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과 대령숙수

중앙선데이

입력 2007.08.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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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27면

“올가을에 요리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이 있네요. ‘대장금’ 이후 요리와 관련된 드라마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 같아요.”
“‘대장금’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잖아. 그러한 인기는 재미있는 극적 구성과 배우의 연기력에 기인하겠지만, 일정 정도는 음식이라는 매개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때때로 고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을 보면 저 시대에도 국밥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허구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죠. 사실 ‘대장금’을 본 시청자들은 조선왕조시대 궁중에서 음식 장만을 상궁과 나인들이 도맡았다고 알고 있잖아요.”
“아니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은 것 같은데.”
“조선시대 궁중 음식을 맡은 기관은 이조(吏曹)에 속한 사옹원(司饔院)이었죠. 여기의 총 책임자는 정3품의 제거(提擧)였어요. 그 밑에 재부·선부·조부·임부·팽부들이 각 수라간의 조리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품계를 지닌 조리기술자로 중인계급의 남자였죠. 종6품인 재부(宰夫)는 대전 수라간과 중궁전 수라간을 담당했으니 왕실 주방장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 밑에는 주방의 온갖 일을 맡아서 하는 차비(差備)들이 있었는데 노비들이었지요. 고기를 다루는 별사옹, 생선을 굽는 적색, 두부를 만드는 포장, 술을 빚는 주색, 떡을 만드는 병공 등등으로 철저히 분업화되어 각자 소임만 담당했는데 이 차비들도 거의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요.”
“그렇다면 상궁하고 나인들은 어떤 역할을 했지?”
“제일 중요한 게 수라간에서 만든 음식으로 상을 차려 중궁전에 진지를 올리고 드시는 것을 돕는 것이었죠. 대전에서는 환관 가운데 임금 곁에서 진지를 올리는 진지사리(進止篩里)가 이 일을 맡았다고 해요. 왕과 왕비가 함께 드실 때에는 양쪽이 서로 협력했겠지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고증하지 못한 드라마 때문이겠네.”
“잘 알다시피 대한제국이 무너지면서 궁중 요리사들은 ‘명월관’ 같은 요릿집으로 자리를 옮겼잖아요. 일제하에 이왕가(李王家)로 전락한 왕실은 체계적인 왕실 주방을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상궁과 나인들이 왕가의 음식을 장만하게 되었는데, 후에 이들이 조선시대 오백 년 동안 궁중음식을 도맡아 해온 것처럼 잘못 알려지게 되었죠.”
“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요리사를 대령숙수(待令熟手)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사전을 찾아보면 ‘조선시대에 궁중의 잔치 때 음식을 만드는 남자 요리사’라고 돼 있는데, 직책상으로는 그러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요. 흔히 요리사들을 숙수라고 불렀고, ‘대령’이라는 말을 ‘왕명을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보면 궁중 요리사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실치 않죠. 확실한 것은 잔치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남자 요리사들이 궁중 음식을 장만했다는 사실이죠.”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제 사극에서 나오는 음식 장면도 유심히 쳐다보겠는데.”

김태경,정한진의음식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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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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