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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해설가로 변신 전 복싱챔프 홍수환씨|요즘 복서들 근성이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우리의 챔피언 홍수환입니다.』
역대 한국 최고의 파이터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왕년의 프로복싱 전세계챔피언 홍수환씨(44)가 방송 해설가로 팬들 앞에 다시 섰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20분 SBS라디오「스포츠 저널」의 프로복싱 코너에서 해설가로 약 10분간 국내는 물론 국제 주요 프로복싱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언제 들어도 박력 있는 그의 목소리가 새롭다.
아마도 74년 머나먼 이역 땅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방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WBA 밴텀급 타이틀을 쟁취한 뒤의 기쁜 소식을 전하던 명언(?)『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가 복싱팬들의 뇌리에 생생한 탓일 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노련미가 가미된 탓인지 안정감을 준다는 것.
직선적인 성격의 홍수환씨가 해설가로 변신, 첫선을 보인 것은 지난 6월15일.
곡절 많은 10년 미국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지 11개월 만이다.
WBA밴텀급(74년)·주니어페더급(77년)등 두 차례의 세계정상 정복과 41승(14KO)4무5패의 화려한 전적을 뒤로하고 홍씨가 미국 이민 길에 나선 게 83년 12월.
인기 여가수 옥희씨와의 스캔들을 청산하고 새 출발했던 홍씨는 알래스카에선 운수업, LA에선 스테이크 전문음식점·카 딜러 등 사업가로 활동했으나 85년 미 수사당국의 함정수사로 마약거래혐의 구설수에 오르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복싱은 언제나 그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타향의 복싱도장 앞을 지나다 다시 글러브를 끼고 싶다는 짙은 향수에 젖은 그는 이내 매치메이커로 변신을 서둘러 90년엔 임정근과 움베르토 곤살레스(멕시코)간의 WBC 라이트플라이급타이틀매치를 주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대한국민 만세」를 외치던 열렬한 팬인 어머니 황농선(71)씨와 고국 팬들의 갈채는 그를 결국 지난해 영구 귀국시켰다.
『매니저들의 비즈니스는 예전보다 훨씬 세진 데 반해 선수들의 파이팅은 오히려 약해졌습니다. 라면 먹고 운동하던 시절보다 체력이 못한 건 무얼 뜻합니까.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소위 3D현상 때문에 복싱이 침체되는 게 아니고 프로선수들의 프로의식 실종이 퇴보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73년 벙어리 복서 타놈지트 수코타이(태국)와의 방콕경기, 77년 4전5기의 신화를 일궈 냈던 엑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와의 일전 등 한국프로복싱 사에 길이 남을 명 승부를 펼쳤던 홍씨의 따끔한 비판은 날카로웠던 그의 왼손 잽만큼이나 예리하다.
『팬들의 관심을 제일 먼저 끌 수 있는 라이벌전의 실종도큰 원인입니다. 세계랭킹에 올라 있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 대략 플라이급을 전후해 십 여명 이상 몰려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팬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들 모두 논타이틀전이라도 좋으니 라이벌 전을 벌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왜 안 합니까.』
그 자신 역시 전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염동균과 두 차례나 라이벌 전을 치렀다.
그는 80년 12월 염동균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해 69년 데뷔전 무승부 등 데뷔·고별전을 모두 무승부로 잠식하는 진 기록을 세웠다.
국내복싱에 대한 그의 바람은 열정만큼이나 끝이 없다..
『복싱은 팬츠 한 장만을 걸친 채 수만 관중 앞에서 오직 주먹 하나로 깨끗이 승부를 결정짓는 화끈한 스포츠지요. 경기로서의 복싱은 12라운드가 되면 공이 울려 내려오지만 복싱인생은 영원합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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