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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김보은을 살린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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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행동은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사랑하는 김보은을 살린 것"

지난 92년 오늘(1월19일). 의붓딸과 남자친구가 공모해 계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시민들은 존속살인이라는 사실보다 범행일체를 자백한 의붓딸 김보은양과 애인 김진관군을 통해 밝혀진 내용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살해된 계부는 9세짜리 코흘리개였던 보은양과 어머니를 12년동안 번갈아가며 강간하며 성의 노리개로 농락해왔으며, 게다가 식칼과 쥐약을 항상 준비해두고 이런 사실을 알릴 경우 온가족을 몰살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마저도 짓밟힌 보은양과 불의앞에서 모두가 침묵하는 현실에 울부짓던 진관군은 최후의 반격으로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보은이가 다른 남자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알고도…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죽고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구속된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더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두사람의 진술은 추악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을 부끄럽게 했다. 사적 구제를 금지하는 법의 '원칙론'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정상론' 사이에서 고심하던 재판부는 김양이 사건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점을 착안, 존속살인범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는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다.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은 김보은씨는 93년 3월 형선고효력 상실 특별사면됐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김진관군은 특별감형 처분을 받았다.

한편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91년 20여년전 자신을 성폭행한 옆집 아저씨를 살해한 '김부남 사건'과 함께 그동안 개인적 사고로 치부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던 성폭력 문제를 사회문제의 차원으로 공론화시켜 94년 성폭력범죄처벌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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