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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박정희가 탄 ‘붉은 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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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하늘을 날다’. 하늘을 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욕망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플라이어(Flyer)호를 개발한 때부터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 불리는 에어버스 A380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까지. 하늘을 자유자재로 누비고자 하는 욕망은 변함이 없다.

▶노스웨스트 항공 전세기를 이용하는 박정희 대통령.

다만 ‘나는 것’ 자체를 향한 꿈이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나 수단으로 바뀌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끼는 해방감이나 막연한 기대는 세계 모든 사람의 공통된 것이다. 이민자들은 고국이 생각날 때마다 공항에 나가 국적기를 보며 향수를 달랜다. “서울 여의도 광장 한가운데 한 마리 새처럼 내려앉아 있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극장 뉴스에서만 보던 비행기를 내 눈으로 처음, 직접 보는 순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 폭격기 B-29를 개조한 노스웨스트 항공사 여객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성악가인 고 김자경 선생에 이어 미국행 비행기를 탄 두 번째 한국인 여성 승객이었다.”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중에서) 글에 나오는 ‘나’는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 여사다. 노 여사는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하려고 국내 첫 미국행 여객기에 올랐다. 여의도 공항을 출발해 미국으로 향하는 노스웨스트 항공기 탑승은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때는 1947년, 우리나라 최초 민간 항공사인 KNA(대한민국항공사)가 개항하기 1년 전 일이다. 1926년 운항을 시작한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은 우리나라에 첫 출항한 상용 여객기다. 지난 9월 4일, 노스웨스트 항공은 한국 취항 60주년을 맞아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기념 행사를 열었다. 노 여사는 노스웨스트 항공 본사 초청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책에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배로 오가던 곳이라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과 흥분 속에 빠져들었다”는 기분을 전한 바 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57달러였고, 노 여사의 항공료는 1000달러였다. 이날 행사에는 노 여사 외에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윌리엄 오벌린 암참(A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강광호 한국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 등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노스웨스트 항공 60돌을 축하했다. 경쟁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이종희, 강주안 대표가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태우 노스웨스트 항공 한국 지사장과 짐 뮐러 아시아 담당 전무는 행사에 참석한 축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들은 벽 전체에 노스웨스트 항공 60년사를 기록한 ‘히스토리 월(History Wall)’을 보고 노스웨스트 항공과 함께해 온 우리나라 역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1947년 7월 15일, 노스웨스트 항공은 미국에서 출발, 도쿄~서울~상하이를 거쳐 마닐라에 도착하는 운항을 시작했다. 세계 항공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북미와 아시아를 연결한 운항이었다. 일주일 후, 노스웨스트 항공의 첫 항공편이 여의도 공항에서 도쿄를 거쳐 미국으로 출발했다. 성악가 김자경 선생과 노라 노 여사가 탑승한 여객기였다. 노스웨스트 여객기가 여의도 공항을 떠나는 순간 대한민국 항공 역사도 본격적으로 열린 셈이다. 현재는 미국, 아시아 간 매주 200여 노스웨스트 논스톱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다. 1948년 노스웨스트 항공기는 본체 꼬리에 붉은 칠을 하고 나타났다. 붉은 꼬리는 지금까지도 노스웨스트 항공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 노스웨스트 항공은 첫 보잉 B-377 스트래토크루저(Stratocruiser) 항공기를 인수했다. 호화로운 복층으로 구성된 이 항공기에는 태평양을 횡단할 때 편히 쉴 수 있는 승객 라운지가 설치돼 화제를 모았다.

열일곱 박근혜의 첫 외국행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노스웨스트 항공은 서울 운항을 임시로 중단했다. 1949년 5월 중국 내전이 발발했을 때도 상하이 노선을 잠정 중단했었다. 상하이 노선은 훗날 35년 만에 부활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정부는 노스웨스트 항공을 보급물자 수송 항공사로 선정해 노스웨스트 항공은 우리나라와 하나의 인연을 만들었다. 1950년대의 노스웨스트는 항공사 중 최초로 자체 공항을 운영하고, 일등석 ‘임페리얼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변신을 거듭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노스웨스트 항공은 우리나라와 외국을 바쁘게 오갔다. 대통령 전용기가 없던 때였다. 대통령이라도 비행기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주로 노스웨스트 항공 전세기가 박 대통령의 국외 방문을 도왔다. 1961년 박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일본 이케다 총리를 방문했다. 이어 노스웨스트 항공 전세기로 미국을 방문해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2년 후 케네디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할 때도 박 대통령은 노스웨스트 항공 전세기를 이용했다. 1965년 미국 닉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1966년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회의 참석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닐라를 방문할 때는 최계자씨를 비롯한 한국인 승무원 4명이 함께 탑승하기도 했다. 1967년 호주 홀트 총리 추도식, 1968년 호주 존 고든 총리와 뉴질랜드 총리와의 회담 등 박 대통령은 외국을 방문할 일이 있을 때마다 노스웨스트 항공 전세기를 이용했다. 특히 1968년 호주를 방문할 때는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큰딸 박근혜 의원과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호주 방문은 박 의원의 첫 외국행이었다고 알려진다.

▶하태우 노스웨스트 항공 한국 지사장이 취항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라 노 여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박 대통령뿐 아니다. 1962년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가 일본에 억류된 지 36년 만에 귀국하면서 이용한 비행기도 노스웨스트 항공이었다. 1970년대 들어 노스웨스트 항공은 서울 경유 항로를 활발히 개척했다. 도교~서울~홍콩 노선을 주 2회 운항했고, 석 달이 채 안 돼 4회로 운항을 확대했다. 1975년에는 여객기뿐 아니라 노스웨스트 항공의 화물기가 한국에 취항했고, 일본의 나리타 공항이 개항했다. 나리타 공항은 현재 노스웨스트 항공의 아시아·태평양 허브 노선망을 담당하고 있다. 1979년에는 한 주에 두 번이나 서울~시애틀을 오갈 수 있게 됐다. 1984년, 노스웨스트 항공은 중국 내전 때 중단한 중국 운항을 새롭게 시작했다. 노선은 시애틀~도쿄~상하이. 1985년에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김대중 대통령이 노스웨스트 항공 191편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일도 있었다. 88 서울올림픽을 2년 앞둔 때에는 서울~시카고, 서울~로스앤젤레스 운항이 시작됐다. 횟수도 주 4회로 빈번했다. 1989년 세계 최대의 여객기인 보잉 747-400이 운항을 시작하면서 서울~디트로이트, 서울~도쿄~사이판 노선에 취항했다. 미국의 주요 도시를 노스웨스트 항공을 통해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 노스웨스트 항공은 서울을 아시아의 미니 허브로 지정했고, 매일 10대의 747항공기를 운항했다. 1994년에는 일등석과 월드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 한식을 기내식으로 제공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때 음식은 힐튼호텔의 한식당 ‘수라’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우래옥’이 담당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아시아나항공과 공동 운항 제휴를 맺어 디트로이트, 괌, 뉴욕 JFK,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사이판 등 미국 7개 도시로 운항을 확대했다. 또 북한 영공을 통과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주말에도 서울~도쿄 간 추가 항공기를 운항하기 시작했다.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던 해에 노스웨스트 항공은 부산에 새롭게 취항했다. 2005년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대한항공과 코드 공유 협정을 맺고 미국과 아시아 간 화물기 서비스를 확대했으며 로스앤젤레스와 멤피스 허브 간 공유를 시작했다. 코드 공유는 특정 노선에 운항 중인 다른 항공사 좌석을 빌려 판매하는 방식이다. 2006년에는 코드 공유를 확대해 서울과 시애틀, 시카고, 오사카 구간과 도쿄와 로스앤젤레스, 부산과 오사카 구간에도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항공의 히스토리 월에서 우리나라 항공 발전과 외국 항공사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1969년 출범한 대한항공, 1988년 설립된 아시아나항공과 발전 과정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국적기만 선호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많은 승객이 외국 항공기를 탄다. 외국 항공사들의 한국적 서비스가 주된 이유다. 60년을 대한민국과 함께해 온 노스웨스트 항공은 여러 역사적 사건과 함께 국민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짐 뮐러 노스웨스트 항공 아시아 담당 전무는 이날 기념 행사에서 “한국은 노스웨스트 항공의 아시아 운항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노스웨스트 항공이 한국 항공 역사의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고객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도움에 감사한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노스웨스트 항공은 서울과 부산을 매일 운항하는 유일한 미국 항공사로 디트로이트, 미니애폴리스, 멤피스, 도쿄, 암스테르담을 거점으로 전 세계 1400개 도시를 매일 운항한다. 1927년 여객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세계 최고 항공사로 손꼽히며 직원 수는 3만 1000명, 운항 비행기 수는 500여 대에 달한다. 169여 국가 900여 개 도시의 여행업체와 제휴를 맺었고 대한항공, 아에로플로트, 아에로멕시코, 에어 프랑스, 알리탈리아, 콘티넨탈 항공, 체코 항공, 델타 항공 등과 스카이팀(항공 동맹체)을 이루고 있다.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J-Hot] 수도권 주택업체들 '집 짓기' 손 놓았다[J-Hot] "노무현·김정일·푸틴, 공동 노벨평화상 노린다"[J-Hot] "거지같은 영화에…" '디워' 美서 난도질 당해[J-Hot] 꿀밤·주먹질·각목까지…매 맞는 직장인들 '충격'[J-Hot] 열일곱 박근혜의 첫 외국행 발이 된 '붉은 꼬리'[J-Hot] 노대통령, 李 용적률 완화 주장에 "이 무슨 망발"[J-Hot] "신지애가 누구야?" 美 캐디들 사이에 소문 쫙[J-Hot] 이금희 "조용필과 스캔들? 내 취향은 꽃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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