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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시시각각

“인구 증가, 꿈의 기록에 도전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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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전남 강진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다산(정약용) 초당, 백련사, 무위사, 청자박물관, 병영성, 영랑(김윤식 시인) 생가…. 인구 4만2000여 명의 작은 고장인데도 1박2일로는 벅찰 만큼 곳곳이 문화유산이요 볼거리였다. 과연 ‘남도 답사 1번지’라고 자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이틀째. 버스를 타고 병영면 지방도로를 지날 때였다. 면사무소 건물 현관에 내걸린 대형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인구 감소 해결, 그 꿈의 기록에 도전합니다’. 말로만 들었지 오래 도시에서 살아 온 필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농어촌 지역 최대 현안이자 고민이 전라도말로 ‘짠하게’ 전해져 왔다. 얼마나 절박하면 ‘꿈의 기록’이란 말까지 동원했을까.

알고 보니 ‘인구 감소 저지’는 강진 군정(郡政)의 핵심 과제였다. 주민이 아이를 낳으면 1년간 첫 아이는 매달 10만원, 둘째는 15만원, 셋째는 35만원씩 지원한다. 특히 셋째 아이는 두 돌 때 100만원 하는 식으로 3년간 총 75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전남도에서도 별도로 한 아이당 30만원의 탄생 축하금을 준다. 그 덕분인지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2006년 출생통계’에서 강진군의 가임여성 1명당 합계출산율은 1.65명으로 전국 232개 기초 자치단체 중 4위를 기록했다.

높은 출생률이 순조롭게 인구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라서 고향을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니 교육이나 경제 여건을 좋게 만들어 있는 사람 붙잡고 외지 사람은 불러들여야 한다. 경북 청송군이 1300명가량의 청송교도소 직원과 가족을 모셔오기 위해 아파트를 지어주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경북 영천시는 국제결혼을 하는 총각들에게 결혼 비용을 대 준다. 전북 순창군은 2003년 ‘옥천 인재숙’이라는 공립학원을 지어 중3~고3 학생 200명을 공짜로 먹이고 재우고 과외도 시켜주고 있다.

통계청의 올해 2분기 인구동향 발표에서 기초 자치단체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전입인구를 자랑한 전북 진안군은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공무원 거주지 이전제다. 쉽게 말해 군 공무원은 외지에 살지 말고 진안군에 들어오라는 명령이다.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은 공무원은 승진인사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경남 함양군은 군내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6급 이상 공무원 봉급의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시장사랑 상품권’ 제도를 시행 중이다.

사람 못지않게 외지의 돈도 농어촌 지자체의 공략 대상이다. 괜찮은 지역 축제·전시회를 열어 관광객과 돈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나비로 재미 본 전남 함평군은 이번에는 뱀 생태공원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경북 예천군도 질세라 곤충을 들고 나왔다. 그제 막을 내린 제1회 예천 곤충엑스포에는 무려 61만2000명이 다녀갔다. 고려청자 주산지이던 강진군은 매년 청자문화제(올해는 9월 8~16일)를 연다. 청양고추의 원산지로 경북 청송·영양설(說), 청송·영월설 등 논란이 많지만 충남 청양군은 8년 전부터 ‘청양고추 축제’를 열어 이미지를 선점함으로써 충청도가 결코 느리지 않다는 것을 과시했다.

국토에 인구가 골고루 사는 게 이상적이라지만 조선시대처럼 사민(徙民)정책을 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앙정부 지원도 한계가 있으니 농어촌이 나서서 매력 있는 고장으로 가꾸는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지자체도 살고 싶은 고장과 그렇지 못한 고장으로 점차 나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규모 인구이동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 대도시 기성세대 중에는 아직 지방 출신이 많지만 아들·딸들은 대도시가 바로 고향이다. 지방 인구 증가에 별 보탬이 될 수 없는 처지라면 자식들을 틈날 때마다 부모의 고향으로 안내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그들이 훗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스산한 빌딩숲 아닌 부모의 고향으로 훌쩍 내려가 오솔길을 걸으며 애환을 달랜다면 그 자체로 보람 아닐까.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