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최초공개

중앙일보

입력 2007.10.13 15:46

업데이트 2007.10.13 16:10

중앙SUNDAY

“탄피(彈皮)가 사망자의 총에서 발사된 것이 맞는지를 검사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의 총기화재과 실험실. 이승종 감식관이 ‘쌍안 비교 현미경’으로 탄피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현미경은 총기에서 발사된 탄피에 나 있는 각종 흔적을 비교·분석해 어떤 총기와 그 흔적이 비슷한가를 판별하는 장비다.

이 감식관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지난 8월 중순 한 현역 사병이 휴가 중 총기로 사망한 사건. 사망자의 집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사제 권총’이 발견됐다는 점, 그리고 가족 증언 등을 종합해 자살로 판단됐다. 그러나 자살 여부를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하기 위해 첨단 조사기법이 동원된 것이다.

현미경 조사 결과 회수한 탄피가 현장에서 발견된 사제 권총에서 발사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조사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권총을 빼앗아 발사했을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GSR주사 전자현미경’을 이용했다. 총알이 발사될 때 나오는 ‘뇌관화약’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장비다. 뇌관화약은 총이 발사될 때 극히 소량만 나오고 확산 범위가 좁기 때문에 주로 총기 발사자의 손에 묻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서는 검출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사망자의 손등에서 채취한 키트를 검사해 뇌관화약의 분자구조를 확인했다. 이날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조사 결과를 육군에 통보했고, 이 사건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임봉환 총기화재과장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뇌관화약 검사를 했다면 타살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감식능력 부족으로 자·타살 논란을 증폭시켰던 데 비해 큰 발전을 이룬 것이다.

또 총기화재과의 특징적인 장비가 2004년 도입한 ‘탄두 회수 체임버(chamber)’. 국내에 단 한 대밖에 없는 이 장비는 사체나 물체에 박혀 있는 탄두를 회수해 어떤 총기에서 발사됐는지를 추적할 때 쓰인다. 물을 가득 채운 수조에 대고 비스듬히 사격을 함으로써 총기에서 발사된 탄두의 원형을 확보하는 것이다. 각각의 탄두는 사람의 지문처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총에서 발사됐는지를 알 수 있다. 2005년 6월 김동민 일병의 총기 난사로 8명의 장병이 숨진 연천 전방소초(GP) 총기사건 때도 이 장비가 이용됐다. 이처럼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총기 사건에 관한 한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총기를 항상 휴대하는 군의 특수성으로 매년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했던 군 의문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과학수사의 확대로 군 내 사망사고에 대한 민원제기가 2002년 17건에서 2004년 3건, 지난해 1건으로 크게 줄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총기·폭발물 사고뿐 아니라 최신 지문감식 장비와 거짓말 탐지기, 문서검증 장비를 이용해 과학수사 수준을 높이고 있다. 또 유전자 감식, 법의학, 이화학(현장 증거물과 사고자의 혈액·위액 등 생체시료에 대한 화학적 성분 감정) 분야 등에서도 독자적 조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독자적인 유전자 감식기술 보유의 중요성이 커지고, 6·25전쟁 전사자 유해에 대한 신원확인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유전자 감식과를 지난 6월 신설했다. 현재 최신 유전자 감식장비 25종 52개를 도입했다. 아울러 범죄 양상이 날이 갈수록 지능화함에 따라 군의 수사기법도 향상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12월 육군 ○○사단에서 발생한 총기·탄약·수류탄 탈취 사건이었다. 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당시 탄약고를 둘러싼 철조망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을 DNA 감식 기법으로 감정하자 혈액형 A형의 남성으로 드러났다. 길이가 7.3㎝로 일반 사병보다 길어 하사관 이상의 간부 또는 민간인으로 조사 대상자가 압축됐다. 수사관들은 해당부대에 근무하는 사병 및 하사관 이상 간부 200여 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감정을 했으나 일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자 부대를 전역한 예비역의 신상기록카드를 정밀 조사, 혈액형 A형인 사람만 추려냈다. 결국 예비역 중사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수사관들은 그의 머리카락을 증거로 확보한 데 이어 자백을 받아냈다.

또 같은 해 강원도 동해시 육군 ○○부대 해안초소 총기 탈취 사건의 범인은 지문감식으로 체포된 경우다. 3명의 범인은 초소 부근 도로를 순찰 중이던 초병에게 길을 묻는 척하며 접근, 흉기로 찌르고 K-1 및 K-2 소총 각 1정, 5.56㎜ 탄약 30발을 훔쳐 달아났다.

수사관들은 “범인들이 차량으로 서울 방면으로 도주했다”는 피해 초병의 진술을 근거로 범행시간대에 인근 톨게이트를 통과한 차량의 통행권 25장을 회수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지문감식을 의뢰했다. 연구소는 닌히드린 용액을 이용해 통행권 25장 가운데 8장에서 지문을 찾아냈다. 수사관들은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으로 검색해 통행권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지문을 찾아냈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15일 만에 범인들은 모두 검거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현재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지문을 찾아내거나 피해자의 유품을 오염시키지 않고 지문을 식별해내는 자외선 검색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고성표 기자

"탄두만 있어도 누구 총인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이 본 드라마 CSI는 과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과학수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드라마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도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드라마 CSI의 진실(0) 혹은 거짓(X).

1. CSI: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CSI 요원들의 복장에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X)
현실: 과학수사 요원이 실내에 들어갈 때는 반도체 공장에서 입는 것과 비슷한 1회용 종이 방염복(Clean Guard)을 입는다. 현장 훼손과 검시자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마스크와 고글, 두건, 덧신도 착용한다.

2. CSI: 용의자나 피해자의 DNA 샘플을 분석기에 넣으면 검사 결과가 금방 나온다. (X)
현실: DNA 결과가 나오려면 보통 12시간이 걸린다. 검사체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1~3시간, DNA 증폭에만 3시간이 소요된다. 검사의 공정성을 위해 여러 명의 검시관이 동일시료를 반복해 분석한다.

3. CSI: 현장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범인을 잡는다. (△)
현실: 머리카락이 있어도 모근(毛根)이 붙어 있지 않으면 DNA 분석을 할 수 없다. 머리카락 자체는 유전자정보가 빠진 단백질로만 구성돼 있다. 또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보통 다섯 가닥 정도가 필요하다.

4. CSI: 현장에 있는 옷에 광선을 비춰 타액(침)이나 정액이 묻어 있는지 검사한다. (O)
현실: 자외선 손전등(가변광선기)을 비추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타액 등을 찾아낼 수 있다. 반드시 암실에서 검사해야 할 필요는 없고, 적당히 어두운 공간에서도 가능하다.

5. CSI: 폐쇄회로(CC)TV 화면을 몇 배로 확대하면 화면 속 인물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X)
현실: 화면을 확대하면 인물의 윤곽이 커지지만 선명도는 떨어진다. 화면을 늘일 경우 화소 간격이 벌어져서 화질이 나빠진다. 실제 CCTV 분석 의뢰의 대부분은 차량번호판 식별을 위한 것이다.

6. CSI: 익사자의 손가락 피부를 벗겨 골무처럼 끼고 지문을 뜬다. (O)
현실: 사실이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지진해일) 때는 물에 불은 손가락을 뜨거운 물에 넣었다 빼면 수축되는 현상을 이용해 지문을 뜨기도 했다. 피부가 바싹 마른 경우에는 주사기로 뜨거운 물을 주입해 지문을 찍는다.

7. CSI: 현장에 찍힌 발자국이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O)
현실: 실제 경찰은 발자국 흔적(족윤적)을 단서로 쓰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신발 샘플들을 전부 사진 파일로 확보 중이다. 지문채취와 동일한 방법으로 접착력 있는 투명 유리테이프(전사판)를 이용해 발자국 흔적을 뜬다.

8. CSI: 금속이나 페인트 성분을 바로 알아낼 수 있는 현미경을 사용한다. (O)
현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교통분석과에는 페인트·섬유·합성수지 등을 적외선으로 분석하는 장비가 있다. 금속 분석을 위해서는 주사기처럼 꽂아 쓰는 주사형 전자현미경(SEM) 등을 쓰는데, 반도체나 섬유의 성분 확인도 가능하다.

*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소장 김재훈)는 1953년 8월 헌병사령부 예하에 창설된 제1범죄연구소가 그 전신이다. 연구소는 58년 육군본부 소속 육군과학수사연구소로 바뀌었다가 89년 국방부 소속 국방과학연구소로, 지난해 2월에는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국방부 조사본부로 개편됨에 따라 조사본부 산하 기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연구소는 유전자과·법의학과·범죄심리과·이화학과·문서지문과·총기화재과·영사과 등 7개 과로 나뉘어 있으며, 총 128개 품목 446점(시가 40억1800여만원 상당)의 첨단 과학장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연구소 내 범죄심리과는 60년 국내 최초로 거짓말 탐지검사 기법을 도입한 이래로 47년의 노하우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27년째 거짓말 탐지 검사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판규 과장은 연구소가 내세우는 최고의 인재다. 박 과장은 99년 국내 최초로 『폴리그라프 검사』 책자를 발간해 선진 폴리그라프 이론 및 검사기법을 우리나라에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같은 해 국방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또 올 7월 첨단 유전자 감식 장비를 도입해 내년 초 정식 개소를 준비하고 있는 연구소 내 유전자과(과장 안희중)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협조하에 국군포로 2세 유전자 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등 과학수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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