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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22. 열등생의 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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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대 공대 시절 필자의 성적표는 C와 D가 가득했다.

무엇인가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게 내 성격이다. 70세에 이른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탐구 열정도 연구 재미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런 성격은 청소년과 대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서울사대부중(6년제 중·고교 통합 과정)과 대학 시절에는 열등생이었다. 중·고교 땐 전쟁 통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였지만, 서울대 공대 시절에는 취미 생활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알게 된 등산과 스키를 즐기느라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과 암벽엔 거의 다 올랐고, 슬로프조차 없던 시절에 스키를 타러 강원도까지 갔다. 그때 닦은 실력으로 국군 스키부대 창설 멤버가 됐으며 스키 강사까지 했다. 학과 동기들이 날더러 공부 못한다고 하면 나는 그걸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취미 생활에 온 정력을 쏟았다. 열등생의 핑계 거리로는 그만한 게 없었다.

 놀 던 것으로 치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다.

 등산과의 인연은 고3 때 서울대 공대생을 도봉산에서 만나면서부터다. 1954년 친구 서너 명과 도봉산으로 놀러 갔다. 당시에는 하루 종일 도봉산을 다녀도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다.

도봉산 천축사에서 싸 가지고 간 빵과 음료수를 먹고 있는데 우리 형 뻘 되는 사람들이 어깨에 밧줄을, 허리춤에는 쇠고리 같은 것을 주렁주렁 달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져 보였다. 1000년이 넘은 고찰인 천축사도 멋있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만나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중 한 ‘아저씨’한테 물었다. “산에 올라가는 거지요?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대 공대 2학년 학생들이었다. 그게 대학 시절 내내 나를 헤어나지 못하게 한 등산과의 첫 인연이다. 동행한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그 형들과 함께 남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다가갔다. 더구나 서울대 공대에 합격해 놓은 나는 대학에 가면 선배가 되는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들 역시 나를 후배 대하듯 살갑게 맞아줬다.

 그날 밤 천축사에서 잤다. 그 형들은 촛불 밑에서 대학 생활과 등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다음날 도봉산 만장봉에 올라갔다. 만장봉이 어떤 곳인가. 도봉산 선인봉과 자운봉·신선봉 사이에 솟아 있는 암벽으로 이뤄진 봉우리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짜릿한 곳을 형들과 함께 올랐다. 첫 산행이 도봉산의 절경 중 하나인 만장봉 암벽 등반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날 이후 나는 열병을 앓듯 종종 등산하는 꿈을 꾸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꼭 그 형들처럼 등산을 해야지’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어깨에 밧줄을 메고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도봉산에서 고3 때 만났던 형들을 찾아갔으며, 등산반에 가입했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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