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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로봇’ 2년 만에 500명 수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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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4면

신촌 세브란스병원 다빈치 수술팀. 왼쪽부터 이윤아 간호파트장, 백승혁·김영태·김대준 교수, 팀장 이우정 교수, 송현정 간호사, 장병철·형우진 교수. [신동연 기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나군호 교수는 10일 오후 급히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에서 전립선암에 걸린 고위층이 로봇수술을 요청해 왔다. 중국에도 수술 로봇이 있지만 환자는 한국의 최고 전문가에게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고집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세브란스병원 다빈치팀

나 교수가 속한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 팀은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사(IS)의 수술 로봇 ‘다빈치’를 도입한 지 2년 만에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팀으로 우뚝 섰다.

로봇으로 수술 중인 의료진.

최단 시기에 500명을 수술한 기록을 세웠고 미국에서 주로 하는 전립선암 수술 성적
이 본토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위·대장·식도암, 부인종양, 심장병 등에서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 6월 홍콩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다빈치의 위암 수술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그곳 의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7월에는 로봇수술 심포지엄을 개최해 전국에서 500여 명의 의사가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다. IS사는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수술로봇 교육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맥가이버’ 이우정 교수가 총괄 지휘

로봇수술 팀의 팀장은 간·담·췌장 수술의 권위자인 외과 이우정 교수. 그의 별명은 ‘맥가이버’다. 의사이면서 발명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기계와 발명에 관심이 컸다.

중 1년 때는 변기의 뚜껑을 자동으로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를 발명해 실용신안 특허를 받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서울 종로3가의 ‘천일 라디오·TV수리학원’에 다니면서 집 안의 TV와 라디오를 다 망가뜨리기도 했다. 컴퓨터 1세대로 1985년에는 환자관리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그는 국내 의사로는 처음으로 ‘이솝’이라는 초기 단계의 로봇을 다뤘다. 다빈치의 도입과 운영을 이 교수가 맡은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다빈치 팀은 이 교수를 비롯해 외과의 형우진(위암) 교수와 백승혁(대장암) 교수, 비뇨기과의 나군호(전립선암) 교수, 심장혈관외과 장병철(심장판막 재건술) 교수, 흉부외과 김대준(식도암·흉격종양) 교수, 산부인과 김영태(부인종양) 교수와 이윤아·송현정 간호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팀의 최대 장점은 다른 과 의사들끼리 협력이 잘된다는 점이다.

“오늘도 비뇨기과 의사가 전립선암 환자를 수술하면서 저를 호출했습니다. 환자가 이전에 직장암 수술을 받아 장이 들러붙어 있는 상태여서 보다 효과적인 수술 방법에 대해 의논하자는 것이었죠.”(외과 백승혁 교수)

직장암 수술 뒤 2~3주 만에 골프

다빈치는 이전 모델인 ‘모나리자’를 완전히 뜯어고친 로봇으로 의사가 조종하는 ‘주인(Master)’과 실제 움직이는 기계인 ‘일꾼(Slave)’의 두 부위로 구성된다. 원래 심장수술용으로 개발됐지만 비뇨기과에서 복강경수술 대용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에서 500여 대, 유럽에서 150여 대가 보급됐다.

수술은 환자의 몸에 3~5개의 구멍을 뚫고 수술용 카메라, 로봇팔 2개를 집어넣고 의사는 16배 확대된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면서 수술한다. 의사의 손놀림이 그대로 로봇에 전달돼 수술이 진행된다.

로봇수술은 의사의 손이 떨려도 로봇이 오차를 계산해서 제대로 수술한다. 기존 복강경수술보다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 절개·출혈 등이 최소화된다. 입원기간을 단축시켜 일터에 빨리 복귀할 수 있다. 기존 수술법을 사용하면 성기능 손상 우려가 컸으나 이를 최소화했다.

“직장암 환자가 수술 후 2~3주 만에 골프 치러 가는 것이 가능해졌고 성기능을 보존할 확률이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기저귀를 차는 기간이 단축됐고 항문 보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전립선암의 경우에도 성기능 보존, 요실금 방지 등에서 효과적이어서 환자의 자신감을 높입니다.”(백승혁 교수)

최고 2000만원 수술비는 부담

그러나 이우정 교수는 “‘다빈치’가 만능은 아니고 암이 번지지 않은 경우에 적합하다. 암 부위를 뿌리째 잘라내야 할 경우 기존 방식대로 수술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로봇이 과연 능숙한 의사의 손감각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점도 논란거리다. 미국의 의사들은 손놀림이 둔하지만, ‘신의 손’으로 정평이 난 한국 명의들의 섬세한 촉감을 로봇이 따라올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모든 수술에 뛰어난 촉감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수술에 따라 기존 수술과 로봇수술의 장단점을 고려해 수술 방법을 신중히 결정합니다. 더구나 로봇수술은 발전단계에 있습니다. 촉감을 높일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지요.”(형우진 교수)

비싼 수술비(700만~2000만원)도 환자에게 부담스럽다. 건강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병원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과잉 수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나군호 교수는 “환자에 따라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경제적일 수도 있으며 미국에서는 보험이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 팀은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 부문을 강화하고 국산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당장은 아시아 로봇수술 연구의 중심이 되고, 향후에는 여러 분야의 수술 결과를 반영해 ‘다빈치’를 뛰어넘는 로봇을 만들 계획이다. 이 팀은 향후 원격수술이 실용화될 때 세계 로봇수술의 메카로 자리 잡는다는 야심 찬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밤낮을 잊고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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