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한 방’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소한의 정치적 금도(襟度)조차 보이지 못한 데 대한 지적은 내부에서 나왔다. 그것도 “옳은 말을 참 싸가지 없이 한다”는 동료 의원들의 비난을 받는 유시민 의원에 의해서 말이다. 그는 “우리가 참 각박하다, 축하 인사도 못하나”라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경선 승복 선언에 참으로 기뻤다”고 했다. ‘싸가지 없다’던 정치인이 그중 ‘싸가지 있어 보이는’ 이 현실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놈의 ‘한 방’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5년 전, 10년 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아들 병역 비리 의혹’ 한 방으로 주저앉힌 경험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도 도덕성에 흠결이 많을 것 같은 이명박 후보를 한 방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은 것이다.

‘한 방의 추억’은 그야말로 추억일 뿐이다. 거기에 미련을 두고 집착하다가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어떤 선거라도 그 선거의 결과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경선 결과도 마찬가지다. 대의원·당원과 적극적 국민투표인단의 선거에서 진 이명박 후보가 여론조사 덕분에 승리했다. 이 후보는 영남과 강원 등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강한 이른바 동부권 벨트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범여권 지지세가 강한 서울과 호남에서 이겨 승리했다. 도곡동 땅, BBK, 허위 증언 등의 의혹이 쏟아졌는 데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호남이나 진보층이 보다 상대하기 쉬운 후보로 ‘역(逆)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국민이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건 지나치게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며 억지 해석이다. “과거의 잘못은 있겠지만,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면 봐주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 창출로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면 ‘도덕성의 잣대’를 엄격히 갖다 대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이 전하고자 하는 이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범여권은 실패한다.

‘한 방’의 기대는 또 있다. 후보단일화를 통한 대역전극이 그것이다. 1997년의 ‘DJP 연합’,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의 짜릿한 추억 때문이다. 극적인 연출로 막판에 뒤집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 또한 착각이다. 우리 국민은 학습효과가 뛰어나다. 정면승부로는 역부족임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한 방이면 보낼 수 있다”거나 “후보단일화 한 방이면 끝난다”는 ‘한 방의 추억’은 잊어버리는 게 좋다. 후보 검증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다. 검증은 ‘여러 전략 중 하나(one of them)’일 뿐 ‘유일한 해결책(only one)’인 것처럼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민주화니 개혁이니 해봐도 소용없다. 국민은 “그래, 알겠는데, 그래서?”라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요구하고 있다.

97년엔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민주화의 완성’이, 2002년엔 ‘낡은 정치 청산’ ‘변화’가 시대정신이었다. 지금은 2007년이다. 대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시대정신이 달라졌다. 이제 범여권은 국민이 원하는 바에 대해 해답을 내놓고 표를 달라고 해야 한다. 대선의 식탁에 ‘반(反)한나라당’이란 초라한 메뉴만을 국민에게 내놓으려 하는가.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