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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33m법주사 청동미륵불 제작|불상 만들기 외길 3대|대성미술원 대표 신광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신심을 떠나서라도 우리 조상들이 남겨놓은 반가사유상 같은 불상들은 한결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앞으로도 선조들의 찬란했던 불교미술을 이해하고 발전시켜 더욱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 계획입니다.』
3대째 이어가며 오직 불상제작의 외길을 걷고 있는 불장 신광호씨(47·대성미술원대표). 불교에서는 불상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켜 모불 또는 금어라고 하는데 그는 지난 90년 4월 약3년에 걸쳐 높이가 무려 33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속리산법주사 청동미륵불상을 완성해 세상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구나 이 불상은 그의 부친 고신상균씨가 생전에 시멘트로 복원한 것을 다시 청동으로 제작, 2대에 걸쳐 본래의 모습을 완성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본래 법주사 미륵대불은 청동불이었으나 대원군 때 당백전 주조용으로 녹여버렸던 것을 그의 부친이 시멘트로 복원했었다. 이 불상은 청동조각작품으로는 세계최대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불교미술의 관점에서도 균형 잡힌 아름다움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신씨는 이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외에도 수작이라고 꼽치는 국내 청동불상이 거의 그의 손을 거쳤을 정도로 청동불상 제작에 관한 한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제일인자다.
신씨가 이처럼 불장 외길을 걸어온 까닭은 그의 집안 내력을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 예인을 많이 배출한 평산 신씨인 그의 조부 두영씨는 본래 고향인 황해도에서 금광을 경영하며 부유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일제에 금광을 빼앗기고 집안이 기울자 우연한 기회에 불가와 인연을 맺고 불상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조선조 5백년 동안의 억불정책으로 한말에는 불상제작 기술을 갖고 있는 장인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고 일부 승려들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끊어져 가는 그 백을 잇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금강산 유호사 천불을 복원하는 등 크고 작은 사찰의 불상을 많이 남겼다. 실제 그는 일본인 골동품 수집상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가짜 마패와 동전을 만들 정도로 손기술이 뛰어났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아들 상균씨를 서울화계사로 출가시킬 만큼 전통 불교미술의 복원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신씨의 부친 상균씨는 불도를 닦으며 불교미술을 연구하다가 출가한지 5년만에 환속한다. 그는 그후 86년 타계하기까지 평생을 6·25로 폐허가 된 사찰과 파괴된 불상들을 복원하는 일에 전념해 무려 대소 1만여 불상들을 제작했다.
광호씨는 어릴 적부터 부친을 도와 불상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씨는 문화재기능보유자이자 누구나 알아주던 불교미술가이면서도 항상 가난하기만 한 부친을 이해하지 못하고 홍익대 건축과를 진학하면서 다른 길을 걷는다.
『부친은 합천 해인사 설법전 삼존불, 천안 각원사 대웅전 삼존불 등 많은 작품들을 만드셨지만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항상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부친의 뜻을 꺾고 나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연로하신 몸으로 혼자 힘든 작업을 묵묵히 하시는 아버지를 돕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원자력연구소에 취직, 한동안 평범한 생활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천직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듯 지난 76년 부친의 대를 잇기로 결심한다.
신씨는 토불·지불·석불·목불 등 여러 불상 중에서 지금까지 주로 청동불상만을 제작해 오고있다.
무엇보다 보존성과 복원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고색창연해지는 청동불상의 청록색이 주는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실제 청동은 공기 중에서 1㎜가 부식되는데 3백여년이란 세월이 걸릴 정도로 거의 영구적이다. 그런 만큼 제작 또한 여간 힘들지 않다.
점토로 토조하여 모양을 만들고 석고를 이용해 형틀을 뜬 다음 이를 다시 특수 플래스틱을 사용해 양각으로 뽑아내고 다시 한번 세부조각을 해 원형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 원형을 가지고 다시 주물틀을 만든 후 청동합금을 부어넣는 등 보통사람의 인내로는 하기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불상이 커질수록 전체적인 균형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두의 둘레는 무릎과 무릎 사이의 길이와 일치해야 하고 부처의 미간과 좌불의 양무릎은 정삼각형을 이뤄야 합니다. 게다가 팔은 인체보다 길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는 등 정밀한 계산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그는 불상 제작은 고도의 예술성 못지 않게 깊은 신심이 있어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역시 독실한 불자다. 그는 바쁜 작업 중에도 짬을 내 전국 사찰을 다니며 조상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은 전남 화순 쌍봉사 목조3층탑에 안치된 나무로 된 석가모니불. 백제인들의 섬세하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솜씨가 볼 때마다 평안하고 친근감을 갖게 한다고.
신씨는 작품활동 외에도 서울 잠실에 있는 노인무료치료기관인 연꽃마을의 감사로 있으면서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1남1녀를 둔 그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갈 것을 바라고 있지만 뜻대로 될 지는 알 수 없단다. 다만 현재 미술원이 있는 의정부 송산동에 청동불상박물관을 만들어 누구나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이순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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