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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선언」 재고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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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위반… 우리만 지킬 필요없어/NPT 규정내에서 재처리시설 보유해야
남북한간 92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중대한 시련을 맞고 있다. 북한은 이 선언이 있기전에 이미 핵재처리시설을 확보한 것으로 밝혀져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이 선언을 위반했고 최근엔 일본의 플루토늄 미신고를 이유로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상 무효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이홍구 부총리겸 통일원장관도 이 선언의 재검토를 강력히 시사했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대한 전문가의 찬반논리를 통해 이 선언의 유지와 철회의 당위성을 정리해본다.<편집자주>
핵사찰 문제가 하나의 종착역에 다달한 느낌을 주면서 북한 핵문제는 새 차원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북한 핵의혹의 핵심중의 핵심인 5㎿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에 대해 중대한 상황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원자로에서 빼낸 폐연료를 마음대로 이동·변형·처리하게 되는 경우 핵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미상태로 돌입하게 될 것이며 재처리시설에 대한 추가사찰 역시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을 추정하는 관건이다. 그러는 중에 나온 신임 이홍구 통일원장관의 말 한마디는 그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정책변화를 예고하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지난 5월13일 신문편집인협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이 장관은 『북한이 반쪽의 핵무기라도 개발하면 비핵화 공동선언은 무효』라고 말해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북한의 핵보유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설에서부터 북한 핵의혹의 정도가 공동선언을 무용지물로 만들 만큼 심각함을 의미한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뒤따랐다. 지난 3년간 한국 핵정책의 「태생적 결함」을 지적해온 필자는 당연히 후자쪽 해석을 내리고 있었고,『공동선언을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밝힌 이 장관의 24일자 발언은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92년 2월 발효한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한이 핵무기를 물론 농축 및 재처리시설도 가지지 않겠다고 약속한 문서다. 그러나 이제 「농축 및 재처리시설 비보유」 부분은 뒤늦지만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하며,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첫째,농축 및 재처리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함은 핵폭탄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가지지 않겠다는 말인데 공동선언에 서명할 때 북한은 이미 영변의 재처리시설을 부분 가동했고 플루토늄까지 추출해놓고 있었다. 완벽한 기만극이었다.
둘째,이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나 재처리시설 유지문제가 공동선언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없을뿐 아니라 북한의 핵의혹만 매번 증폭되었다. 그러니 있으나마나한 공동선언을 우리만 계속 준수하겠다고 한다면 바보스러운 일이다.
셋째,원래 비핵정책이란 「핵무기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농축 및 재처리시설의 비보유를 선언한 선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미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핵시설들을 움켜잡고 있는 북한에 재처리시설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남북한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뿐 실리가 없다. 엄밀히 말해 북한의 공개된 핵시설 폐기를 요구하기 보다 사찰과 투명성을 요구할 때 남북대화는 더욱 쉬워진다.
넷째,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한반도 핵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비핵화 공동선언이고 보면 이는 주변국들의 협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무산되었다. 일본은 플루토늄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핵기술우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다섯째,농축이나 재처리시설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들이다. 농축시설없이 핵연료의 국산화는 있을 수 없고 재처리시설이 없는한 폐연료의 처리 및 핵자원 재활용은 꿈도 꿀 수 없다. 9기의 원전을 운용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9채의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장실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고집에 편승하면서 우리도 필요한 것을 갖추어 나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것이 핵문제를 통일후를 대비한 민족의 이익으로 승화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들만이 공동선언에 제3조가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농축이나 재처리시설은 그 자체가 정치·외교력을 발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협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샌드위치」상황을 감안할 때 경제적 이유든,정치·외교적인 이유든 재처리시설의 보유를 더이상 미루어선 안된다.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기만 한다면 실속없는 대북 강경론이나 유화론에 휩쓸릴 이유가 없다. 「그들」아닌 「우리」가 죽는 전쟁이 초래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왜 우리가 강경론에 손뼉을 쳐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스스로 아무런 대북 제재수단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왜 미국의 대북제재를 강경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무책임하기는 유화론도 마찬가지다. 양보할수록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시달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리의 핵정책은 처음부터 「의연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따로 두고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
미­북한 핵협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도 그렇다. 남북대화가 전제되지 않는 미­북한 회담에 반대한다는 「연계」를 주장하면 북한의 반발을 초래하여 북핵 투명성 확보가 늦어지고 내버려두면 우리만 철저히 소외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제쳐놓은채 평화협정이니,경수로 지원이니,경협이니 하면서 우리의 통일안보 이익과 직결되는 사항들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딜레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대북 및 대미지렛대를 조성해 나아가야 하며 NPT 규정내에서 농축 및 재처리시설 보유의 길을 터야 한다.<김태우 핵문제전문가·정박>
◎북핵투명성 확보위해 준수해야/비핵 공동선언 안보·외교적 가치 극대화 긴요
40여년간에 걸친 냉전의 종식과 함께 핵무기의 감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87년 미소간에 중거리 핵무기 폐기(INF)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전세계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장거리 핵무기 감축을 위한 미·러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이 진행되면서 평화 애호가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핵무기의 전폐,즉 전세계의 비핵화를 목표로 평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핵무기의 가치는 군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으로 구분되고 있다. 냉전시대와 같은 군사대결의 상황에서 핵무기의 군사적인 가치는 극대화된다. 특히 전쟁억지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력과 대외협상력 제고가 핵무기의 정치적인 가치다.
핵무기 보유국은 세계 몇 안되는 핵보유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제고시키려하고,핵개발 또는 보유 의혹을 가진 나라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NCND)을 사용하여 핵카드의 효용성을 증대시킨다. 이러한 핵무기의 군사적인 위험성,정치적인 비도덕성을 없애기 위해서 비핵화가 추진된다.
92년 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와 남북한 교류 및 통일협상의 여건을 조성한다는 의미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개발 의혹을 보임으로써 이 선언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이 핵투명성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무효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고,심지어는 우리도 핵재처리시설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의 기본원칙인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포기할 경우 안보·외교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안보적인 면에서 우리도 북한처럼 핵의 NCND정책을 취한다면 북한에 핵개발의 명분을 줄 우려가 있고 주변국들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경계가 강화될 것이다. 또한 일본도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다면 외교적인 면에서 북한 핵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체제가 무산될 우려도 있다.
어느 일방이 공동선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둘중 하나다.
첫째는 공동선언을 파기하고 「힘에는 힘」의 논리로 맞대응을 하는 것이고,둘째는 공동선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동선언을 준수하도록 압력과 회유를 하여 정치외교적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처하면서 한국은 후자의 방법을 택해왔다. 즉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안보·외교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국이 채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을 넓혀왔다.
미국과 공조하면서 채찍과 당근의 방법을 사용하여 효과적인 대북한 핵정책을 추진하여 온 것이다.
북한에 있어서 핵무기 보유는 군사적으로 최후의 방어수단으로서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핵을 보유함으로써 가지는 부담도 적지 않다. 우선 핵을 보유할 경우 국제적인 비난을 감당하기 힘들고 제재의 우려도 적지 않다. 한반도의 갈등이 고조되면 북한의 핵기지가 제2의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에 북한의 군사운용 행동반경이 좁아질 것이다.
이러한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핵보유 선언을 하지 않고 핵을 보유하게 되면 핵무기는 전쟁억지력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한 최후의 방어수단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 때문에 핵무기 보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최우선적으로 북한이 핵투명성을 보이게 해야 한다.우리가 비핵화선언을 사문화한다고 해서,또한 우리가 핵무기 개발을 한다고 해서 북한이 이것이 두려워 핵투명성을 보일리는 없다.
북한이 핵카드를 사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핵투명성을 보일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여 미국의 자본과 기술로 경제개방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핵투명성 확보를 원한다면,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 북한이 개방되어 주민들이 북한체제와 다른 서방체제를 비교할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들은 체제변화의 욕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북한 당국자들이 이를 수용할 경우 북한의 정치체제는 개혁될 것이고 이를 거부할 경우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는 동유럽 공산주의국가들과 같은 말로를 걷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시발점인 북한의 핵투명성 확보를 위하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안보·외교적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변국들과 협조하여 동북아 비핵화선언까지 추진,북한 핵투명성 확보를 위한 국제적인 압력을 가중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투명성을 끝까지 보이지 않을 경우,또는 북한의 핵개발 보유가 확실시된 이후에 비핵화선언 포기를 고려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김계동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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