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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테러·미디어戰, 제2의 알카에다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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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06면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태동·집권·축출·부활…급반전의 탈레반 13년사

탈레반 집권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국기 중앙에는 아랍어로 된 두 개의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모하메드는 그의 선지자이다.’ 이른바 ‘샤하다’(al Shahada·증언)로 이슬람의 신앙고백이다. 이슬람 전통주의를 국시로 하는 탈레반 집권 당시의 아프간 노선을 상징한다. 이슬람 유일신 사상을 신봉하는 탈레반은 2001년 미국에 의해 축출됐지만 최근 다시 세를 불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78년 초 아프간의 집권 인민민주당은 친소련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반소 시위가 빈발했다. 당시의 아민 정권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소련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소련은 79년 성탄절 아프간을 침공한다. 그해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이슬람혁명과 더불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미국과 서방 진영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소련 치하의 중앙아시아 국가와 아프간·이란을 잇는 반미·친소 진영이 공고화하면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은 아프간에서 소련을 격퇴하고, 이란의 시아파 호메이니 정권을 견제하기 위한 ‘3각 연대’를 구축했다. 이슬람권 전역에서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을 대거 모집해 훈련시켜 아프간에서의 대소련 투쟁의 전위로 삼았다.

유물론을 신봉하는 소련과 싸우기 위해 강력한 유일신 사상을 가진 이슬람 전사들을 내세우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시아파 이란의 이슬람혁명 수출 노선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의 입장이 반영됐다.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을 아프간 투쟁에 동참시켜 사우디 동부 알하사(al Hassa·다란과 담맘 등 사우디 유전 및 정유시설 밀집지역)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자국 내 시아파가 동요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경합관계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터에 아프간이 혼란 국면에 빠지자 지역에서의 주도권 확보와 인도 견제의 일환으로 3각 연대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미국과 사우디는 부담이 큰 직접 개입을 피하고 파키스탄을 앞세워 우회적으로 소련을 견제했다. 미국의 정보력과 작전능력, 사우디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파키스탄의 지아 울하크 대통령은 군 통합정보국(ISI)을 통해 아프간 내 대소련 무장투쟁 세력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 북부지역, 파슈툰족들이 집단거주하는 와지르스탄 등지에서 아프간 파슈툰족들과의 관계는 두터워졌다.

3각 연대의 주도로 조직된 무자헤딘(무장 게릴라조직) 전사들은 마침내 아프간에서 소련을 축출했고 1992년 4월 친소 나지불라 정권을 붕괴시켰다. 무자헤딘은 소련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해 이슬람권 여러 지역에서 자원해 아프간에 들어간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무자헤딘 이슬람 전사들은 소련 축출 이후 지중해권, 그중에서도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의 주요 조직원들도 당시 무자헤딘 출신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체첸 이슬람 공화국 독립 투쟁에 가담했고 반(反)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단체인 하마스 전투 조직원으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원으로, 알제리 이슬람구국전선 핵심 인사 등으로 변모했다. 현재 이슬람권에서 발생하는 테러리즘의 연원이 상당 부분 아프간의 대소련 저항전선에서 비롯된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았던 이들이 이제 최대 위협 세력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친소 나지불라 정권 붕괴와 더불어 정권을 잡은 무자헤딘 정권은 7개의 정파로 분열돼 끝없는 혼란상을 보였다.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아프간 북부와 중부지역에서 군벌들이 들고 일어나 권력 분점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남부 칸다하르 역시 군벌들의 발호가 위험 수준이었고, 자칫 국가 붕괴가 우려됐다. 이 상황에서 탈레반은 집권에 성공했다. 탈레반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세력이 아니다. 외세의 침입과 국내의 정정 혼란에 지친 아프간 국민들에게 이슬람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탈레반의 통치 수사학은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었다.
 
탈레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결성된 지 십수 년에 불과한 조직이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부침을 겪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94년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간 남부지역에 광범위하게 거주하는 파슈툰족 이슬람 학생들이 정치조직화하기 시작했다. 퀘타와 페샤와르 등 파키스탄 북부지역에 산재한 마드라사(Madrassa·이슬람 학교)에서 코란(이슬람 경전)과 하디스(모하메드의 언행)를 공부하던 아프간 출신 파슈툰 학생(Talib)들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타지크인 군벌들이 득세하는 무자헤딘 정권이 아프간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강경파 이슬람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에 의해 조직된 탈레반은 내전 상태의 아프간에서 본격적인 권력투쟁에 뛰어들었다. 94년 11월 3일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배후 지원을 받아 칸다하르를 함락시켰다. 95년 초에는 아프간 남부 대부분을 장악했고, 96년 9월 26일 카불을 점령하면서 실질적인 집권세력이 됐다.

조국의 위기를 이슬람의 교리로 극복하겠다고 선언한 탈레반은 조국의 ‘정화(purification)’를 국시로 내걸었다. 정화를 위한 통치 노선은 극단적인 이슬람 전통주의에 입각했다. 코란과 하디스에 근거한 이슬람 성법을 해석하고 이를 삶의 원칙으로 규정해주는 4대 수니 법학파(Madhab·한발리파, 하나피파, 샤피파, 말리키파로 대별되며 학파에 따라 코란을 다소 달리 해석함)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한발리 학파를 추종했다.

한발리 학파는 일체의 근대 과학기술의 문물을 ‘하람’(Haram·금기)으로 정해 주민들의 삶을 통제했다. TV 시청과 인터넷 접속이 금지됐고, 여성의 사회활동은 극도로 제한됐다. 서구적 가치가 반영된 일체의 문화적 산물도 반입이 금지됐다. 나아가 시아파 창시자 알리와 후세인을 추모하는 카르발라의 행사 등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시아파 성지 파괴를 자행했다. 무엇보다 2001년 우상숭배의 근원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세계 최대 마애불인 바미얀 석불을 폭격·파괴해 전 세계적 공분을 샀다. 21세기의 지구촌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태의 연속이었다. 과거 무자헤딘 군벌 간 내전 상태를 안정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던 아프간 국민들은 억압과 인권침해가 지속되면서 탈레반 정권에 염증을 갖기 시작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탈레반의 운명은 급반전했다. 미국은 당시 아프간이 보호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고, 탈레반은 이를 거절했다. 같은 해 10월 7일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과 아프간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무력화하기 위한 아프간 전쟁을 개시했다. 대테러 전쟁의 첫 장이 열린 것이다. 결국 12월 7일 탈레반 궤멸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고, 12월 22일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출범하면서 아프간 역사상 처음으로 친서방 민주주의가 출범했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카르자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국제사회가 본 협약(Bonn Agreement)을 통해 약속한 삶의 질은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아프간 정정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북부에서는 타지크, 몽골계 하자라, 우즈베크인들이 주축이 된 ‘연합민족전선(United National Front)’이 결성돼 카르자이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동시에 2001년 패퇴 후 아프간 남부 산악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해 오던 탈레반도 남부 4개 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정권 재창출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은 과거 집권 당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제안보지원군(ISAF)에 의해 피살되기 전까지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핵심 측근이자 최고지휘관으로 활동했던 물라 다둘라의 전술은 알카에다와 유사했다. 2004년 이후 탈레반 강경파 전사들은 자살테러, 급조폭발물 장치, 미디어를 통한 선전선동, 지휘부의 기동성 확보, 투쟁대원들의 빈번한 교체 등 새 면모를 보였다. 과거 투쟁전략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 변화된 양상을 반영해 ‘네오 탈레반’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지역질서에 큰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과 다국적군은 대테러전에서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는 전술적인 승리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새 아프간 정정 불안과 이라크·레바논·팔레스타인 등 중동 이슬람권 전역에서 혼란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리스트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해 등장하는 네오 탈레반의 득세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 탈레반의 부활은 국제사회의 대테러 전선에 드리워진 어두운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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