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 납치선박은 중정공작선-용금호 승선 조리사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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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金大中 前民主黨대표 납치사건에 사용된 용금號는 중앙정보부의 공작선이었음이 당시 용금號의 조리장으로 탑승했던 曺始煥씨(66.부산시사하구)의 증언으로 처음 밝혀졌다.
9일 民主黨의「金大中선생 살해미수 납치사건 진상조사위」(위원장 金令培의원)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曺씨는 『원래 용금號는 美軍수송선으로 중앙정보부에서 인수한 공작선이며 사건 당시인 73년 부산에서 출항할때 탑승선원은 11명이고 정모 .김모라는 정보부요원 2명도 승선했다』고 증언했다.
曺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세히 설명한 당시 목격 상황은 피해자인 金前대표의 증언과 상당부분이 일치하고 있어 사건해결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曺씨는 증언에서 『용금號는 8월8일 저녁 日本 오사카 외항에정박했으며 정보부원 2명이 내려가 밤10시쯤 보트에 金前대표를태우고 도착했다』며 『당시 金前대표는 양손을 뒤로 묶였고 얼굴이 붕대로 전부 감긴 상태였으나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金前대표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자 정보부원들이 로프를 내려 끌어올린뒤 선미의 나다실(닻창고)에 감금하고 한 사람이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曺씨는 이어 『이 배가 오사카를 출발해 9일 새벽 2,3시쯤공해상에 도착한뒤 기관상의 고장도 없는데도 3시간가량 정박해 이상하다고 느꼈으며 金 前대표를 살해하려 한다는 육감을 가졌다』고 증언했다.
金前대표가 구출된 상황에 대해 曺씨는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들렸고 용금號는 전속력으로 요동 치며 달렸으며 9일밤 또는 10일 새벽쯤 평소 항로와 다른 곳을 통해 釜山외항 조선소와 세관 사이에 정박했다』고 말하고 『비행기 때문에 金前대표를 살해하지 못한 것같다』고 金前대표와 일치되는 증언을 했다.
曺씨는 『정보부원들은 선원들을 이틀뒤 강제로 다 내보냈기 때문에 그 이후 상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건후 용금號에 승선하지 않은 총책임자 尹振遠씨(당시 현역 육군대령,日本주재 정보부공작단장)의 주관으로 釜山에서 두차례 회식을 했 다』고 밝혔다. 그러나 曺씨는 『사건직후 정보부에서 알선한 배를 타지 않았으며 日本배로 해외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압력을 못느꼈지만 같이 승선한 선원인 金광식씨는 臺灣에 갔다가 강제로 비행기를 타고 되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건을 목 격한 선원들이 정보부에 의해 감시당했음을 밝혔다.
曺씨는 尹씨와의 관계에 대해 『선원들이 3백만원씩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집사람이 수차례 尹씨에게 「생활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으며 日本에서 귀국한뒤 내가 서울 하얏트호텔 근처 尹씨 집을 찾아가 2백만원을 받고 영수증은 3백만원으로 써주었다』고 말했다.
〈朴泳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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