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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하던 시어머니도, 눈치 주던 올케도 강강술래~

중앙일보

입력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뎁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둥글둥글 수박 식기(食器) 밥 담기도 어렵더라.
도리도리 도리 소반(小盤) 수저 놓기 더
어렵더라.
오 리(五里) 물을 길어다가 십 리(十里) 방아 찧어다가,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 두 방에 자리 걷고

시집살이가 어떤지를 묻자 ‘고추보다 맵더라’고 대답하던 부녀자들의 말에서 예전 여성들의 고된 생활을 실감할 수 있다. 시부모 공경에 자식 양육, 지아비 섬김 등 온갖 집안일은 물론 밭에 나가 김까지 메는 힘들고 고된 생활 중에 그저 맘 편하게 한바탕 즐길 수 있었던 놀이문화는 과연 없었던 걸까?
-추석이 가까워지면 남도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손에 손을 마주잡고 큰 원을 그리면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요즘은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나 돼야 강강술래를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추석이 다가오면 소녀부터 부녀자들까지 강강술래를 하기 위해 야외로 모여들었다. 춤 한판으로 가볍게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을 여성들이 모여 초저녁부터 밤이 깊도록 강강술래를 외쳤다. 고된 시집살이로 꽁해 있던 마음도 손에 손을 잡고 녹여내고, 하루 종일 굽어있던 다리와 허리도 이날만큼은 쭉 펴고 발디딤을 해본다.
지금은 어떤가? ‘대동놀이’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놀이문화와는 다르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혼자 산책을 즐기거나 헬스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걸까?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전남 해남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무형문화재 8호인 ‘우수영 강강술래’.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박양애(72), 차영순(60) 할머니를 비롯해 강강술래 보존진흥회 회원들과 해남군청은 ‘강강술래 토요체험마당’을 열고 있다. 지난 8일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부터 교복차림으로 부랴부랴 달려온 여고생들, 엄마 손을 꼭 잡고 따라 온 초등학생까지. 하지만 모두 할머니 선생님의 설명을 집중해서 듣는다.
“발디딤은 하나에 왼발 무릎을 굽혀 올리면서 양발을 뛰고. 둘에는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교차해서 힘차게 왼발로 바닥을 밟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걷다가 속도가 아주 빨라지는 마지막에는 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1박에 두 발을 연달아 흥겹게 뛰면서 도는 겁니다.”

육근육근 유자나무 강강술래
백년새가 앉어우네 강강술래
나도역시 어릴때는 강강술래
저새소리 했건마는 강강술래
각시님이 되고봉께 강강술래
어른님만 따라간다 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자진모리) -

‘강강술래’ 노랫가락에 맞춰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만들어 본다. 선생님의 선창 소리에 나머지 사람들도 뒷소리(강강술래)를 받는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로 시작해 점점 빠른 가락인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변해가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왼발을 들어 한 발짝씩 옮겨 천천히 돌다가 이내 빨라지는 장단에 맞춰 발걸음이 바빠지더니 여기저기서 손을 놓쳐 둥글던 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이내 다시 손을 부여잡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해 보인다. 한 줄로 길게 엎드려 그 위로 한 사람이 사뿐히 밟고 지나간다. 양 옆에서 손을 잡아 도와주어 일명 ‘기와 밟기’를 한다.

어디골 기완간 참장골 기와지
몇닷냥 주었나 섯닷냥 주었지
어디골 기완간 전라도 기와지
몇닷냥 주었나 열닷냥 주었지
어디골 기완간 경상도 기와지
몇닷냥 주었나 스물닷냥 주었지

“기와 밟기를 왜 하냐면 예전에 기와로 지붕을 만들면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도 기와가 깨지지 않아야 집안이 대대로 튼튼하다고 했죠. 그래서 기와 밟기를 하는 겁니다.” 박양애 할머니가 설명한다. 기와 밟기는 옛날 공주가 피난 중 하천을 건너게 되었는데 공주의 발이 젖지 않도록 마을 소녀들이 등을 굽히고 그 위를 공주가 밟고 건너게 한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모양이 기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강강술래라고 하면 그저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도는 것인 줄만 알았던 어른들. 이에 비하면 초등학생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기와 밟기 말고도 남생이 놀이도 있고 고사리 꺾기도 있어요.” 알고 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강강술래의 여러 가지 놀이인 ‘남생이 놀이’, ‘기와 밟기’, ‘동아 따기’, ‘비자나무’, ‘대문놀이’, ‘고사리 끊기’ 등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이 곳 남도 사람들의 강강술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해마다 강강술래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강강술래 진흥보존회 김일호 국장은 “이순신 장군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해 아군 수가 매우 적자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 허리를 빙빙 돌게 했습니다. 옥매산 진영을 바라본 왜병들은 우리 군사가 너무 많아서 계속 행군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기록이 있죠” 라며 놀이문화 뿐만 아니라 군사전략으로도 큰 역할을 했던 강강술래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여인네들이 언제 마실 나가서 제대로 놀아보길 했겠어, 따로 운동을 했겠어? 그냥 강강술래 한다고 온 동네 여자들을 불러내면 못 이긴 척 다들 나가서 한바탕 놀고 오는 거지. 우리 때도 마찬가지고…….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도록 걷고 뛰면서 강강술래를 외치다 보면 이웃 간에 얽힌 응어리도 풀고 그간 부족했던 운동량도 채우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온갖 잡념을 날려버릴 수 있지.”
참으로 옛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최고의 집단 걷기문화가 아닌가.

Tip 강강술래 토요체험마당
기간_ 07년 9월~11월(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해남군청 홈페이지 확인
장소_ 문내면 우수영 강강술래 전수관(우수영 국민관광지 내)
대상_ 군민, 관광객 누구나 가능
인원_ 제한 없음(단체 또는 개별참여 가능)
비용_ 무료
문의_ 강강술래진흥보존회 사무국장 011-636-3490 /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918 / 우수영 관리사무소 061-530-5541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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