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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찾아서>1.시몬 드 보부아르,제2의 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잘 쓰여진 한권의 책은 그 내용으로 시대를 규정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名著 한권이 가위 원자폭탄의 힘을 넘어선다』는 말이 있다.인간의 의식에 작용하는 책의 영향력을 표상하는 말로 이는 단순한 虛辭가 아니다.
지난해 독자들의 아쉬움속에 막을 내렸던 시리즈『책과 시대』에이어 본지에서는 우리시대의 고전이 된 명저들을 찾아 매 일요일자 지면을 이용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편집자註] 戰後 가치관의 혼란이 채 정리되지 않았던 1949년.많은 여성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의 품에 빠져 있을 때 발표된 시몬 드 보부아르의『제 2의 性』(Le Deuxi'eme Sexe)은 세계 여성운동사에서 가위 혁명적이라고 기록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45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책은 사회주의권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술이 차지했던 만큼이나 큰 비중을 지니며 여성운동의 고전으로 통하고 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경의 이념도 남성의 여성 장악에 적지않게 기여했다.』 당시의 전통적 규범으로는 감히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메시지를 담은『제2의 性』은 종교계와 남성들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전이었고 여성에겐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는 각성제였다.이 책은 출판 1주일만에 2만부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하면서 당시 의식있는 여성들의 필독서가 됐다.그만큼 교황청과 남성들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교황청은 즉각 이 책을 금서목록에 올렸고 남성 지성인들도 앞다투어 비난에 나섰다.알베르 카뮈 같은 인물조차『프랑스「수컷」을 조롱했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을 정도였다.『남성과 여성의차이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적.사회적 영 향에서 생겨난결과』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 책의 논지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그러나 당시로서는 결집력이 결여됐던 여성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다른 여성운동가들과 달리 보부아르가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은 단순히 남성들을 비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처음으로 생물학.정신분석학.신학.철학.사회학등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남녀가 사회적으로 처한 조건과 차별의 원인을 명쾌히 분석,여성 권리 주장의당위성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1천여 쪽의 장편인 이 책은 크게 여성이란 무엇인가의 생물학적 고찰,여성이란 개념의 역사적.신화적 분석,여성이 남성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는 과정,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는「제2의 성」으로 자립하기 위해 여성이 갖추어야 할 조건 등으로내용이 짜여 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신체적 조건을 따지자면 남자와 여자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 신체적 차이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문제는 여자아이의 경우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자아이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게 된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여자아이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점차 남자의 종속물로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여성은 성숙하면 할수록 사회의 구속과 강요를 더욱 더 노골적으로 받는데,그렇게 되면 여성 스스로가「여자다움」이란 굴레를 뒤집어 쓰게 된다.그들에게 독창적인 삶을 개척해나갈 필요성을 일깨우려는 사람도 없다.그들은 또 관습에 얽매여야 한다.그러다보니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남성의 보호나 사랑을 받으면서 안일하게 살아가게 된다.그 사랑이란 것도 남녀에 따라 의미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남자에게 있어서는 일시적인 관계고 생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여자에겐 인생 그 자체며 권리 포기로까지 작용할 수도 있다.심지어 사랑의 결실로 일컬어지는 결혼까지도 여성에겐 더이상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구속력을 지니게 되는 반면 남성에겐 남성 우위 사회를 지탱하는 장치가 된다.
이처럼 결혼이 여성의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에선 결혼은 부정되어야 한다.그동안 남녀 역할 분담으로 인한 차별을 두고「불평등속의 평등」으로 미화해왔던 남자들이 다시 출발점에 서서 남녀가조화롭게 살아가는「성 차이 속의 평등」을 모색 해야 할 때라는것이 보부아르의 주장이다.
『여자들이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한경제적 자립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 보부아르는 출산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모성애까지도 부정하는 과격성을 보였다.여성문제의 근본을 경제력으로 보았기 때문에그녀는 사회주의운동을 통해 여성 해방을 추구했다.
***출산등 모성애 부정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제2의 性』에서 문학자로서,또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당시 여성의 삶을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게 되는 사회적 차별을 고발하는데 성공했다.현대사회에서도 그녀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여자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여성이남성과 똑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고는 단정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보부아르의 주장대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남녀 차별의「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보면 백인문제이듯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라는 보부아르의 말은 다시 한번 음미할만하다.
보부아르는 그렇다고 남녀 차별 문제의 화살을 남성들 쪽으로만돌리진 않았다.『여자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단지 남자들이 베푸는 것만 받아왔을 뿐이다.여성들은 단 한번도 독립된 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냥 운명에 체념해왔을 뿐』이라면서 그녀는 여자들 스스로 여성차별을 부르는 각종 신화를만드는데 일조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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