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종말>1.요시프 스탈린

중앙일보

입력 199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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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재자들은 스스로를 절대시하며 사회 전체를 자신의 실험대상으로 올려놓는다.金日成의 경우도 결코 이 점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역사는 절대권력은 부패하고 결국 몰락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독재자들이 사회나 인류에게 끼치는 害惡은 엄청나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은 무자비한 숙청과 전횡으로 同時代人의 삶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며,後世에게도 쉽게 치유 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20세기 현대사 속에 나타난 독재자들의 어두운 행적을 되짚어歷史의 반성으로 삼는 시리즈로 마련한다.
스탈린의 일생은 한마디로 독재권력이 얼마나 허망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잔혹한 방법들이 동원돼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기 권력의지 이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았다.忠僕도 이용한 다음엔 곧바로 제거해야 마음이 놓였으며 죽음의 使者가 곁에 다가온 마지막 순간에도 死後 이미지에 흠집낼 우려가 있는인물들을 제거하려고 몸부림 친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스탈린의 비인간성은 그의 사후 곧바로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1953년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차가운 방바닥에서 뒹굴고있을 때 측근들이 보인 것은 거짓눈물과 보이지 않는 권력쟁탈전뿐이었다.그의 주검을 붙잡고 오열한 사람은 20여년 동안 가정부로 일해온 이스토미나뿐이었다.1922년 러시아 공산당서기장이된 스탈린이 독재 30여년간 이룬「최대업적」은 다름 아닌「끊임없는 피의 숙청」이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다.92년 이후 옐친대통령 군사담당보좌관을 지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장군이 러시아 극비문서를 분석해 내놓은 스탈린 전 기에 따르면,29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무려 2천여만명이 숙청됐으며 이중 3분의 1이상이 사형선고를 받거나 수용소생활을 하던중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스탈린의 숙청행각은 그의 오른팔로 후계자설까지 나돌던 키로프레닌그라드市 당서기가 34년12월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스탈린은 숙청의 안테나이자 하수인인 비밀경찰조직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었다.숙청은 37~38 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赤軍간부 최고군사회의 멤버의 75%,군사령관 15명중 13명,군단장 85명중 62명,사단장 1백95명중 1백10명,대령이상 고급장교 65%가 체포됐다.
체포된 고급장교 6천여명 가운데 1천5백여명이 처형되고 나머지는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피의 숙청을 현장지휘했던 야고다도 스탈린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다.
그는 김일성의 6.25남침을 승인하고 지원해줌으로써 한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아울러 東유럽 여러나라에 절대독재를 수출하기도했다.스탈린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없지는 않다. 후진 농업사회를 빠른 속도로 산업화시켜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든가 관료제도를 중심으로 한 국가체제를 정비했다는 측면이 여기에 속한다.실제로 蘇聯은 28~37년 5~12%의 GNP성장을 기록했으며 이후 50년대 말까지 연평균 6~7 %의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스탈린의 중앙집권적 생산드라이브와 풍부한 지하자원이 맞물린 결과였다.
그러나▲60년대 5.0%▲70년대전반기 3.7%,후반기 2.
7%로 갈수록 악화되면서 식량.사료.육류제품의 세계최대 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만다.스탈린의 전체주의적 경제체제가 남긴 유산임에 다름아니다.
결국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기계적이고 원시적으로 해석,자신의 독재권력을 유지하는데 활용함으로써 지구상에 기형적인 공산주의를着根시키는 愚를 범하고 말았다.스탈린을「역사적 돌연변이」또는「미라가 된 교리를 받든 광신자」로 지칭한 볼코고 노프장군의 시각은 그래서 매우 설득력있는 통찰로 인식된다.
스탈린식 공산주의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시대에 뒤진 권력투쟁의 각축장으로 만든채「인민」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업적을 쌓는데만 몰두했다.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체르넨코등으로 이어지는 스탈린식 독재체제의 악순환은 고르바초프가 등장해 개혁과 개방정책을폄으로써 30여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종식될 정도로 극심한 폐해를 낳았다.
53년 3월5일,스탈린의 오랜 부하였던 베리야는 거나하게 취한 채 스탈린이 쓰러진지 거의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그의 곁에나타났다.그는 의사는 부르지 않고『스탈린 동지가 잠들어 있는데왜 이렇게 소란스러운가.우리의 지도자 동지가 편안하게 잠들도록모두 나가라』라고 짐짓 소리쳤다.절대 독재자의 최후에 대한「냉소적인 예우」였다.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당국은 그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8개월간 미라로 처리한 뒤 붉은 광장에 안치했다.
그러나 뒤이어 새로 권좌에 앉은 흐루시초프에 의해 스탈린격하운동이 전개되면서 미라는 61년 어느날 밤 갑자기 크렘린 벽 한구석에 묻혀버렸다.
곧이어 소련 곳곳에 세워졌던 동상은 철거됐으며 각도시의 거리와 건물등에 나붙었던 스탈린의 이름도 지워졌다.
〈李元榮기자〉 ①요시프 스탈린 (소련) ②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③무하마드 팔레비 (이란) ④아돌프 히틀러 (독일) ⑤이디 아민 (우간다) ⑥장 클로드 뒤발리에 (아이티) ⑦안토니우 살라자르 (포르투갈) ⑧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⑨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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