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황창규 같은 천재 앞으론 귀국하지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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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 1위로 이끈 황창규(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진대제(전 정보통신부 장관) 같은 천재들이 앞으로는 더 이상 국내로 들어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국양(54.물리학.사진) 서울대 연구처장이 23일 이공계 인재들이 국내 대학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털어놓았다. 국 처장은 나노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지난해 말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한 과학 분야 '국가 석학' 10인 중 한 명이다. 본지는 최근 서울대 공대가 신임 교수 공채에 실패한 사태를 계기로 23일 국 처장과 인터뷰, 국내 이공계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을 들었다. 다음은 국 처장과의 일문일답.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행을 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학이 원하는 인재는 대부분 30대 중반이다. 미국 명문대들은 기반을 다져야 할 '사회 진입(entry level) 세대'를 위해 많은 지원을 해준다."

-어떤 지원을 하는가.

"함께 연구하던 친구가 뛰어난 성과를 내자 프린스턴대가 스카우트에 나섰다. 주택 구입 자금의 90%에 해당하는 모기지론을 1% 저리로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일리노이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부인에게는 프린스턴대 강사 자리를 제안했다."

-1991년 국 처장은 10년 동안 몸 담았던 AT&T 벨연구소를 나와 서울대로 오지 않았나.

"당시 열 살이던 아들 녀석이 '왜 가야 하죠'라고 묻더라. 그래서 '여기선 죽었다 깨어나도 네가 대통령을 못한다. 한국에 가면 할 수 있다'고 타일렀다. 다 알고 온 것이지만, 연봉이 9만8000달러에서 1900만원대로 깎이더라. 연구비는 30만~40만 달러에서 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때만 해도 '선진 조국 건설' 같은 사명감이 있었다. 나(71학번)와 1년 터울인 진대제(70학번).황창규(72학번)도 마찬가지다. 당시 삼성에서 큰돈 줘서 온 거 아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주택 마련, 자녀 교육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탁월한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허락하지 않는 문화, 시장과 격리된 대학도 큰 문제다."

-자녀 교육은 뭐가 잘못됐나.

"아주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가 단지 '기회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지난 5년 동안 이런 생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기초과학은 재능이 중요하다. 인재의 수월성을 공교육이 소화하지 못하니, 사교육에 막대한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있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서울대가 시장과 격리됐다는 건 무슨 뜻인가.

"신임 교수 10명을 뽑았는데, 모두 5000만원만 주고 (능력이 뛰어난) 한 명만 1억원을 준다는 것을 서울대에선 상상도 못한다. 더 큰 문제는 '고립'이다. 미국.유럽에서 일한다는 건 연구자가 시장에 완전히 개방돼 언제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능력에 따라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그것은 연구자의 경력으로 연결된다."

-국내로 부르고 싶은 후배가 있나.

"뛰어난 후배가 있어 오라고 했더니 '노(NO)'하더라. 요즘 선후배들 만나면 '우리는 다 속았잖아. (미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 환경이 부러워'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91년에 내가 한국에 온다고 하니, 장인이 반대했다. 요즘 같으면 장인뿐만 아니라 부모.아내.자식까지 모두 반대했을 것이다."

강인식 기자

◆국양.진대제.황창규=국 교수는 탄소나노튜브와 관련된 독보적인 연구로 130여 편의 논문을 네이처 등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피인용 횟수가 1800회를 넘는다. 원자까지 관찰할 수 있는 주사형 검침현미경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진 전 장관과 황 사장은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다. 진 전 장관은 IBM 연구원에서 85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뒤 반도체 개발을 주도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있던 황 사장은 89년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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