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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저항 파업·로비 … 손댈 기회 단 한 번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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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인력은 2002~2006년 사이 40배가 됐다. 우체국 예금.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조사를 하는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도 인원이 세 배가량 늘었다. 수익성에 신경 쓰지 않는 공기업들은 틈만 생기면 일을 벌이고 인력을 늘리는 게 생리다.

적자가 생기면 당연히 정부에 손을 벌린다. 4년 사이 공기업에 대준 정부 지원금은 15조원이 늘었다. 4년 동안 토지공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40배가 늘었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18배, 인천국제공항공사도 8배 증가했다. 공기업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화위원회의 부채는 40배가 됐고, 주택공사의 부채는 21조원이 늘었다.

"공기업을 방치하면 두고두고 세금을 갉아먹고 경제성장의 발목까지 잡게 된다." 강원대 김광수 교수는 "차기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공기업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수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걱정했다.

◆공기업의 저항=공기업 수술이 제대로 될지도 불투명하다. 우선 공기업의 내부 저항으로 감시와 견제부터 쉽지 않다. 지난해 A공사의 B감사는 사내 자동판매기 관리권을 가진 노동조합이 민간업자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관행을 문제 삼았다. 노조는 노련한 수법으로 보이지 않게 저항을 시작했다. B감사를 사내에서 '왕따'시키는가 하면, 개인 사생활까지 들춰냈다. 견디다 못한 B감사는 결국 사표를 썼다.

공기업과 관료조직의 짬짜미도 문제다. 공기업 주총이 열리면 정부 대표로 참가하는 해당 부처의 과장은 왕 대접을 받는다. 류상영 연세대 교수는 "어떤 공무원이 그런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외환위기 후 대우증권을 인수한 산업은행은 2005년 감사원에서 대우증권 매각 권고를 받았다. 재정경제부와 산은이 1년간 태스크포스를 통해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미룬다'로 요약된다. '산은의 투자은행 업무를 대우증권으로 넘기되 민영화는 나중에 검토한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생존 본능은 정치권 로비까지 불사한다. 도로공사 자회사인 건설관리공사는 지난해 말 직원 430명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거둬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국회의원 3~4명에게 몰아줬다. 4년 연속 적자로 민영화 권고가 잇따른 직후였다.

공기업이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파업이다. "공기업 개혁을 추진한 DJ 정부도 결국 노조의 대형 파업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공기업 개혁을 주도한 정부개혁실의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의 기억이다. 2002년 초 한전 노조는 정부의 전력사업구조조정에 대해 "공공성을 위해 존재하는 공기업이란 영역에 효율성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반발하며 38일간 파업을 벌였다. 이후 한전.가스공사 등의 분할 매각은 중단됐다.

◆공기업 개혁은 첩첩산중=앞으로 공기업이 활개칠 공간은 더 넓어지는 추세다. 대규모 신도시, 남북 경협, 공기업 지방 이전 같은 굵직굵직한 사업이 꼬리를 물자 개혁 악몽에 짓눌렸던 공기업들이 반색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면서 민간 건설회사들은 시장에서 내몰리고, 대신 토지공사.주택공사가 부쩍 바빠졌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철도공사.광업진흥공사도 마찬가지다. 철도 연결과 개성공단 확대, 남북 자원 공동개발을 위한 로드맵을 짜느라 부산하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개성공단 2단계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자면 인력.예산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남북 경협은 적자를 내도 공기업의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특별법의 독소 조항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 법은 공공기관이 지방 이전 후 적자를 내면 정부가 일정 부분 메워주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기업 노조들은 개혁은커녕 지방 이전 대가로 정부에서 받을 선물보따리부터 계산하고 있다.

그동안 왜 손 못 댔나

YS·DJ 시기 놓쳐 실패
노무현 정부는 의지 없어

한국 정부가 시도한 첫 공기업 개혁은 1968년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한국기계.인천중공업 등 6개 국영기업 민영화였다.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중화학공업 투자 실패를 수습하는 차원이었다. 이 때문에 재벌에 공기업을 헐값으로 넘겼다는 논란만 남겼다. 1980년엔 전두환 정권이 한일은행.서울신탁은행 등 시중은행 민영화를 들고 나왔다. 당시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추진한 민영화 정책을 흉내낸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강한 의지가 없었기에 정부 지분 일부를 팔고 권력에 밉보인 은행장 몇 명을 갈아치우는 선에서 종결됐다. 3차 민영화는 국민주 방식에 의한 한국전력.포항제철 주식 매각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저소득층의 표를 얻고자 내놓은 대선 공약에 따른 조치였다. 그 결과 국민주 보급으로 무늬만 민영화 형식을 띠었고, 본격적인 공기업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93년 정권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은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59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10개 공기업을 통폐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추진한 민영화는 증시 침체와 공기업 노조의 반발에 부닥쳐 힘 한 번 못 써 본 채 무산됐다. YS 정부는 말년인 96년 담배인삼공사.한국통신.가스공사 민영화를 재추진했다. 여기에는 국가 재정이 위태로워지자 공기업 매각을 통해 재정의 구멍을 메워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레임덕에 접어든 YS 정부가 엽연초 농민의 결사적인 저항을 돌파하긴 어려웠다.

결국 본격적인 공기업 개혁은 외환위기라는 상황을 등에 업은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부분적인 성과를 냈다. DJ 정부는 전원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정부개혁실이라는 조직에 공기업 개혁을 맡겼다. 정부개혁실은 포항제철.한국통신.한국중공업 등 11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해 8개를 매각했다. 그러나 DJ 정부도 2차 공기업 민영화를 앞두고 불거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으로 인해 한전.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민영화는 차기 정부의 숙제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영화에 반대하는 발전.가스노조의 총파업 와중에 취임했다. 이후 민영화 정책은 중단되고 공기업은 덩치를 키웠다. DJ 정부 때 통폐합 대상이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경우 현 정부 들어 오히려 인원이 50%씩 늘어났다. '신이 내린 직장'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공기업 임직원이 결혼 상대 1순위로 꼽히기 시작했다.


이래서 신이 내린 직장 …

농수산유통공사

작년 49억 흑자에
성과급 66억 지급

마사회

명예 퇴직자에도
3년간 건강검진

지난 7월 20일 증권예탁결제원 이사회. 올해 인건비 지출이 19%나 늘었다는 보고에 이사들은 "사회적 비판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임원이 그만둬 퇴직금이 나간 데다 인센티브 상여금이 올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감사는 "사외이사님들이 사장님 월급 적다고 말씀을 좀 해줘야죠"라며 바람을 잡았다. 조 사장의 올해 연봉은 상여금을 합쳐 3억8500만원이다.

'조 단위' 적자행진 중에도 철도공사는 지난해 296% 인센티브 상여금을 받았다. 1인당 평균 400만원씩 모두 1200억원이 들어갔다. 지난해 적자를 4000억원 줄여 공기업 경영평가 순위가 2계단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평가 꼴찌를 한 석탄공사도 200%의 상여금을 받았다. 아무리 경영성적이 나빠도 현행 공기업 규정에 최하 200%의 상여금을 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흑자보다 더 많은 돈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공기업도 적지 않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지난해 49억원의 흑자를 냈으나 성과급은 66억원에 달했다. 28억원 흑자를 낸 광업진흥공사도 37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공기업의 '그들만의 잔치'는 끝이 없다. 마사회는 명예퇴직자에게 3년간 연 30만원의 건강검진과 건당 100만원의 경조사비를 준다. 철도공사는 배우자의 조부모가 사망할 때도 기본급의 100%(평균 200여만원)를 위로금으로 줬다. 그나마 여론의 비난이 거세자 모계 조부만 사망위로금 대상에서 뺐다. 근로복지공단은 창립기념일.사회봉사의 날 대체휴가를 하루씩 준다는 안건이 이사회에서 보류되자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전파진흥원은 측정 장비 구입비를 투자비로 올렸다가 이를 리스로 바꾸고 거기서 남은 돈을 직원 처우개선에 쓰려다 사외이사의 제지를 당했다. 전 직원이 고작 60여 명인 컨테이너부두공단도 비상임인 감사 자리를 연봉 3억5000만원인 상임으로 바꾸려다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특별취재팀 : 정경민 차장, 박혜민.윤창희.손해용 기자

▒알려왔습니다▒

10월 9일자 5면 '다음 대통령, 취임 초 공기업 개혁을' 기사와 관련,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총인원수가 2002년 601명에서 2006년 646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공단의 통계입력 착오로 알리오시스템에는 2002년 16명으로 잘못 기재됐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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