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외무부한국전관련문서요약>4.끝

중앙일보

입력 1994.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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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50년8월부터 53년8월4일.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金日成은 휴전에 이르기까지 스탈린.毛澤東과 긴밀한 협의아래 전쟁을 치른다. ▲1950.8~9초순=毛澤東은 두차례에 걸쳐 북한정부의 대표를 접견하고 그들과 상황전개에 대해 협의.毛는 기본적으로 한국전쟁이 다음 두가지 유형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가정.
첫번째 경우는 북한 인민군이 미국군을 전멸시켜 그들을 바닷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며,두번째는 전쟁의 장기화다.후자의 경우 미국은 大邱~釜山 지역을 강화,북한군의 전력을 同 지역에 묶어놓으면서 다른 방향으로 상륙작전을 전개할 것으로 판 단.
毛는 북한대표들에게 후자의 가능성에 충분한 예비전력을 확보하고 예상 가능한 공격으로부터의 방어거점인 제물포~서울지역,진남포~평양지역의 경계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고.
그는 인민군이 전격전을 수행할 군대나 예비전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적군은 손쉽게 모든 배치를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반격을 가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으며,그 결과 미국은퇴각하여 大邱~釜山지역에 이동,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언급. 毛는 모든 북한 군사력을 전투에 투입하지는 말아야 한다고강조하면서 향후 가능한 경우 병력 재편성을 통해 새로운 전선을구축하기 위한 신속한 퇴각의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충고. ▲9.1=중공은 소련에 전문 타전.이 전문에서 중공은 대만에서 열린 맥아더와 蔣介石간의 회담에 대한 「믿을만한 비밀정보」를 모스크바에 전달.
이 정보에 따르면 양측은 일본~대만간 평화조약 체결시까지 대만은 일본 영토의 일부로 간주 되며 따라서 대만은 연합군의 통제하에 있게 된다는데 합의하고 또한 대만에 미군주둔 필요성 및美 제7함대의 대만해협배치 필요성에 대해 합의.
▲9.2=周恩來는 로신을 초치, 면담하는 자리에서 8.31의유엔 안보리회의에 관해 유엔 사무총장이 타전해온 전보내용을 통보. 同 전보는 미 공군기가 실수로 중공 영공을 침범하여 폭격을 가했다는 것을 美대표가 인정했다는 내용임.
毛澤東은 유엔조사단 파견은 한반도 접경 중공영토내의 정찰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유엔조사단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
그는 또 중공영토에 대한 폭격문제와 대만에 대한 미국의 침략문제에 관해서 유엔이 토 의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
▲9.4=소련정부는 9.2의 중공입장에 완전 동의.
▲9.18=周恩來는 로신대사와 군사고문관 코토브-코노프를 초치,9.15 시행된 미군의 인천상륙에 관한 정보가 있는지 질문하고 중공지도부는 평양 라디오 및 신문보도 이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다고 언급.그는 군사문제와 관련한 북한 지도 부와의 접촉은 극히 미미하다고 언급하고 중공은 북한의 병력소요에 대해서는알고 있지만 인민군의 작전계획은 전혀 모른다고 말함.
그는 또 毛澤東의 충고와 판단이 북한측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
▲9.21=로신대사는 劉少奇가 中.蘇 친선협회에서 학자 유진을 위해 주최한 오찬에 참석.오찬 시작전까지 劉는 중공사회각층의 한국전쟁에 대한 동향을 설명.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만약에 북한이 미국에 패배할 지경에 빠지면 중공은 어쩔수 없이 북한의 동지들을 도와야 할 것으로 각오하고 있음.劉의 평가에 의하면 대체로 중공사회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이를 혐오하고 있는데, 불가피한 경우 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항하는 적을 반드시 진압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함.
▲9.23=바실리예프스키 국방장관이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서.소련비행사들이 평양에 10.1~2 이틀간 투입돼 10.3부터행동개시.단 공중전 지휘는 러시아語 무선통화로 하기 때문에 제1차 공중전후에 미군측은 평양상공에서 소련비행사 들이 활동하고있음을 알게 될 것임.
***“美와 대결 불가피” ▲9.30=슈티코프대사가 그로미코외상에게 보낸 유선암호전문.이 전문에 의하면 슈티코프는 9.29 金日成 면담,朴憲永이 임석.金은 전황이 불리하기 때문에 소련원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스탈린 앞으로 보낼 의향임을 밝히고 북한의 정치정세 도 악화되고 있다고 언급.
金日成은 스탈린에게 9.28로 된 서한을 보냄.미군이 38선을 돌파할 시점에서 소련군의 직접 출동을 요청한 내용.『적군이38도선 이북을 침공할 때에는 소련군대의 직접적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됨.만일 그것이 여하한 이유로서 불가능 하게 된 때에는 우리의 투쟁을 원조하기 위해 중공과 기타 민주주의 국가들의국제의용군을 조직해 출동토록 원조해 주시기 바람.』 ▲10=金日成은 슈티코프에게 서한을 보내 다음 사항을 소련에 요청함.
① 북한 해군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소련내에 해군학교를 창설할것. ② 수병학교를 소련내에 창설할 것.
③ 북한 함대가 동해 해역에서 곤경에 빠져있으니 북한 군함을블라디보스토크에 수용해 줄 것.
④ 50.11.15까지 안동(만주)에 PO-2형 비행기 20대를 북한군을 위해 공급할 것.
▲10.1=스탈린은 북경주재 소련대사에게 전문을 보내고 다음내용을 毛澤東 아니면 周恩來에게 지급 전달토록 지시.9.16에행해진 미군의 인천상륙은 북한의 제1,제2병단을 후방과 끊기위한 목적이라고 경고한 바 있음.중공의용군을 보 낼 수 있다면 빨리 5~6개 사단이라도 38선에 진출시켜야 할 것임.
***中지도부 참전 논쟁 ▲10.3=중공주재 소련대사 로신은스탈린에게 10.1 지시에 대한 毛澤東회답과 이에 대한 소련대사의 견해를 보고.
-毛澤東의 회답:10.1자 전문을 접수했음.
처음 우리는 적군이 38선을 넘을 시점에 중공 의용군 수개사단을 투입할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당분간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생각됨.북한측은 유격전쟁으로 이행하면 될 것임.필요하다면 귀하의 휴양지에 周恩來와 임표를 보내도록 하겠음.
-소련대사의 견해:毛澤東의 이 회답은 조선문제에 관한 중공의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태도 변경의 원인들은 아직 불명함.
▲10.9=슈티코프대사는 스탈린에게 金日成이 스탈린 앞으로 보낸 편지내용을 보고.
-金日成의 서한내용:어려움에 봉착하여 원조와 도움을 요청함.
미군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여 극동에서의 전략기지를 만들 의향인듯 함.북한의 투쟁은 장기화될 것이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바,다음 사항을 요청함.
① 소련 유학중인 북한학생 2백~3백명을 병사로 양성할 것.
② 재소 한인교포들로 전차병 1천명,비행사 2천명,통신병 5백명,기술장교 5백명을 양성할 것.
▲10.13=고로프코.포킨은 청진항 부근에 미 함대가 출현했으며 청진이 맹렬한 폭격과 포격을 당했음을 스탈린에게 보고.
▲10 하순=周恩來가 모스크바에서 타전한 전문을 접수한 이후중공지도부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여부에 관해 논란이 있었음.高崗은10.25 瀋陽주재 레도브스키 총영사와 바즈노프장군과의 대화에서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시 자신이 중공군대 의 조선파병을 반대하는 周恩來와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고 언급.결정적 순간에 고강은 彭德懷에게 미국이 조선반도 전역을 점령하게 되는 경우,중공과 국제정세 전반에 야기하게 될 위험을 설명하고 팽덕회를 설득하여 毛澤東에게 즉각적인 조선파 병을 공동으로 건의키로 합의하였다 함.
***中共軍 10월말 첫전투 ▲10.25~26=중공 인민해방군은 조선내에서 남한군의 1개 대대를 궤멸시켰으며 이는 중공군의 한반도내 첫번째 전투행위로 기록되고 있음.
▲10.31=슈티코프가 자하로프에게 상부에 보고토록 지시한 암호전문.이 전문은 소련이 파견한 군사고문이 지금 신의주에 집결중이며 앞으로 2~3일사이에 봉천의 자하로프 산하로 보내질 것임을 언급하고, 상부에 다음 사항을 보고토록 지 시.
-북한측은 중공측과의 협의에 따라 9개 보병사단을 편성,훈련하기 위해 만주에 병력을 보내고 있는 바,장교들이 미숙하기 때문에 소련군 장교 90명 및 군사고문 전원의 잔류가 허가돼야 함.소련군 고문들을 잔류시키지 않으면 북한의 힘으 로서는 이들사단을 훈련시키는데 1년이상 걸릴 것임.
▲11.20=스탈린은 슈티코프에게 비행사 양성에 관한 金日成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임을 통보토록 지시.
▲11.28=소련 각료회의는 소련 민간대학에 유학중인 북한학생 2백명을 50.12.5까지 만주로 보내기로 결정.
▲1951.2.4=라주바예프 駐북한대사는 북한이 북한군의 전투능력 향상을 위해 사단수와 지휘부를 대폭 감축하고 통폐합하는안을 보고.
▲3.3=스탈린은 毛澤東에게 對북한 군사지원계획 통보.중공 및 북한군에 대한 후방 제공권 확보를 위한 벨로프 장군 예하 소련군 2개 폭격 항공사단 제공(중공군 2개 철제 활주로 건설,공군 2개사단은 단둔지역 배치).
***2개 폭격사단 파견 ▲3.15=스탈린은 毛澤東앞 서한을통해 곧 있게 될 대규모 전투에 대비,1개 항공사단을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하고 중공군 비행사단을 전선으로 배치토록 권고. ▲6.30=스탈린은 毛澤東앞 서한을 통해 리지웨이의 제안에따라 휴전협상 개최에 동의하되 장소는 개성을 고수하고 북한군과중공군대표가 반드시 참여하며,회담일시는 7.10~15로 할 것을 권고.毛澤東이 휴전협상을 모스크바측이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한데 대해 스탈린은 毛가 주도권을 갖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
▲7.2=스탈린은 金日成에게 협상에 대한 입장 정립을 위해 중공측과의 협의를 반드시 필하도록 지시.
▲7.16=金日成은 스탈린에게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군 박격포부대의 지원과 제공권 확보를 위한 소련공군의 지원을 요청.
▲1953.3.19=소련 각료회의는 폴란드의 휴전안에 대한 毛澤東과 金日成 명의의 아래 제의를 승인.
-53.2.22의 클라크 장군 포로교환 제안에 긍정적으로 회신하고 판문점에서 휴전협상 재개 촉구.
-이 회신을 金日成과 팽덕회 명의로 발표하고,이러한 제안이 전쟁포로 교환문제를 매듭짓고 한반도의 휴전성사를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토록 지시.
-전쟁포로 교환문제와 관련,포로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 송환되지 않고 포로송환 작업에 폴란드.체코.스위스.스웨덴이 참여토록 함.
▲7.24=소련측,휴전협정 서명에 金日成 대신 북한 부주석과팽덕회가 참석토록 지시.
▲8.4=소련 공산당 중앙위는 전쟁복구 자금으로 북한측에 10억루블 제공키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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