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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26. 첫 스키부대 멤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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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 일병, 대대본부에서 긴급 호출이다.”

  1958년 군 복무 중이었을 때다. 영내에서 한참 진지 구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선임병이 달려와 전했다. 경험상 주말에 누가 찾으면 반가운 사람이 면회 올 때가 많았지만, 평일에 본부에서 부른다면 안 좋은 경우일 가능성이 컸다. 군에 입대해 전방인 강원도 오성산 근처에서 근무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재학 중에 입대한 대학생은 무조건 전방으로 보냈다. 나 역시 대학 3학년 때 입대했다.

  그날의 호출은 예상과는 달리 반가운 일이었다. 학창 시절 대관령 스키장에서 만난 유희성 대위가 나를 찾고 있었다. 유 대위와 나는 대관령에서 한 달간 머물며 함께 스키를 탔었다. 낮에는 서로의 스키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형과 아우처럼 세상사나 장래의 꿈 등을 얘기했다. 그랬던 유 대위가 스키부대를 만들려고 전 군에서 스키를 탈 줄 아는 군인을 찾아내고 있었다. 유 대위가 어디에서 나의 입대 소식을 듣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찾은 것이었다.

  입대 이후 그렇게 좋아하는 스키장의 근처에도 못 가 몸이 근질근질하던 나는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국군 스키부대는 63명의 멤버로 1958년 창설됐다. 부대장은 유 대위가, 소대장은 일본에서 스키를 탄 적이 있는 김춘석 중위가 맡았다. 나는 스키부대 교관으로 스키를 탈 줄 모르는 대원들에게 기본 자세 등을 가르쳤다. 스키부대는 강원도 새봉령·진부령 등에서 훈련했다. 지금의 알프스스키장도 당시 스키부대 훈련장이었다. 물론 그때 리프트는 없었다. 완만한 경사지나 구릉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스키를 둘러메고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최초의 스키부대는 62년 군 사정으로 해체됐다.

스키는 스웨덴 연수·유학과 미국 대학교수 시절 등을 포함, 지금까지 내가 즐겨온 유일무이한 취미다. 칠순인 요즘도 겨울에 강원도 스키장을 한두 번씩 찾는다. 스웨덴 연수를 갔을 때 맨 처음 산 것도 스키 장비였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월 180달러씩 주는 체류비로 장만한 것이다. 브랜드가 ‘캐슬’인 가장 좋은 스키 장비였다. 이걸 들고 스웨덴 근처 스키장은 모두 다녔다. 내가 스키를 잘 타고 좋아하니까 스웨덴인 동료가 “너는 한국에서 왕족이었는가 보다”라고 농담까지 했다. 후진국에서 온 사람이 스키를 그렇게 잘 탈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노르웨이 오슬로, 오스트리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스키 원정을 갔다. 그곳 스키장들은 스웨덴보다 슬로프가 길고 좋았다. 무엇보다 해외 원정인데도 불구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똑같은 비용으로 오스트리아에서는 스키를 1주일 정도 탈 수 있는데 비해 스웨덴에선 기껏 4~5일 놀 수 있었다. 내가 10년 동안 유학했던 스웨덴과 주변 나라들은 스키 천국이었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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