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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칼럼

[김영희 칼럼] 한강 너머 태평양을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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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우리는 지금 좁은 한강변에서 전개되는 대선자금 수사와 정계의 이합집산, 경제불황에 정신을 빼앗겨 넓은 태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을 못 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과 인도의 부상(浮上)은 산업혁명과 미국의 등장이 세계 경제와 정치에 가져왔던 것과 같은 변화를 예고한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21세기 중반까지는 아시아가 압도적인 경제권이 되고, 앞으로 40년 안에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평양 연안의 이 도도한 변화의 파도 앞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야심적인 비전이라고 내놓은 동북아경제중심 구상은 빈약하고 근시안적으로 보인다.

*** 미국 따라잡는 뉴 차이나 전략

아시아.태평양의 지각변동은 중국과 인도가 선도하고 화들짝 놀란 일본이 지난 40년 동안 공을 들인 이 지역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대응하는 모양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그런 변화와는 동떨어진 동북아 타령만 하고 있는 꼴이다. 일부 뜻있는 기업인들을 예외로 하고는 우리가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인도의 동방정책을 먼저 보자. 1990년대에 경제의 구조개혁을 끝낸 인도는 어느 분야보다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급성장했다. 2002년의 소프트산업 총생산은 1백24억달러, 그 중 수출이 95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했다. 2008년의 수출목표는 5백억달러다. 미국의 조사 회사 가트너는 2007년까지 인도가 세계 소프트 시장의 57%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에서 열린 인도.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는 아세안의 동남아우호협력조약(TAC)에 가입하고 아세안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포괄적인 경제협력에 합의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지원했던 인도는 2001년 말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것을 기회로 잡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도 적극 나섰다.

인도의 야심적인 프로젝트의 하나가 이란 및 아프가니스탄과 무역 루트 개발에 합의한 것이다. 거점은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이란의 차바하르. 이 항구를 확장, 현대화해 아라비아해 인도의 금융.상업도시 뭄바이와 바닷길로 연결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인도 루트를 여는 프로젝트다. 인도는 2000년 동남아 5개국과 체결한 메콩강-갠지스강 개발협력의 일환으로 뉴델리와 하노이를 연결하는 철도를 놓고 하이웨이를 정비한다는 원대한 구상도 다듬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4천억달러의 보유 외화, 4천6백만명의 대졸 인구, IT분야의 연평균 30% 성장을 발판으로 경제대국의 모습을 착실하게 갖추어 간다. 중국은 아라비아해의 파키스탄 어항 과다르의 항만건설을 맡았다. 공사비 2억5천만달러의 80%를 부담하고 중국 기술자와 근로자 3천명을 투입한 공사가 끝나면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와 중앙아시아.아라비아해를 잇는 무역 루트가 완성돼 아라비아해에서 중국 국경까지 나흘 밤낮의 거리로 단축된다. 지난해 TAC에도 가입했다. 우주선 선저우(神舟)의 발사와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2010년 상하이(上海) 세계박람회가 뉴 차이나에 탄력을 더할 것이다.

*** 안 변하면 한국은 태평양 고아?

중국과 인도의 이런 동남아 진출에 놀란 일본은 지난해 12월 도쿄(東京)에서 일본과 아세안 정상회의를 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앞으로 25년 안에 아세안과 한.중.일.호주.뉴질랜드가 유럽연합(EU) 수준의 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미국 눈치 살피느라 망설이던 TAC에 가입하고, 부산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에 이르는 2만km의 유라시아 하이웨이 참여도 확정했다.

이것이 한강 너머 태평양, 한국 밖 아시아의 변화하는 모습이다. 중국과 일본의 눈은 주로 남쪽을 보고 있다. 동북아경제중심 구상을 태평양의 지각변동에 맞게 범위를 넓히고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강에서 동해 너머 태평양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한국은 21세기 아시아.태평양의 고아가 될까 걱정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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