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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학사이] 필립 딕의 '도매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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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생물체에게 잠과 먹을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를 놓고 실제로 실험이 있었다. 쥐에게 충분한 먹이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잠을 못 자게 하는 경우와 잠은 충분히 재웠지만 먹이를 전혀 주지 않는 경우를 나누고 각각의 쥐의 행동을 관찰했다. 결과는 잠의 승리였다. 잠을 재우지 않은 쥐는 굶긴 쥐보다 앞서, 명확한 이유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듯 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본질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미흡하다. 잠을 자는 동안 체온이 내려가고(우리 뇌에는 슬립-온 뉴런(sleep-on neuron)이 있는데, 이들은 수면 중에 가장 활성화되며, 사람에게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 슬립-온 뉴런은 체온이 올라가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따뜻해지면 졸리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체내 노폐물이 제거되며 피로가 사라지고, 그래서 노화가 늦춰지고, 등등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고등동물의 경우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 잠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수면의 20% 정도를 구성하는 렘(REM) 수면이 기억의 저장과 보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보고가 있다. 렘 수면은 우리가 흔히 꿈을 꿀 때의 수면으로 유명한데, 이 꿈이란 게 기억에 대한 재편성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많은 정보를 접한다. 하지만 이 정보를 모두 기억하는 것은 무리이기에 사소한 것은 지워버리고 중요한 것은 장기적 활성화(long-term potentiation.LTP)를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한다. 실제로 실험을 통해 렘 수면을 박탈하면 잠을 아무리 많이 재워도 LTP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점에서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의 매클레인의 심정을 떠올리는 건 어떨까? 매클레인은 아침마다 화성을 여행하는 꿈에서 깨어나곤 한다. 갈수록 깊어지는 화성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기억을 조작해서 진짜 화성에 여행을 다녀온 기억을 심어준다는 리콜 주식회사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해 그의 머리 속에 화성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려는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뀐다. 매클레인은 이미 화성에 갔었고, 그 기억이 의식 속에서는 지워진 채 가끔 꿈 속에서만 나타났던 것이다.

낯선 제목의 이 이야기는 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이다. SF의 거장 필립 K 딕의 소설은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 덕분에 영화로 더 유명하다. '토탈리콜''마이너리티 리포트''블레이드 러너''페이첵' 이 그렇다.

책으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페이첵' 세 권이 나와 있다. 정통 SF 느낌이 물씬 살아날 뿐 아니라, 영화와 원작이 많이 달라 비교하는 맛도 적잖다. 일석이조의 재미를 주는 것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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