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때그사람>28.78년 탈랜트출신 1호 국회의원 양성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연예인을 「무식한 딴따라」로 보는 세태아래 밤을 지새우는 고뇌를 많이 겪었습니다.』 78년12월 1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서울도봉구에 무소속으로 출마,국내 최초로 탤런트출신 국회의원이 됐던 洪性宇씨(52).
노인잔치.불우이웃돕기를 20여년이나 계속해 화제를 낳았고 공화당.민정당을 거치면서 11, 12대에 연속 당선돼 3선의원으로 활약하다 88년초 돌연『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뒤 전격 재혼해 또한차례 화제를 뿌렸었다.
태권도.유도 등으로 다져진 그는 정계 은퇴후 한때 음주상태에서 주먹을 휘두른 죄로 불구속 입건되는 실수도 있었지만 MBC라디오 시사칼럼 『홈런출발』에서 소신있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아방송계에서는 아직도 군침흘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군사집단의 견딜 수 없는 모함과 흑색선전에 시달렸습니다.가까운 사람들까지 빚더미에 올라있는 저에게 땅투기꾼.색마라고 몰아붙였어요.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해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를 결심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정치적인 빚을 갚기위해서라도 「기필코 재기해야겠다」는 그는 자신을 「집 한칸 없는 솔직한 정치인」으로 자평했다.양심의 상징인 태국의 잠롱前방콕시장도 집이 있지만 자신은 지금도 닭장을 개조한 무허가건물에살며 그나마 2억원 이상의 빚에 쫓겨날 상황이라고 했다.
『평소 철학과 소신있는 정치를 강조했고 위선을 배격했습니다.
81년9월엔 당시 全斗煥대통령과 단독 면담,대통령직선제등 10개항을 직언하기도 했어요.영합을 몰랐고 협잡을 하지 않았어요.
그후 엄청난 외압이 몰아쳐오기 시작하더군요.』 70년초 가난에지친 부인과 헤어지고 18년이 지난뒤 지금의 아내 許順玉씨(39)와 재혼한 것도 단지 전직 여비서였던 부분만 강조된 채 매도됐다고 했다.
또 초기에 떠돌았던「국회에서 웃통을 자주 벗는다」「폭력집단과연류돼 있다」「거지들의 대부」라는 등의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실소하는 그는 매년 5월8일 도봉구쌍문동 덕성여대 캠퍼스를 빌려 개최해온 「홍성우 전국노인잔치」가 한때 10만명 이상이 운집하자 정부.여당에서 계획적으로 무산시키려고 했던 일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잔치를 한번 치르는데 수천만원이 들었습니다.경제적 여건 때문에 국수잔치로 축소했지만 아직 계속하고 있어요.노인잔치는 대갓집 자제인 아버지께서 제가 딴따라가 됐다고 몸져누우면서 시작한 평생 보은사업입니다.』 경기도 안성 부농의 아들로 어릴 때엔 많은 하인을 부리기도 했다는 그는 자신을 몹시 아껴주던 형님뻘의 몸종이 학대받는 것에 충격받아 남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않게 됐다고.
『패기있고 남아답게 산다는 소신때문에 경제와 가정생활에는 빵점짜리였어요.집사람이 도망갔고 올해 80세의 노모가 고생이 많았습니다.다행히 아들 세놈이 꿋꿋하게 성장해 둘은 분가하고 막내가 직장생활 하고 있습니다.』 지난 91년 MBC라디오 시사칼럼 『홈런출발』을 진행해 받은 출연료로 연탄난로를 피우던 노모의 방에 전기장판을 깔아드렸다고 웃는 그는 지난해 국민당으로서울 노원乙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그후 국민당을 탈당,무소속으로 정치재기를 꿈꾸고 있다.
〈裵有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