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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연애도, 예술 통해 눈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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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여성 CEO의 삶과 경영’ 시리즈를 격주로 게재합니다. 산업현장에서 독특한 영역을 넓혀 온 여성 경영인들을 강소영 객원기자가 만납니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스토리뿐 아니라 인간적인 속내까지 들여다 봅니다. 강 객원기자는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는 문화마케팅 업체인 HPN커뮤니케이션을 직접 경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김수경(58) 수도약품 회장은 자신의 삶과 경영을 문학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남편과 연애, 돈 버는 노하우 등 삶의 모든 지혜를 문학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깨우쳤죠.”

비현실적인 문학에서 현실적인 사업 세계를 배웠다고 그는 여러 번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포브스코리아에서 선정한 국내 여성 부호 42위에 올랐다. 재벌가 출신 여성이 아닌데도 자수성가한 여성 부자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1997년 이후 짧다면 짧을 수 있는 10년 사업 경력으로, 비현실적일 것 같은 부를 현실에서 만들어 낸 셈이다. 그의 사업 경력은 굳이 따진다면 73년 출판사인 열음사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사업가이기 이전에 문인으로도 유명하다. 경남여고 시절 교장을 역임했던 고 유치환 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72년 ‘현대문학’에 시 ‘황진이에게’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시인이자, 90년 계간 문예지 ‘외국문학’에 게재됐던 ‘자유종’이라는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다. 이런 배경에서 김 회장은 출판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열음사를 시작할 때 사업자금으로 남편(이상호 우리들병원장)의 돈을 가져다 썼어요. 그런데 돈을 많은 까먹었죠. 아무리 남편 돈이라도 자존심도 상하고… 무척 힘들더라고요. 그 뒤로 악착같이 사업을 키웠죠.”

그는 이집트를 여행할 때 현지인이 터키석 보석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만년필을 바꾸는 장시간의 협상을 하면서 사업가로서 기질을 스스로 발견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화장 안 한 모습을 한번도 안 보여 주고 산 마냥 예쁘기만 했던 공주병에 걸린 것 같았던 어머니와 달리 씩씩하게 든든한 장녀 역할을 하며 큰 것이, 사업을 하는 마음가짐의 초석이 된 듯합니다.”

현재 그는 크고 작은 의료·엔터테인먼트 등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직원만 1500여 명이다.

“직원이 30명쯤 됐을 때가 사업의 1차 고비였어요. 경영자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직원 수는 30명이라고 해요. 제 경험으로는 300명, 그리고 800명이 되는 시점이 또 다른 고비였어요. 그때마다 인력 관리에 조금씩 벅차다고 느꼈죠. 기업의 인사 시스템으로 적절하게 인원을 배치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아요.”

그는 자칭 ‘하이브리드 경영인’이라고 한다. 가족, 문화, 그리고 사회를 예측할 줄 아는 비전이 사업 성공의 열쇠라는 말이다.

사실 김 회장은 ‘탱고의 대모’로 더 유명하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그는 가족, 지인 10여 명과 함께 자신의 사무실에서 탱고를 연습한다. 그는 “가족과 탱고로 친화를 일궜다”고 말할 정도다. 주변 인사들도 그의 사업 수완과 역량은 끈끈한 가족 관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의 첫째 딸 이서군씨는 ‘러브러브(97년)’를 연출했던 영화감독이다. 이 감독은 영화계의 인맥을 김 회장에게 제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김 회장은 장진 감독의 법인인 ‘디지털수다’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 대박을 터뜨려 온 가족이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자본금 20억원의 ‘디지털수다’는 수도약품의 관계사로 장진 감독이 지분 40%, 김 회장과 그의 남편인 이상호 원장 등이 60%를 보유하고 있다. 순이익을 지분비율로 나눈다면 이 영화의 흥행으로 30억~40억원의 이익을 봤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 큰딸이 얼마전에 이혼했어요. 많이 알려서 재혼할 사람 좀 소개받게 해줘요.”
딸의 이혼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터뜨린 개방적인 어머니다. 그러나 문인으로서 사고의 자유분방함이 보이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나를 70점짜리 어머니래요. 한때 제가 일 중독일 때가 있었죠. 아이들이 도시락을 직접 싸서 학교에 가곤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그러나 봐요.”

인터뷰 중에 그는 여고 은사인 청마 유치환의 시 <그리움>을 읊조리면서 불쑥 예술적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당대의 여류 문인인 나혜석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는 부산에 시집와서 바람을 피워 시댁이 패가망신을 했다는 거죠. 나는 절제하지 않는 예술적 욕망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어요.”

그는 폭넓은 해외 문화 경험이 사업적 자산이 됐다고 한다.

84년에 남편이 프랑스 파리의 데카르트 의과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최첨단 문화 도시에서 백남준이 주도하던 실험 예술 활동인 ‘프랙서스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게임·디자인 등의 문화 관심사를 그의 사업으로 연계시킨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뉴욕에서 93년부터 4년간 살았다. 미국에서 뉴욕의 상징인 트럼프 빌딩에서 올라가 시드니 셸던의 소설 한 구절을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 I’ll take this city.(나는 이 도시를 정복할 거야)”

그러나 그는 뉴욕에서 사업할 때 백인의 보이지 않는 두터운 편견의 층을 느꼈다고 한다.

“이 도시에서는 동양인으로서 성공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고집으로 빵집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어요. ‘Muae’라는 교포 2세대를 겨냥한 잡지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다 포기하고 돌아왔지만.”

이때 그는 IT(Internet Technology), BT(Bio Technology), 그리고 CT(Cultural Technology)가 향후 사업 아이템이 될 것을 점쳤다고 한다. 언젠가는 바이오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제약회사 인수를 고려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바이오 연구가 붐이었다. 이에 따라 97년부터 여러 제약회사를 고르다 2004년 자금난을 겪던 수도약품을 인수하게 된다. 그는 동시에 사업 다각화를 시작했다. 그해 11월 초에 이뤄진 삼성제약 지분 인수는 그래서 이뤄졌다. 수도약품이 삼성제약의 2대주주가 된 것이다. 제약회사 청사진은 바로 그가 꿈꾼 ‘종합 헬스케어(Total Health Care) 비즈니스’ 중 일부다. 제약을 기반으로 의료기기 제조 및 판매, 생명공학사업, 의료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수도약품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김 회장의 자산가치도 올랐다. 현 주가는 인수 당시보다 세 배 이상 올랐다. 이렇게 탄탄대로를 걷게 되자 말도 많았다.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우리들병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특혜의혹을 불러 일으킨 이유다.

“수도약품을 인수한 것이 현 정권의 비호를 받고, 대통령의 자금이 유입된 것이라는 의혹이 국정감사장에서까지 제기됐어요. 내가 모두 한 일인데 너무 억울해요. 노무현 대통령과는 남편이 부산 시절부터 알고 지냈을 뿐입니다.”

이 같은 의혹의 눈초리가 부담스럽다고 그는 손사래를 한다.

최근 그는 청담동에다 오룸 갤러리도 열었다. 게임과 영화 등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이 갤러리를 기반으로 문화 콘텐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여성이 유리해요. 80년대와 같이 제조업이 주력인 시대에서 일을 했다면 나도 이만큼 성취하지 못 했을 겁니다.”

김 회장은 내년 환갑에 지인들과 파티를 열 계획이다. 21세기 신여성으로서 60세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이젠 일선에서 사업 안 하고 싶은데, 홍보실 인원이 10명 이상이나 되다 보니… 아예 병원 홍보 회사를 만들까 합니다. 아직도 20시간 이상 일할 각오가 돼 있어요.”
김 회장의 또 다른 비즈니스 구상은 환갑 이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WHO
· 1949년 부산생
· 부산대 영문학 석사
· 현대문학 통해 등단
· 열음사 사장
· 수도약품 회장

주요계열사
· 수도약품:의약품 업체
· (주)NHS : 의료 수술재료 외 제조 및 판매
· S&P : 토탈디자인
· GID 건설: 건설
· (주)메디썬트 : 건강보조식품 수입·판매
· (주)필라댄스 : 음식업
· (주)우리들창업투자 : 국내 영화제작 투자
· (주)우리들홀딩스 : 용역 및 병원 해외진출사업 추진
· (주)HKS : 건설·부동산
· (주)HMS : 의약품 도매업
· 열음사:출판업

강소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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