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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유족들에 245억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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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의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245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시국사건 관련 국가 배상 중 최고액이다.

특히 유족들은 사형이 집행돼 국가의 배상 책임이 생긴 이후 32년간 배상금을 받지 못한 데 따른 이자로 원금의 1.6배에 달하는 돈을 추가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배상 시점인 75년부터 현재까지 32년간 연 5%의 단리 이자가 계산되기 때문이다. 이자는 원금의 160%(5%×32년)로 392억원에 달해 유족들이 받게 될 돈은 637억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부장판사 권택수)는 21일 고 우홍선씨 유족 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들에게 희생자 한 사람당 27억~33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권력을 이용해 이들을 사회 불순세력으로 몰아 소중한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희생자 8명과 그 유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은 30여 년간 사회적 냉대, 신분상 불이익과 이에 따른 경제적 궁핍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본인에게는 각 10억원, 처나 부모에게는 6억원, 자녀들에게는 각 4억원씩 위자료를 정했다. 이에 따라 우홍선씨 등 희생자 7명의 아내 및 자녀들은 가족별로 27억~33억원씩을 받게 됐다.

고 여정남씨의 경우 당시 결혼을 하지 않아 누나와 형제, 조카가 총 30억원을 받게 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국가 권력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는 점 ▶피해자들의 사망 당시 나이, 직업, 가족관계, 가정환경 ▶유족들이 고통을 받은 기간과 정도를 종합해 배상액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진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의문사한 최종길 교수에 대한 손해배상액(본인 5억원, 유족 4억원)이 시국 관련 사건 국가 배상액 중 가장 많았다. 안기부가 간첩으로 조작한 '수지 김' 사건의 유족은 7억원을 배상받았다.

재판부는 또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과거 판결이 오판이었음을 인정받기 전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정당당하게 불법행위 자체가 있었는지를 다투는 것은 몰라도 구차하게 소멸시효를 주장해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당한 8명은 올해 1월 재심을 통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을 근거로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3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사법적 명예회복"이라며 환영했다.

박성우 기자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년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며 관련자 23명을 구속했다. 인혁당 재건위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반독재 학생 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를 씌운 것. 인혁당 관련자 중 도예종씨 등 8명은 75년 4월 대법원의 사형 확정판결이 난 지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사법살인'이란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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