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부는 과열교육바람(「파라슈트키드」의 낮과 밤:10)

중앙일보

입력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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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과외·대리시험·치맛바람에 망신/스승의 날 선물 경쟁적으로 액수높여
『이해력은 빠른데 수업태도는 계속 산만해요.질문도 한번 안했고….』
LA 한인타운의 한 건물 1층 공중전화에서 이 건물에 입주한 한국인 경영 과외학원 수학 강사 C씨가 어디엔가 전화를 건다.
자기가 가르치는 조기 유학생 송모군(17)의「수강동향」을 보호자인 삼촌에게 알리는 저녁 일과다.
이 학원에서 영어·수학을 수강하는 송군의 출석·수업태도가 C씨와 영어강사 O씨를 통해 교포인 그의 삼촌이나 숙모에게 낱낱이 보고(?)되기는 열흘째.
주말에 서울에서 온 송군의 어머니로부터 과분한 저녁 대접과 함께 4백달러의 사례금이 든 봉투를 받고 맡게된 일이다.
『얘가 지난해 방학때는 학원에 등록하고 절반밖에 다니지 않았어요.선생님들은 뭘 했는지….그래갖고 어디 UCLA 정도나 들어갈 수 있겠어요.』
미국사회에선 쉽게 보기 힘든 짙은 화장과보석으로 치장한 40대 중반의 어머니는 송군이 외아들이라며『한국에서 중위권 이상 대학은 가고도 남을 실력인데 고액 과외 바람이 하도 거세 그 돈이면 차라리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보냈다』고 장황하게 수다를 떨었다.
송군은 2년전 LA로 와 삼촌집에 머무르고 있다.우리나라 고교 1학년에 해당하는 10학년에 재학중인 송군의 일과는그러나 학원 수강과 과외로 숨돌릴 틈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이 학원에 다녀요.토요일은 주말에만 개설한 다른 학원에서 역시 2시간씩 영어·수학을 공부하고.거기다 월·수·금요일 저녁에는 친구집에 가 과외를 해요.』
송군은 5월28일부터 시작된 3개월여의 긴 여름방학 동안 다른 친구들처럼 놀러 한번 못가게 됐다고 투덜거린다.
이번 방학중 송군의 과외비로 지출되는 돈은 두군데 학원비가 각각 3천6백달러·1천5백달러로 모두 5천1백달러,세명이 함께받는 과외비 시간당 70달러를 합하면 5천40달러등 모두 1만달러(8백만원)를 넘는다.
『과외 열풍을 피해 유학을 보냈다』는 말은 따지고보면 핑계인 셈이다.
12학년(우리의 고3)이 되는 이번 가을부턴 부모가 시키는대로 대입에 대비한 특별과외를 받게된다는 송군은 상당수 조기유학생들이 처음엔 미국생활과 학습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한두달 과외를 하다 아예 「상습과외」에 빠져든다고 했다.
『뒤떨어지는 영어실력으로 현지 학생들과 경쟁하자니 과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죠.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뉴욕이나 LA에는 조기 유학생·교포자녀를 상대로 한 학원과 과외가 한국 못잖게 성행하고 있습니다.』
송군이 다니는 학원 원장(42)은 LA에한국인 중·고생을 상대로 하는 학원만 50여곳에 이른다고 했다.과외뿐만 아니다.
한국 부모들의 치맛바람은 조기 유학이 급증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미국의 사친문화까지 일부 흐리고 있다.
『10∼20달러짜리면 족하고,하지않아도 그만이던 국민학교 Teacher’s Day(학교마다 날짜가 다른 스승의 날)의 선물이 한국 학부모들 사이엔 1백∼2백달러 짜리로 경쟁하듯 격상됐어요.부끄러운 일이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니 따라서 할 수밖에요.』 2년전 LA 지사에 파견근무차 이주해 두 남매를 국교에 보내고 있는 박모씨(38·상사원)는 『1차로 교민·주재원들이 물을 흐려놓았고 거기에 유학생 부모들이 훨씬 큰손으로 가세하고 있다』고 했다.
시카고의 한 고교에 지난 해 2월 유학온 국내 모의류업체 사장 아들 K군은 며칠전 주위의 예상을 깨고 무사히 졸업장을 받았다.
시가 5만달러짜리 코벳 스포츠카를 몰며 엄청난 씀씀이로 『한달 용돈이 1만달러는 될 것』이란 얘기를 들어온 그는 빨래가 귀찮아 옷이 더럽다 싶으면 새 옷을 사 갈아 입을 정도의 낭비벽을 가진 전형적인 10대「오렌지」.<김석현기자><2면에 계속>

<1면서 계속> 『수업에도 제적을 면할듯 말듯 출석해 졸업이 어려울 것으로 다들 생각했는데 지난달 서울에서 온 부모가 학교를 다녀가더니 버젓이 졸업생 명단에 올랐어요.1만달러를 기부하는 조건으로 졸업하게 됐다는 소문이 파다하죠.』
동료들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큰손 부모」들의 행태를 짐작케 하는 사례다.
입시문제 유출,대리시험,커닝,위장 전입,촌지….
○졸업도 돈으로 해결
국내에서 일어나는 온갖 교육 부조리가 미국에까지 그대로 옮겨져 잇따른 추문을 낳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뉴욕에서는 토플·SAT·공인회계사등의 시험에 지원한 한국학생들로부터 거액을 받고 대리시험을 알선해 준 TTS(Total Test Services)학원의 박진형원장(32)·장왕기부원장(28)등 2명이 연방수사국(FB I)에 구속되고 「대리시험 선수」 10여명이 불구속입건됐다.
박씨등은「한달내 토플성적 6백점 보장」등의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간 학생들에게 ▲공인회계사 2만5천달러 ▲GRE·GMAT 1만달러 ▲토플 3천∼5천달러씩 챙긴뒤 보유한 「선수」들을 시험장에보내 대리시험을 치르게 했으며 3년간 수백건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는게 FBI측 수사발표였다.
당시 시험관들은 『동양인들의 인상이 서로 비슷해 구별하기도 어려웠지만 도대체 그같은 부정이 저질러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경악했다.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돼 한국인의 명예와 자존심이 먹칠됐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범행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해온 교육부가 「특정 주소지의 학생들이 매년 많은 시험에 응시하고 있고 성적이 한결같이 높다」는 의문을 품어 FBI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FBI는 한국인 수사관을 응시자로 위장,학원에 접근시킨뒤 지난해 11월말 토플시험장을 덮쳐 대리시험 선수 6명을 체포하고 박원장과 장씨등을 붙잡았다.박씨등은 선수들에게 기백∼기천달러의 수고비를 주고 엄청난 차액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몇년 전엔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이용한 토플시험 문제 유출사건이 터져 한바탕 망신살이 뻗쳤지요.같은 날 시험이 치러지지만 한국이 14시간(미국 동부)∼17시간(서부)빠른 점을 이용,한국에서 치러진 문제들이 꼬박꼬박 팩시밀리로 전 송됐고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암거래한거예요.이후 문제가 서로 달라지게 됐고 「한국인들의 비상한 머리때문에 각종 보완장치가 생긴다」는 부끄러운 말이 생겨났죠.』
LA에서 학원 경영에 수년간 간여한경력이 있는 이모씨의 말대로 토플등 비중 큰 시험철이 되면 군소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어떤 수법으로든 「한 건」만챙긴뒤 사라지는 현상이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시험철저땐 학원난립
기자가 현지취재중인 지난달 중순 캘리포니아주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LA근교 위트니고에선 때마침 입학시험 문제가 사전유출되는 사건이 터졌다.한인 학원이 이 학교에 입시문제를 공급하는 출판사로부터 문제지를 사전 구입,한국학생을 상대로 유출한 것이다.
「LA 8학군」을 겨냥한 위장전입으로 퇴학까지 당하는등 툭하면 구설수에 오르던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또한번 구겨졌고 재시험 여부를 둘러싼 잡음으로 지역의 교육계는 물끓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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