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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24시 … 그녀는 25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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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변호사의 하루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바쁘다. 사무실 책상엔 항상 검토해야 할 자료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지난달 31일 최 변호사가 의뢰인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6시. 김&장 법률사무소 최지현(30·여) 변호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전 1시에 퇴근해 국내 대기업 A사의 해외투자건에 대한 실사보고서를 쓰다 잠든 지 3시간밖에 안 됐다. 발신자는 투자건과 관련해 미국 현지에 나가 있는 동료였다. 실사보고서에 긴급히 추가할 내용이 생겼다는 전화다. 최 변호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보고서 수정을 시작하자마자 또 휴대전화가 걸려 왔다. 국내 기업 B사의 공장 주변 환경오염에 대한 의견서와 관련된 연락이었다. 전화를 건 선배 변호사는 “의뢰 기업이 독촉하고 있다”며 “얼마나 썼느냐”고 물었다. 사실 최 변호사는 A사의 실사보고서에 집중하느라 B사 의견서는 큰 진척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최 변호사는 “오늘 중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 네 살 된 아들 태준이가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얼굴을 보기 힘든 엄마지만 본 척 만 척이다. 등을 돌리고 앉은 태준이에게 다가가 유치원 얘기를 들어주고 꼭 끌어 안는다. 모시고 사는 시부모에게 태준이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 교통 체증으로 서울 강남의 집에서 광화문 인근 회사까지 50여 분이나 걸렸다.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진척이 더딘 B사 의견서를 집어 들었다. 30분이나 검토했을까. A사의 보고서를 취합하는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보고서를 즉시 넘겨야 하니 수정할 게 있으면 바로 제출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후배 변호사에게 SOS를 쳤다. 수정할 내용을 얘기해 준 다음 마무리를 부탁했다.

  점심은 의뢰인과 일 얘기를 하며 도시락으로 때웠다. 오후 들어 최 변호사는 다시 B사 의견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방 소재 B사 공장의 주변 토양·하천이 오염된 것과 관련된 법률적 검토를 하는 일이었다. 일견 B사가 손해배상을 하고 끝내면 될 문제인 것 같지만 실상은 간단치 않았다. 공장 주변이 오래 전부터 오염됐는지, 인근 다른 공장에서 오염물질이 나온 것인지, B사는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인지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환경법에 대한 변변한 국내 저서가 없는 상태에서 최 변호사는 법령 분석과 외국 판례를 종합해 오후 내내 의견서 작성에 매달렸다.

 오후 5시 또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 부패방지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다. 의견서는 물론 영어로 써야 한다. 당장 1시간 뒤 회의가 소집됐다. 최 변호사와 미국 변호사, 선배 변호사 한 명이 모였다. 부패방지법이 엄격한 서구의 기업들은 종종 이 같은 포괄적인 의뢰를 해온다. 의견서를 작성하다 보니 바깥이 어둑어둑해졌다. 손에 들린 건 저녁 대신 배달시켜 이미 식어버린 피자뿐이다.

 다시 오전 1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자동차 스테레오의 볼륨을 한껏 높인다. 이미 꿈나라로 가버린 태준이의 뺨에 뽀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로펌을 선택한 이유는=최 변호사는 199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제4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최 변호사는 결혼도 5년차, 입사도 5년차다. 사법연수원을 마치자마자 정보통신부 사무관인 임국현씨와 결혼했다. 같은 해 연수원 성적이 최상위 그룹에 들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김&장 법률사무소에 입사했다.

로펌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직종 중 하나다. 로펌에 따라 수입은 천차만별이지만 초봉이 적게는 연 6000만원, 많게는 1억2000만원 정도 된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장의 초봉은 평균 연 1억원(근로소득세 납부 전 기준)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을 많이 받는 대신 그만큼 일을 많이 한다. 경쟁도 치열하다. 소속 변호사인 ‘어소(associate)’로 시작한 변호사 중 구성원 변호사인 ‘파트너(partner)’가 되는 사람은 선택된 소수다.

그는 “남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부러워하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게 항상 걱정”이라며 “가끔씩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주말에만 보게 되는 남편은 “너무 힘들면 업무 강도가 덜한 곳으로 옮기든가 공부를 더하라”고 말할 정도다.

최 변호사는 법원·검찰을 택하지 않고 로펌 변호사로 취업한 이유에 대해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인 법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의 전문분야는 환경법과 노동법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환경·노동법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연구도 많이 부족하다”며 “앞으로 전문성을 키워 정부 부처의 정책 자문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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