열지구 11개 지역과 주택투기지역 12곳을 해제하는 방침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과 건설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H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의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미분양 아파트가 9만 가구를 넘어섰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분양 아파트 펀드’가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 받고 있다. 이 상품은 시공사(건설사)가 아파트를 짓기 전, 미분양에 대비해 자산운용사와 벌크세일(일괄 매입) 계약을 맺는 것이다. 만약 신축 아파트에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자산운용사는 이를 일괄 매입한다.

매입 후 일정 시기가 지나고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다. 건설사들은 대략 분양가의 70∼80% 선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자산운용사에 넘긴다. 이렇게 하면 건설사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자산운용사가 만드는 펀드는 시중가보다 싸게 아파트를 확보해 값이 오를 때 비싸게 되팔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인 셈이다.

현재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곳은 다올부동산자산운용이다. 이 자산운용사는 올해 안에 미분양 아파트 펀드를 개설할 계획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의 최종 승인만 남은 상황. 다올부동산자산운용 관계자는 “늦어도 12월 중순까지는 펀드가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상품은 전체 1000억원 규모로 펀드는 공모로 구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펀드가 만들어지면 분양가에서 20~30% 할인된 값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일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다올은 “틈새 상품을 고민하던 중 미분양과 관련돼 몇몇 건설사의 펀드 개발 문의가 들어와 이를 상품화하기로 했다”고 펀드 개설 배경을 설명했다.

다올은 이 상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내 최초의 미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공모 펀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4월 출시한 사모부동산펀드가 예상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둘 것이라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모부동산펀드는 다올이 미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운용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형 상품이다. 이 펀드는 전체 360억원 규모로 부산시 부곡동 지역의 미분양아파트를 자산으로 개설됐다. 다올 측은 연 9%의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도 미분양 아파트 관련 펀드 개설을 준비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권순호 팀장은 “내년 신사업으로 미분양 아파트와 관련된 상품을 개발 중에 있다”며 “상품 타깃은 대도시나 수도권 일대에서 300가구 이상을 분양하는 아파트”라고 설명했다.

5∼6개 회사 펀드 개발 입질

우리투자증권도 분양가의 70% 선에서 아파트를 일괄 매입할 계획이다. 이 밖에 주요 증권사들도 우리투자증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분양 아파트와 관련된 펀드 설정을 검토 중이다.

건설사가 직접 증권사에 펀드 개설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광토건. 남광토건은 올해 시공능력 평가에서 40위(시공평가액 6234억원)를 기록한 중견 건설회사다. 이 건설사는 얼마 전부터 S증권사 등 5개 안팎의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미분양 아파트와 관련된 펀드를 개설할 뜻이 있는지 타진했다고 한다.

S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남광토건이 분양을 실시한 광주광역시 운남동 일대의 하우스토리 아파트를 대상으로 펀드 개설을 문의했다”며 “미분양 아파트 일괄매입 가격 수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남광토건 주택사업팀 정영훈 팀장은 “지방에 위치한 미분양 아파트 해결방안으로 A증권사 등 2∼3개 증권사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정해진 분양가의 20% 이상을 깎는 것은 시공사의 자금 압박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사와 증권사가 미분양 아파트 펀드 개설에 적극적인 것은 조만간 부동산 경기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다.

다올부동산자산운용 관계자는 “늦어도 내년 하반기가 되면 부동산 시장은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되고 다시 오를 것”이라며 “미분양 아파트가 당장은 짐이 될지라도 2∼3년 후에는 충분한 수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순호 팀장 역시 “늦어도 2∼3년 후에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상승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BA부동산경제연구소 김점수 소장은 “내년에 정권이 교체돼도 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1년 정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경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더구나 내년 서울지역 공급 물량은 4만6000여 가구로 98년 이후 최다라 미분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펀드로 일부 미분양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며 “세금 문제 등 근본적인 대책 없이 미분양 아파트 관련 펀드가 난립한다면 자칫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남영 기자
hi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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