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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가을이 제격인 ‘음악 영화’ 감상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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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가을의 선선한 공기는 좋은 소리와 제격의 궁합을 이룬다. 아일랜드 거리 음악가의 열정을 다룬 ‘원스’가 개봉 보름 만에 약 4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전국 10개 스크린에서 선보인 영화로는 썩 좋은 성적이다. 3일부터는 스크린이 서울 용산CGV 등 두 곳이 추가됐다. 개봉 후 스크린 유지가 어려운 작은 영화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음악 영화 두 편이 또 찾아온다. ‘카핑 베토벤’(11일 개봉·사진(上)은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9번 교향곡 ‘합창’의 장엄한 선율을 완성한 베토벤의 말년을 조명한다. 가상의 여인이 베토벤의 조수가 된다는 설정이다. 허구와 실제가 뒤섞인다.

 여자가 작곡가가 되는 게 상식 밖의 일이었던 그 시절,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젊은 여성 안나(다이앤 크루거)는 돌연한 요청을 받고 베토벤(에드 해리스)의 필사본 악보를 카피, 즉 연주용으로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 베토벤의 괴팍한 행동, 어린아이 같은 열정이 안나의 눈을 통해 그려진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여성의 관점을 등장시키는 드라마적 변용을 택했지만, 역시나 이 영화의 매력은 베토벤의 음악 자체다. 대규모 합창단을 연주 내내 그저 세워뒀다가 교향곡의 마지막 장에 등장시키는 과감한 도전, 합창교향곡의 성공 이후에도 대중의 기대에 아랑곳없이 실험적인 실내악을 시도하는 모습 등에서 베토벤의 불굴의 의지를 맛볼 수 있다.

 프랑스 스릴러 ‘페이지 터너’(3일 개봉·사진(下)는 우아한 클래식과 처절한 복수극을 결합시킨다. 가난 속에서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녀 멜라니는 그만 중요한 입학시험에서 연주를 망치고 만다. 심사위원장 때문에 정신이 산란해졌던 것. 10년 뒤, 멜라니(데보라 프랑수아)는 문제의 심사위원장이자 저명한 여성 피아니스트 아리안(캐서린 프로트)의 아들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아리안은 멜라니를 알아보기는커녕 연주회 때 페이지 터너, 즉 악보를 넘겨주는 일까지 맡긴다. 아리안의 신뢰가 쌓여가는 사이, 멜라니는 오래 꿈꿔왔던 복수에 나선다. 피가 튀는 육체적 복수가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심리적 복수다.

 쇼스타코비치·바흐·슈베르트·쇼팽 등 다양한 연주곡은 이 우아한 복수극의 긴장감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파멸적인 비극을 암시하는 역할까지 한다. 감독 드니 데르쿠르는 음악학교를 졸업한 비올라 연주자 출신. 서울 상암CGV·명보극장·필름포럼(옛 허리우드극장) 개봉.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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