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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불가능한 사랑을 꿈꾼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호 07면

■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로맨스 소설 작가가 됐다. 일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선택이었을 텐데.

『커피프린스 1호점』 『경성애사』 의 작가 이선미

지금 생각해 보면 이기적이었던 것도 같다.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싫은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사느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로맨스 소설 쓰는 일이 너무 즐겁다. 자료를 찾거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고, 가끔은 독자보다 내가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을 만들 때도 그렇다. 이런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덕목을 남자 주인공에게 넣어주고, 여자 주인공은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에 가깝게 만들곤 한다.

■『경성애사』는 2001년에 출판된 소설인데, 그때만 해도 식민지시대 경성을 경쾌하게 다루는 트렌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다. 당신의 다른 작품들을 보아도 소재가 참신한 듯하다.

뭐든 새로운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까 남들이 다루지 않았던 시대를 찾게 됐다. 그 무렵 일제시대는 암울하게 그려지거나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었다. 로맨스 소설의 배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로맨스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으로 『경성애사』『모던 걸의 귀향』을 썼다. 고대사도 몇 번 다뤄본 적이 있다. 고대사는 우리가 보지 못한 시대이기에 신비로움이 남아있고 리얼리티를 지켜야 하는 제약이 덜하다. 로맨스 소설 독자들은 로맨스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는 역사와 리얼리티에 묻혀 로맨스를 펼치지 못하느니 자유로운 이야기를 쓰는 편이 좋다고 믿는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우울하고 상처 많은 『비늘』『국향 가득한 집』에 비해 밝고 경쾌하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묘한 경계를 이런 톤으로 그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불고기 그라탕』『하록과 배태랑』도 분위기가 『커피프린스 1호점』과 비슷하다. 내가 원래 변덕이 심해서 머리도 폭탄처럼 파마했다가 풀었다가 그러는데(웃음), 소설도 비슷하게 쓰는 것 같다. 나는 게이와 알고 지내거나 동성애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 작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살펴보면 사랑의 정의는 언제나 변해왔다. 한국은 동성애를 터부시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대와 나라도 있다. 그처럼 시대와 법이 다를 뿐 감정과 마음은 이성애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커피프린스 1호점』을 쓰게 됐다. 실제로 후배 중에 은찬이처럼 여자에게 인기 많은 아이가 있는데 성시경을 닮았다.(웃음)

■ 로맨스 소설 작가 중에서도 성애(性愛)의 묘사가 과감하고 다채로운 편이다. 그 때문에 『비늘』은 미성년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을 뻔하기도 했다.

내 소설뿐 아니라 로맨스 소설은 대체로 육체적인 사랑의 묘사가 많고 농도가 짙어서 여자들이 보는 야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 비판은 장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은 사랑 이야기다. 무협지를 보면서 무공에 관한 이야기만 나온다고 작품을 비하하진 않지 않는가. 로맨스 소설의 좋은 점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고 능동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성년자도 로맨스 소설을 읽기 때문에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 그렇더라도 로맨스 소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도덕적이다. 순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가끔 이 규칙을 넘어가는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 로맨스 소설에서 여자가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리고 나는 청소년에게도 이런 내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도 십대 시절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거구나 배웠다.

■ 로맨스 소설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사랑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로맨스 소설이 황당하다거나 유치하다고 비난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장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그런 사랑이 없기 때문에 로맨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그 사랑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사랑을 찾지 않나. 앞으로는 변할 수도 있겠지만 로맨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해피엔딩이다. 독자에게 행복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은 가볍기도 하고, 빨리 갈등을 해결하고 해피엔딩으로 가야 하므로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벼움이 좋다. 다른 로맨스 소설 작가나 독자가 이 인터뷰를 읽는다면 욕할지 몰라도 나는 내 소설이 킬링타임용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치고 힘든 몸으로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데 쓰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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